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사와 아키라 - 이키루 (살다) (1956)
무슨 숏츠에서 "퍼펙트 데이즈"의 빔 밴더스 감독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계절을 기가 막히게 활용한다며 이 감독의 영화는 꼭 봐야 한다는 것을 보았는데, 문득 궁금해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알고 보니 매우 유명한 고전영화 "라쇼몽" 감독인데, 너무 옛날 시대 배경인지라 예전에도, 지금도 딱히 끌리지 않아 "이키루"라는 영화를 보았다. 우리나라 제목으로는 "살다, " 영어 제목으로는 "To Live"이다.
"이키루"에서는 묵묵히 30년간 일만 해오던 어떤 한 공무원이 시한부 판정을 받고 본인 삶은 즐기지도 못하고 (심지어 유일하게 남은 혈육 아들에게도 무시당하고...) 매일 기계처럼 일만 한 지난날을 후회하며 이런저런 소소한 일탈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열정을 태울 수 있는 업무를 찾아 그 일을 마무리하고 죽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일의 공은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그는 시간을 때우고 있을 뿐이니까
그는 산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영화 인용)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섬뜩하고도 무서웠던 것은, 나도 내 인생을 "시간 때우듯"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서이다. 일-직장-일-직장의 연속이고, 그냥 밥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남들 다 하듯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인데, 요즘 들어 유독 이런 인생이 좀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제 와서 진로를 틀어 갑자기 다른 일을 할 수 있는가? 막상 생각해 보면 늘 뭐 마땅한 게 없으니 그냥 불평 말고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현재에 만족하자, 로 귀결된다.)
그러니까, 살고 있지만 딱히 "인생을 살고 있다"라는 느낌이 없이 그냥 하루하루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인 거다. (유독 그래서일까, 나는 차곡차곡 자신의 작업을 "쌓아온" 예술가들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이니셰린의 벤시"가 떠올랐다. 영화의 메인 주제는 아니지만, 죽기 전에 삶의 의미를 위해 무언가 창작물을 남기고자 계속 고군분투하던 주인공의 친구가 떠올라서.)
개인적으로 "이키루"의 주인공이 죽음 문턱에서나 속절없이 지나간 인생을 뒤돌아보며 자기는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충격과 슬픔에 빠진, 그 후회와 억울함에 가득 차 부릅뜨는 그 큰 눈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아니 그런데 정말이지, 그 눈빛은 공포영화에 나올 법했다...)
사실 어쩌면 인생을 하루하루 버티기만 하고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것만큼 무서운 건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생은 자기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채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니까, 멋지게 살고 있는 것 같은 남들만 부러워하지 말고 뭐라도 내 열정을 태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데. 아니, 사실 어렴풋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현실적이지 않아 보여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따라 무언가를 하려면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라"라는 조언이 많이 보이는데, 사실 이게 맞다. 이런저런 생각하는 동안 그 일을 "하지 않을" 핑계만 쌓이고 시간만 흐를 뿐 남는 게 없다. 그냥 내가 살아오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이 깨달음을 또 잊지 않고 스스로 상기하고자 정말 처음으로 아침에 이 글을 끄적여본다.
아래는 영화 후반에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 가사다. 스스로 기억해 두기 위해 기록.
인생은 찰나이니 빨리 사랑에 빠져요 아가씨야
너의 입술이 아직 붉게 빛날 때 너의 피가 뜨거울 때 말이오
내일이란 없고 인생은 짧으니 사랑에 빠져요 아가씨야
검은 머리가 옅어지기 전에 마음의 불꽃이 타고 있을 때 말이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