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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Hee Jan 13. 2024

괴물

내가 아는 건 지극히 일부일 뿐  

올해 첫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다.


줄거리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보니 내가 이 감독의 영화 중 유일하게 본 게 "브로커"인데, 막 엄청 감명 깊지는 않았던 기억에 특히 좀 더 고민이 되었었다) 이동진이 본인 선정 2023년 최고의 영화를 꼽는 유튜브에서 너무 끌리게 설명을 해서 이건 꼭 봐야겠다 싶었다. (내용보다도 영화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어떠한 사건을 인물들의 서로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다는 그 부분이 흥미로웠다.)


내가 요즘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이 "인간관계"이기도 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좀 더 포용력이 생기게 되는 반면에 다른 사람과 나의 견해 혹은 입장 차이를 대체 어느 정도까지 포용을 해야 하나, 어느 선을 넘으면 나를 지키기 위해 관계를 단절해야 하나, 그 미묘한 한계점을 설정하는데 꽤나 에너지를 쓰게 된다. 사실 이제는 기분이 상해도 웬만하면 그냥 그러려니 넘기고자 하는데, 그 와중에 내가 "호구"처럼 보이지 않는 그 선이 어딘지를 정하는 게 너무나도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친한 사람의 경우 더 그렇다. 아차 하면 선을 넘는 경우가 더 쉽게 생겨 (혹은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기준치가 높아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 쉬워서) 그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반면에 나이를 먹을수록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적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그 "손절의 기준"이 갈수록 조금씩 높아진다. 요즘은 어떤 사람이 간혹 무례한 행동을 해서 '이걸 참고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도, 바로 또 그걸 무마시키는 행동을 하면 '그래... 이번 한 번만 또 넘어가 보자' 하면서 어찌어찌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곤 한다. (물론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결국 다 돌고 도는 것 같기도.)


"괴물"의 구조는 크게, 어느 사건을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영화다. 영화가 매우 섬세한데, 서로 얽혀 있는 인물들이 각자가 알고 있는 것만큼의 정보를 바탕으로 어떠한 사건을 바라보고 행동했을 때 타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어떤 인물이 보유한 경험치만을 가지고 내리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과 그 판단에 기반한 행동이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주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그를 과연 비난할 수 있는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된다.  


결국 이 세 사람의 시선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게 되면, 어떠한 한 사건을 과연 "하나의" 사건으로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각자가 알고 있는 정보나 볼 수 있는 시야가 너무나도 한정적이고, 정작 서로가 본인의 사연을 진실되게 털어놓지 않는 한, 타인은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 그리고 보이는 만큼 그 사건을 해석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기 다른 입장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사건은 어쩌면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사건일 수 있다. 이러한 전제를 두었을 때,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을 오해하고, 그 오해로 얼마나 그 타인을 비난하며, 그 타인을 피해자로 만드는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반대로 우리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을 거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글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의 질문글이었는데, 회사에서 어떤 신입사원이 농담 삼아 말버릇처럼 "아 뇌종양 생기겠네“와 같은  발언을 몇 번 했고, 부장님이 그 신입을 불러다가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며 엄청 혼을 냈다는 거다. 알고 보니 이 부장님 아내분이 정말 뇌종양으로 투병을 하셨었고, 이 신입은 이러한 내막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 경우 신입이 잘못한 건지 부장이 그래도 선 넘은 건지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글이었다. 댓글로 사람들 의견이 나뉘었다. 신입은 그 사정을 몰랐으니 부장이 지나친 거다, 그래도 뭐 부장이 그런 혼 낼 수도 있지 않나, 등등.


어쨌든, 내가 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 대부분의 경우일 거다) 맹목적으로 결론을 내리거나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해 본다. 이미 꽤나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종종 지극히 내 개인적 감정에 잠식되어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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