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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Hee Sep 01. 2023

미술관람에 대한 단상

쓰지 않는 것은 날아가버리니까

항상 생각은 많은데, 일기던 뭐던 기록을 하려고 해도 늘 귀찮아서 많은 생각들을 그냥 흘려버렸다. 

오늘은 각 잡고 (몇 분 안 남은) 오늘의 일기부터 쓰려고 한다. 거창하게 쓰려고 마음먹지 말고...



점심시간에 친한 회사 친구들이랑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나온 이야기다.


한 친구는 독일에 사는 자기 친구들을 보면 미술이나 음악 등 참 문화적으로 풍요롭다며, 한국(그리고 미국?)에서 교육받은 애들과는 참 다른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자기도 음악 듣는 건 어느 정도 좋아하긴 하는데 그림은 진짜 모르겠다면서, 특히 현대미술은 점 같은 거 하나 찍고 예술이라고 하는 게 진짜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반면 아주 예전 정말 정교하고 자세하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을 말하는 거겠지) 장인정신은 인정한다면서. 그리고 특히 요즘 그림 보는 거 다 허세라고, 자기도 아빠 따라 미술관 가보면 사람들이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사진만 찍느라 정신없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이 얘기를 듣고는 자기 대학 수업 때 유일하게 A가 안 나온 과목이 미술 수업이었다면서, 과제(시험이었나?)로 무슨 그림을 보고 느낀 점을 써야 했는데 소설 같이 대충 써서 냈더니 결국 그 과목에서 B+가 나와서 진짜 짜증 났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게 아마 어릴 때부터 이런 문화생활을 즐기고 느껴봤어야 커서도 계속 이어질 텐데, 뒤늦게 커서 하면 그 즐거움을 느끼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문화생활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이들에게 내 취미인 미술관 다니기에 대해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그래서 당연히 나도 미술관을 즐기지 않는 애라고 간주되고 "우리처럼 미술관 같은데 안 가는 애들은~"이라는 식으로 같이 묶여버렸다...^^;;) 사실 나는 미술관 다니는걸 매.우.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요즘 인스타니 뭐니 SNS에 사진 찍어 올린다고 부쩍 미술관에 가는 사람들이 늘었고, 최근 몇 년간 아트테크가 급부상하면서 사람들이 미술에 엄청나게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종종 "나도 혹시 이 무리 중 하나인가...?"라는 섬뜩한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행히도 아닌 것 같다. (물론 나 또한 요즘 전시 보러 다니면서 사진을 필요 이상으로 찍는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관 같은 곳 가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이었고, 고등학교 때 대학교 수업 크레딧을 받을 수 있는 아트 히스토리 수업을 미리 들었었는데 이 수업도 꽤나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정도냐면, 정확하게 이 수업 맨 첫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날 정도이다. 수업 첫날까지 미술 작품 하나에 대한 내 감상평 같은 것을 쓰는 것이었는데, 그 과제로 방학 동안 "A Short Guide to Writing About Art"라는 책을 읽고 뉴욕 MoMA에 가서 내가 당시 매우 좋아했던 르네 마그리트 작품을 보고 이 작품에 대해 썼던 기억이 난다. (나머지 수업은 재밌었던 기억이 없다...). 대학교 때는 학교에서 정말 마이너한, 사람들이 잘 안 볼 것 같은 작은 소극장 같은 데서 상영하는 영화나 전시 같은 것 찾아서 보러 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그때 정확히 뭘 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너무 마이너했나...) 그러니까, 대학 시절에도 스스로 발품 팔아 캠퍼스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문화생활을 하려고 나름 노력했었다는 거다. 


요즘의 나는 미술관 공간 안에 있는 그 자체도 너무 좋아하고 (특히 사람이 없는 작은 갤러리들을 다니는 걸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정말 훌륭한 도슨트/가이드님들한테서 설명을 들은 이후로는 너무 감동 받아 도슨트 기회가 있으면 들으려고 엄청 찾아다니는 중이다. 나는 주로 혼자 미술관을 다니는지라 전시 다니다 보면 옆에서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동행자에게 이런저런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하는 광경을 많이 목격하는데, 아쉽지만 나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그림을 보면서 어떠하다고 느낀 점을 말하는데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사실 나는 그림을 딱 보자마자 몇 초만에 "아, 이 그림 강렬하네" 혹은 "이 그림 예쁘다" 이런 식으로 직관적으로 좋다/그냥 그렇네로 나누는 것이라서, 디테일하거나 화려한 언어로 느낀 점을 설명하고 그런 수준은 결코 안된다. (그리고 나도 사실은, 현대미술 같은 경우 특히, "진짜 이런걸 대단한 작품이라고 정말 보는 거야?" 싶은 작품들을 보면서 별 감정이 안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작품들은 좀 거품이 낀 거 아닌가?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현대미술은 특히 더 갤러리들이 작품이나 작가를 띄우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뭐 다 연줄/인맥 이런 것들의 뻔한 인간사 되풀이겠지.) 


나는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표현 방식, 그러니까 그게 색감일 수도 있고, 작업 방식일 수도 있고, 작품의 구조나 소재, 혹은 그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나 아이디어에서 뭔가 새로운 점을 배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어쩌다 이런 예술품들이 어떤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 이게 예술의 역할이지, 정말 뜻깊은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뭔가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의식(?)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미술관이 이 지루한 일상에서 그나마 내 삶의 목표 같은걸 좀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물론 일상으로 복귀하면 생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다시 게을러지지만...).


문득 내가 왜 요즘 미친 듯이 전시를 보러 다니는지에 대한 단상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내가 진짜 즐겨서 하는 취미니까. 사실 별 이유 없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일상이 무료하니까 뭐라도 새로운 걸 느끼고 싶은데,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기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이 미술관람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분야는 사실 한번 파고들면 무궁무진하게 배울게 많아서 언젠가부터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되었다. 심지어 이 작품들 가격에 비해 너무나도 헐값에 (혹은 무료로) 이 좋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거 너무 좋은 기회 아닌가? 이거야말로 살면서 누구나 만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좋은 취미인 것 같다. 물론, 내 친구처럼 미술이 허세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 선뜻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번 빠져들면 상당히 좋은 취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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