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월의 결산
매달 정산(?)하듯 그 달 본 영화에 대해 기록을 하기로 다짐했었는데.. 호기롭게 시작하고는 2월에 멈춘 것 실화인지... 이 후기도 7월에는 꼭 쓰려고 했는데 어느덧 8월이 되었다.
3-6월 간 총 63편의 영화를 보았고, 그중 호/불호 코멘트가 강한 것들 위주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늘 그렇듯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평이다.
가여운 것들 (2023)
아, 그냥 오프닝부터 이거다(!) 싶었다. 화려한 의상과 영상미, 배우들의 연기, 그냥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다만 중간에 여주가 쾌락에 눈을 뜨고 나서부터 정신 놓고 쾌락을 즐기는 신은 사실 조금 줄여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과하거나 눈살이 찌푸려져서 등의 이유가 아니라, 그냥 포인트는 확실하게 전달된 것 같은데, 단지 1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2절, 3절, 4절까지 너무 늘어지는 느낌이어서. 그것만 줄였어도 거의 2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조금 줄면서 임팩트가 더 강했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쉬웠달까. (휴... 써놓고 보니 도파민에 절여져서인지 갈수록 긴 영화 보는데 떨어지는 내 집중력이 느껴지네.)
약간 이야기가 새지만, 영화를 본 바로 다음 날 세화미술관에서 <논알고리즘 챌린지>라는 전시를 보았는데, 그중 아래 <배럴아이>라는 작품이 '우리의 기억이란 온전히 각자의 것일까? 어쩌면 어느 미래에 타자의 기억을 나에게, 혹은 나의 기억을 타자에게 전할 수는 없을까? 기억을 이식받는 미래 존재가 생긴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설명이 있었다. 관련하여 도슨트 설명도 들었는데, 안 그래도 해외에서 사람의 뇌를 뭔가 다른 생명체에 (벌써 몇 달 지나서 그 대상이 정확히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ㅠ) 이식하는 것에 대한 연구가 실제로 있었다고 하셨고, 바로 이 영화가 떠올랐다. 아 정말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섬뜩하기도 하고, 이렇게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괜히 심오한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마스터 (2012) (+보 이즈 어프레이드)
개인적으로 이동진 평론가를 매우 좋아하지만... 내가 그의 지적 수준에 발끝에도 못 미쳐서인지 가끔 그가 만점이나 그 가까이 평점을 준 영화들이 난해가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 가장 기억나는 게 "퍼스널 쇼퍼", "퍼스트리폼드", "지구 최후의 밤" 등인데, 이렇게 재미도 없고 대체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감도 안 오는 영화는 보고 나면 내 인생의 몇 시간이 아깝게 소비된 것 같아 상당히 짜증이 난다...)
그리고 "마스터"도 그중 하나로 등극하였다. 평점이 높은 영화로 알고 있었고 종종 어디선가 언급되는 경우를 많이 봐서 보고 싶은 리스트에만 두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참 안 땡겨서 미루고 미루다 숙제 해결하듯 보게 되었다.
아 그런데... 정신 이상자들의 제정신 아닌 이야기였고 솔직히 보면 볼수록 짜증만 났다. 그래도 기왕 시작을 했으니 끝은 봐야지 싶어 중도하차는 안 했는데 (솔직히 이제는 반정도 보면 대충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 알겠는데, 그래도 혹시나 1%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끝까지 보긴 한다), 맨날 알면서도 당한다. 역. 시. 나 별로였다.
이젠 호아킨 피닉스 얼굴만 봐도 좀 짜증 날 지경이다. 맨날 정신이상자 역할만 맡으니 이 아저씨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A24 영화인데, 믿고 보는 A24에 미드소마 감독이어서 속는 셈 치고 봤으나... 아 역시나 또 내 인생의 3시간이 이렇게 알 수 없는 컨텐츠에 소비되어 버렸다. 그나마 이 영화는 영상미라던가 "아니 뭐 대체 이딴 상상력이 있지...?" 하는 놀라움은 연속 선사해 주었으나, 그거 말고는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더라. 역시나 여기서도 호아킨 피닉스는 제정신은 아닌 역할이었다.
호아킨 피닉스 영화도 이제 좀 거를 때가 되었나 보다. 이런 영화나 역할만 골라서 하는 건지? 굳이 이렇게 감동도 재미도 없는 컨텐츠를 볼 필요가 있나 싶네...
여행자의 필요 (2024) (+물안에서)
홍상수 영화는 무조건 개봉하면 연례행사처럼(1년에 1편씩 나오니까...) 보러 가는데, 아 사실 이번 영화 주인공이 이자벨 위페르여서 좀 우려가 되었다. 뭔가 외국인이 주인공이면 내가 원하는 홍상수 영화의 그 분위기가 좀 감소되는 느낌일 것 같은 선입견 때문에. (사실 전에도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 홍상수 영화가 있는데, 썩 재밌지는 않았다.)
예전에 친구에게 홍상수 영화를 추천해 줬다가 그 친구가 영화 보면서 사우나하는 줄 알았다고, 중간에 결국 영화관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처음으로 영화 중간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그다지 의미 없어 보이는 대사의 반복. 내 옆에 (이런 표현 좀 죄송하지만) 좀 덕후… 같이 보이던 분은 그 조용한 영화관에서 혼자 빵빵 터지시던데 내가 코드를 이해를 못 한 건지 뭔지... 영화평을 보면(이미 영화를 본 나로서는) 뭔가 예술뽕에 가득 찬 영화평들이 보였는데... "아니... 정말?" 인가 싶더라. 아 그냥 이번 영화는 진짜 좀 힘들었다. 단지 이 영화 보고 이자벨 위페르가 그렇게 극찬하는 "생막걸리"만 겁나 먹고 싶어 졌을 뿐...
하필 이 영화 전에 내가 극장에서 안 챙겨봐서 따로 결제해서 본 "물안에서"가 있는데... 이 영화도 너무 재미가 없었어서 안타깝게도 홍상수의 영화 가장 최근 관람작들이 노잼 그 자체였다. 아 감독님, 다음 영화는 다시 그냥 감독님 노년기 인생론에 대한 영화 만들어주세요...
챌린저스 (2024)
음악, 영상, 스토리 모든 게 나의 시야를 번쩍! 뜨이게 해주는 영화였다. 보는 내내 도파민 폭발. 나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이 "육체"를 탐닉하는 이 스타일이 너무 좋다. 주인공들의 테니스 경기 그 자체로도 도파민 폭발이지만, 여름날 그 젊고 탄탄하고 건강한 "육체"를 너무 생동감 느껴지게 담아낸다. 게다가 젊은이들의 질투와 열정적인 사랑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영화 자체에서 생기, 그러니까 "생명력" 그 자체가 고스란히 느껴진달까. 게다가 테니스와 얽히고설킨 사랑의 관계를 이렇게 잘 녹여낸 영화는 없지 않았나? 정말 신선했다. 영상미에 음악, 스토리까지 탄탄하게 받쳐주던 영화였다.
시리어스 맨 (2009)
내가 좋아하는 우디 앨런 영화의 느낌이 나서 좋았다. 걷잡을 수 없는 불행한 일들의 연속, 마치 우리 인생은 알 수 없고 우리가 전혀 컨트롤할 수 없다는, 그냥 흐르는 대로 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 (어찌 보면 좀 비관적이며 어두운 메시지지만) 나름 위안이 되었다. 너무 말도 안 되게 나락으로 치닫는 주인공이 안타까우면서도 좀 뻘하게 웃기기도 하고 (B급 코미디 감성?)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1969)
CGV 아트하우스에서 에릭 로메르 특별상영전을 해서, 아직 보지 못했던 에릭 로메르의 영화 4편을 볼 수 있었다. 그중 제일 처음 본 것이 에릭 로메르의 도덕 이야기 중 하나인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이었는데, 하룻밤 동안 모드의 집에서 주인공과 모드의 도덕, 사랑 등에 대한 아슬아슬한 논의가 꽤나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공감되는 대사들도 있었는데 (하지만 결국 말과 다르게 행동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 역시 모순덩어리인 한 인간임을 다시 깨닫게 되고...), 늘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던 게 이렇게 다른 이의 입을 통해 구체화되어 나오는 걸 보면 다시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도 있고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공감에 대한 희열도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주제는 그러지 못할지언정 개인적으로 영화 자체는 “우아함” 그 자체였다. 아니, 영화를 보면서 우아하다는 생각이 든 것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생각하지 못했던 한 사건의 이면을 보여주는데 영상미, 음악 모든 게 너무 깔끔하고 적절했다. 요란하지 않다. 침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