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용담 Sep 28. 2021

슬럼프의 터널에서 나는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중






어느 날부터 글을 쓰게 되었다.

'함께의 힘'을 빌어 글쓰기를 지속하고자, 매일 글을 써서 인증하는 모임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정 기간을 정해 놓고 완주하는 것이 목표인 그 모임에서는 뭔가 모를 승부욕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끝까지 해내야 할 것 같은 강박,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시늉만 하고 싶지는 않은 결벽, 매일의 글을 성실하게 대하고 싶은 신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채워가다가 어느 순간 마음속 냉장고에 재료가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끼니마다 반찬 걱정하는 것도 끔찍한데, 그 비슷한 글 재료를 고민하는 건 더욱 끔찍했다.

억지로 쥐어 짜내는 기분... 버려도 좋을 자투리 재료에 조미료 같은 미사여구를 처발라 쓰고 있는 기분.


나는 누구를 위한 완주를 하고 싶은 것일까?

오래전 새벽 기도 다니던 것이 오버랩되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변함없이 새벽길을 걷던 어떤 사람과 혼자 묘한 경쟁을 벌이다가 입 돌아갈뻔한 기억이...

열두 시까지 글이 써지지 않던 어느 날, 나는 완주에 대한 욕심을 깨끗이 접었다.

어떤 글도 쓰려고 애쓰지 않았고, 생각의 꼬리물기도 싹둑 잘라내고, 쓰는 것을 아주 그만둔 사람처럼  초저녁부터 단잠을 잤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텅 빈 마음속 냉장고에 글 재료가 채워져 있다. 진짜다!


슬럼프는 남을 의식한 나 자신과 싸울 때 찾아온다. 남이 나에게 주는 피드백에 지분을 많이 넘겨줄수록 슬럼프와 만날 확률 또한 높아진다.

자신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울 때, 쉬는 시간 종처럼 슬럼프는 찾아든다.

다음 시간을 위해 좀 쉬라고... 기지개도 켜고 물도 좀 마시며 잠시 오감을 쉬게 하라고...

그럴 땐 그냥 나를 그 일로부터 격리시키자. 자가 면역력이 생길 때까지 그 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자.

나랑 싸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든 돌아오라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