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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vin Jan 22. 2016

별을 만나다

[Chapter II]#1. 그 해 겨울, 강남 한복판에서



그 해 겨울, 지구온난화라는 것은 환경단체라는 탈을 쓴 인간들이 만들어낸 그럴싸한 사기극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춥고 많은 눈이 내렸다. 하지만 맹렬했던 추위도 어느덧 힘을 잃었음에도 거리의 쌓인 눈이 잿빛으로 질척거리는 강남대로의 거리를 걷기가 적잖이 힘들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들떠 있었다.

S사 건물 9층에 도착했다.

상암동 달콤커피 (D90, ZF 50mm f1.4)

동행한 영업본부 전팀장님은 상대 업체와 미국법인의 현황을 조금 공유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야기를 능숙하게  주고받았다. 나는 당시 기획마케팅팀 소속 해외사업담당이란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 S사와 업무적으로 나눌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상대 업체 윤대리가  맞은편에 앉아있다.


업체 담당자 윤대리



인사동 (Sigma Dp1x)

 약 1 년 전, S사에서 중국 프로젝트 건으로 방문했을 때 윤대리를 만난 일이 있다. 아주 약간 밝은 갈색의 한쪽으로 살짝 치우친 말끔한 헤어스타일, 어깨를 타이트하게 감싼 가죽재킷, 몸에 잘 맞는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한눈에 봐도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짧은 순간 스치듯이 본 왼손가락의 수수한 반지는 직감적으로 커플링임을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분명 서클렌즈가 아닐 텐데도 투명한 듯 까맣게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였다. 마치 별처럼.

그렇게 명함을 빠르게  주고받고, 인사 정도만 나눈 후에 윤대리는 다음 미팅 자리로 이동했었다. 그것이 윤대리의 첫인상 이었었다.

 업무적인 내용은 다 서로 확인하였고, 10년 가까이 거래한 양사의 차장들은 격 없이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확인하였다. 그러다 우리 영업 전 팀장님이 윤대리에게 말했다.

“윤대리님~ 시집가야죠ㅋㅋ언제 국수 먹여줄 거야~~?”

“아!!~ 차장님 ㅋㅋ없어요! 없어! 요새 맨날 회사, 집, 회사, 집 이라고요”

“ㅋㅋ 맞아요 전 팀장님 윤대리 요새 운동만 하고 맨날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연애도 안 하고 크큭.”

조차장님이 거들더니 나에게 물었다.

“아, 혹시 함 대리님은 여자친구 있으세요?”


그런 건 없었다.

“아…저는 아쉽게도 없습니다…”

아~! 그럼 우리 윤대리 어때요? 호호호호호”

빛보다 빠르게 윤대리의 표정을 읽었다. 물론 다 같이 웃는 분위기였으나 윤대리 표정 안쪽에 당황스러움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쩌지....?’

 뭔가 잘못하다간 이 상황이  불편해지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회의 내내 멍 때리면서 예전 기억을 더듬고 있었는데,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온 질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솔로인 대리 둘(윤대리가 솔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을 앉혀 놓고 농담을 즐기는 두 차장님들은 신나게 웃고 있었고, 윤대리도 나도 웃고는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앞에 앉은 사람이 어떠냐는 질문의 답변에 대해 쓸데없이 깊은 분석을 빠르게 시작했다.

‘잘 못 들었다고 할까? 아니야 그럼 다시 물어볼 것이 아닌가…. 그럼

‘윤대리가 업무를 잘 한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할까? 이건 아니야.... 바보 같아.

’하하 사실 전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너 지금 제정신이냐… 어쩌지? 뭐라고 대답하지? 이렇게 더 대답이 늦어지면 이상해 진단 말이다! 뭐든 생각해내! 대답을 생각해! 어서!!!!!


네 저는 좋습니다.

 몇 초간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난 우주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주가 넓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작은 회의실이 우주처럼 느껴질 줄은 몰랐다. 산소가 사라지고, 내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의자가 1센티미터 정도 떠오르고 있었다. 머릿속은 잠깐 정전상태.

“와하하하하하하!ㅋ 그럼 두 사람 만나보면 되겠네~~!! 하하하”

나는 또 대답했다.

“그.. 그럴까요?ㅋㅋ 하하하하”

그.럴.까.요. 라니.. 상대방 의사는 확인도 하지 않고 그럴까요 라니!

여기서 더 대화가 진행되면 정말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조차장님이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어떤 대화를 더 나누고 그 자리에서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난 알카라인 건전지를 뺀 뽀로로 인형 같은 상태였으니까.

기억이 나는 것은 윤대리의 하얗고 가느다라 한 손과, 그녀가 회의 테이블에 올려놓은 삼성의 휴대전화기.


옴니아


당시 옴니아는 조악한 만듦새와 평범한 사람은 인내하기 힘든 구동 속도와 잦은 오류로 혹평과 비평의 그 끝에 있는 독보적인 제품이었다. 그 옴니아는 나에게 이런 상상을 하게 했다.

‘ 진짜 남자 친구가 없는 건가? 옴니아라니…. 약간만 IT기기나 전화기에 관심이 있는 남자라면 여자친구를 옴니아의 구렁텅이에 내 팽겨 치진 않았을 것인데… 그래. 윤대리는 남자 친구가 없을 확률이 8할은 되겠구나!‘

저 멀리 반짝이는 별과 같은 존재의 누군가가 내 손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내려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윤대리를 만날 수 있을까? 주변에 작업하는 남자가 없을 리는 없잖아.’

갑자기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아니야. 나 같은 사람의 사랑은 받아보지 못 했을 거야.’

병이 도진다.

‘그래 윤대리 당신은 날 만나야 돼!’

.

.

.


그 날 돌아오는 강남대로변에서 하늘을 올라다 보니 눈이 부시다.

 바닥에 쌓인 눈 따위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못생긴 빌딩들은 다 어디 간 거지?


오늘이 봄 이었던가?...



올림픽공원 (Sigma Dp1x)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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