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Woody Allen)

흐름을 그린 감독, 우연을 말하는 영화

by HeeHee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 되었다.


우디 앨런은 1935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90년에 가까운 생애 동안 매년 한 편씩 영화를 만들어내며 할리우드와는 다른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해 왔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신경증을 분석하고, 복잡한 남녀관계를 탐구하는 그의 영화는 지적이고 냉소적이면서도 따뜻한 유머로 가득하다. 우디 앨런은 일상의 신경증과 인생의 운을 탐구한 감독이다.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명확하다. "인생은 운이다."

1970년대의 우디 앨런 (출처: RollingStone)


열등감으로부터 폭발한 재능: 앨런 스튜어트 코니그즈버그 (Allan Stewart Konigsberg)

우디 앨런의 본명은 앨런 스튜어트 코니그즈버그다. 1935년 12월 1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동유럽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의 아들이었다. 조부모는 1899년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세대였다. 아버지 마틴 코니그즈버그는 무역업으로 돈을 벌었지만 대공황 때 모두 날렸고, 이후 보석 세공, 웨이터, 택시 운전사, 경마장 관리자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어머니 네티는 가족이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회계 일을 했다.


우디의 가족은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10차례 이상 이사를 다녔다. 권위주의적이고 성미가 좋지 않은 어머니와 우디의 관계는 소원했다. 그는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살았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일찍부터 빛났다. 15세부터 이미 코미디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신문 칼럼니스트들에게 웃긴 이야기를 팔아 돈을 벌었다. 17세에 그는 법적으로 이름을 헤이우드 앨런으로 바꾸었고, 나중에 자신을 우디라 칭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부모의 수입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1953년 미드우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디는 뉴욕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영화 제작 과목에서 낙제하며 중퇴했다. 1954년 시티 칼리지 오브 뉴욕에 입학했지만 첫 학기에 시험 중 앞 학생을 커닝하다 퇴학당했다.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에서 그는 이를 개그 소재로 삼으며 "저는 그저 앞 녀석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어요"라는 드립을 쳤다.


1960년대 초반 우디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날렸다. 마른 체구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외모에 말더듬이와 영리한 대사로 사람들을 웃겼다. 그의 코미디는 주로 고통이나 강박증에서 나왔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현재의 괴로움, 자신의 열등감을 중요한 코믹 요소로 승화시켰다.


1969년 코미디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이후 <바나나 공화국> (1971),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 (1972), <슬리퍼> (1973), <맨해튼 살인사건> (1993) 등 자신이 직접 주연을 맡은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를 연이어 제작했다. 이 시기 그의 영화는 신경질적이고 어설픈 주인공이 벌이는 소동이 중심이었고, 촬영은 개그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취향과 영향: 유대인 코미디, 재즈, 그리고 잉마르 베리만

우디 앨런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것들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의 작품은 세 가지 큰 영향의 교차점에서 탄생했다.


유대인 코미디 전통

우디 앨런은 그루초 막스, 밥 호프 같은 유대계 코미디언들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은 코미디를 절망에 대한 해독제로 사용해 왔다. 아우슈비츠를 겪은 그 민족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만의 냉소적이며 다소 비관적인 유머 감각을 발전시켰고, 앨런의 코미디는 그 절정이다. 그의 개그는 주로 고통이나 강박증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현재의 괴로움, 자신의 열등감을 중요한 코믹 요소로 승화시켰다.


재즈, 특히 뉴올리언스 재즈

10대 때 시드니 베쳇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재즈에 빠진 우디 앨런은 소프라노 색소폰을 배웠고 이후 재즈 클라리넷으로 악기를 바꾸었다. 뉴올리언스 재즈에 경도된 그는 20년 넘게 뉴욕의 '마이클스 펍'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연주를 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곡은 시드니 베쳇의 "Si Tu Vois Ma Mère"로, 훗날 <미드나잇 인 파리> 오프닝에 이 곡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 콜 포터, 루이 암스트롱,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이 그의 영화를 장식한다.

베쳇의 음악이 흐르는 <Midnight in Paris>의 오프닝 씬 (출처: YouTube)

<맨해튼>의 흑백 화면 위로 흐르는 거쉰의 음악은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를 재즈로 만들어낸다.

거쉰의 음악이 흐르는 <맨해튼>의 오프닝 씬 (출처: YouTube)


재즈는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라, 그의 영화가 추구하는 즉흥성과 멜랑콜리의 본질이다. 재즈는 20세기 초 미국 흑인 공동체에서 탄생한 음악으로, 블루스의 애절함과 유럽 음악이 뒤섞여 노예제와 차별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은 창조적 저항의 표현이었다. 흑인들의 집단적 슬픔과 희망, 사회적 경험이 음악으로 승화되었고, 우디 앨런은 그 감수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용했다.


잉마르 베리만과 유럽 예술영화

우디 앨런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은 스웨덴의 잉마르 베리만이다. 베리만의 실존주의적 주제—신의 침묵, 죽음에 대한 공포, 인간관계의 고독—는 우디 앨런 영화의 핵심이 되었다. <제7의 봉인>에서 기사가 죽음과 체스를 두듯, 우디 앨런의 인물들도 끊임없이 죽음과 대화한다.


또한 그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환상적 리얼리즘, 프랑수아 트뤼포의 자전적 영화 기법, 에릭 로메르의 대화 중심 서사에도 영향을 받았다. <맨해튼>의 흑백 촬영은 펠리니의 <8과 1/2>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철학과 프로이트

우디 앨런은 어니스트 베커의 <죽음의 부정>,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 깊이 영향받았다. 베커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죽음을 부인하며 살아간다고 주장했고, 우디 앨런은 이 주제를 거의 모든 영화에서 다룬다.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그의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거의 모든 우디 앨런 영화의 인물들은 정신분석가를 만나고 있으며, 많은 농담이 정신분석학적 주제를 다룬다.


뉴욕과 도시 문화

우디 앨런에게 뉴욕은 절대적 존재다. 뉴욕은 하나의 지명을 넘어 그가 속한 '미국 동부의 도시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그는 평생 뉴욕 맨해튼의 같은 아파트에 살며, 같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같은 거리를 걸었다. <맨해튼>에서 그는 "뉴욕에 있는 건축물들을 잘 알고 있고 주변과의 조화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세워진 새 건물을 보면 화가 난다"라고 말한다.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 센트럴 파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성지와도 같다.


전환점: <애니 홀>과 <맨해튼>

<애니 홀> (1977) 은 우디 앨런을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영화는 단순한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니라, 자신의 자전적 정신세계를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 코미디로 승화시킨 작품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인생이란 외로움과 비참함과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 차 있고, 게다가 너무 빨리 끝나버리죠." 이 한 문장이 우디 앨런 철학의 전부다.


뉴욕의 신경질적인 코미디언 앨비 싱어(우디 앨런)는 자유분방한 가수 지망생 애니 홀(다이앤 키튼)과 사랑에 빠진다. 둘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앨비의 강박증과 비관주의, 애니의 성장 욕구가 충돌하면서 관계는 서서히 균열이 간다. 애니는 로스앤젤레스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앨비는 뉴욕에 남아 과거를 회상하며 사랑이 왜 끝났는지 분석한다. 영화는 "관계는 상어와 같아.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어버려"라는 앨비의 말처럼, 사랑의 불가능성과 추억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애니 홀>부터 우디 앨런이 전설적인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대부>)와 협업했다는 점이다. 그 이전까지 그의 초기 슬랩스틱 코미디들은 시각적으로 평면적이었다. 하지만 고든 윌리스는 그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법을 가르쳤다.

<애니 홀> 출처: 네이버 블로그

<맨해튼> (1979)은 그 결과물이다. 42세의 TV 작가 아이작(우디 앨런)은 17세 고등학생 트레이시와 연애 중이다. 절친 예일의 불륜 상대인 지적인 여성 메리를 만난 아이작은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예일과 메리가 헤어지자, 아이작은 트레이시와 헤어지고 메리와 사귄다. 하지만 메리는 다시 예일에게 돌아가고, 뒤늦게 트레이시의 진심을 깨달은 아이작은 그녀를 찾아가지만 트레이시는 런던 유학을 떠나려 한다. 흑백으로 담아낸 뉴욕의 풍경 속에서, 중년 남자의 사랑과 우유부단함, 그리고 도시에 대한 애정이 펼쳐진다.

<맨해튼> 출처: 네이버 블로그

1980-90년대: 철학적 깊이의 심화와 스캔들

<한나와 그 자매들>(1986)은 중년의 세 자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로, 우디 앨런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뉴욕에 사는 세 자매 한나, 리, 홀리의 이야기가 2년에 걸쳐 펼쳐진다. 성공한 배우 한나(미아 패로우)는 완벽해 보이지만, 그녀의 남편 엘리엇(마이클 케인)은 한나의 동생 리(바바라 허쉬)에게 반한다. 엘리엇과 리는 불륜 관계를 시작하고, 리는 자신의 연인을 떠나 결국 엘리엇과 함께하게 된다. 한편 한나의 전남편이자 TV 프로듀서인 미키(우디 앨런)는 뇌종양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더 큰 공포, 즉 인생의 무의미함과 마주한다. 죽음과 신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 고민 끝에, 미키는 우연히 만난 한나의 막내 동생 홀리(다이앤 위스트)와 사랑에 빠지며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영화는 추수감사절로 시작해 다시 추수감사절로 끝나며, 사랑과 배신, 우연과 선택이 뒤섞인 예측 불가능한 인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임을 담담하게 말한다.

<한나와 그 자매들> 출처: 네이버 영화

<범죄와 비행>(1989)은 우디 앨런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지닌다. 성공한 안과의사 쥬더 로젠탈(마틴 랜도)은 위험한 불륜관계에 빠지게 되고, 그의 정부 돌로레스(안젤리카 휴스턴)가 집요하게 그를 압박하자 결국 그녀를 살해한다. 하지만 쥬더는 끝내 법적 처벌을 받지 않으며, 이전과 다름없이 성공과 명예를 유지한다. 영화는 신의 심판이나 도덕적 양심이 현실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냉혹한 사실을 드러내며, 이 테마는 이후 <매치 포인트>에서 더욱 신랄하게 전개된다.


스타일의 대전환: 신경증의 유머에서 욕망의 화폭으로

<매치 포인트> (2005)는 우디 앨런 영화 스타일의 극적인 전환점이다. 스캔들 이후 미국에서 외면받던 그는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고, 뉴욕을 떠나 런던으로 갔으며, 코미디가 아닌 진지한 스릴러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와 스칼렛 요한슨 같은 아름다운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런던의 세련된 풍경을 배경으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영화는 테니스 공이 네트 위에 걸려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는 행운이 되고 싶지 실력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사람은 인생의 깊은 곳을 꿰뚫어 봤다." 은퇴한 테니스 선수 크리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상류층 여자와 결혼하지만, 친구의 약혼녀 노라(스칼렛 요한슨)와 불륜을 저지른다. 노라를 살해한 크리스는 운 좋게 범죄에서 벗어난다. 강에 던진 반지가 네트에 걸린 공처럼 우연히 다른 곳에 떨어졌고,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도덕도, 정의도, 신의 심판도 없다. 오직 운만 있을 뿐이다. 나쁜 짓을 해도 운이 좋으면 처벌받지 않는다. 이것이 우디 앨런의 냉소적 세계관이다.

<매치 포인트> 출처: 네이버 영화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 (2008)에서 우디 앨런은 무대를 바르셀로나로 옮긴다. 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스,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는 욕망의 사각관계를 다룬 이 영화는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사그라다 파밀리아, 까사 밀라—을 배경으로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펼쳐진다. 매력적인 화가 후안(하비에르 바르뎀)과의 우연한 만남은 보수적인 비키(레베카 홀)와 자유로운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의 인생관을 뒤흔든다. 여기서도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과 우연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사랑과 욕망 앞에서 계획은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 출처: 네이버 블로그

<블루 재스민> (2013)은 케이트 블란쳇의 우아한 외모와 돋보이는 연기로 주목을 받았다. 뉴욕 상류층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어 샌프란시스코의 여동생 진저(샐리 호킨스) 집에 얹혀산다. 샤넬과 에르메스로 무장했지만 재스민의 정신은 위태롭다. 그녀는 운 좋게 부자와 결혼해 상류층이 되었지만, 그 운이 사라지자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었던 그녀의 삶은 전적으로 운에 의존했다. 영화는 공원 벤치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재스민의 완전한 정신적 붕괴로 끝난다.

<블루 재스민> 출처: 네이버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 (2016)는 우디 앨런 영화 스타일 변화의 정점이다. 전설적인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아포칼립스 나우>, <마지막 황제>)와 협업해 1930년대 할리우드와 뉴욕을 회화처럼 아름답게 재현했다. 스토라로는 르네상스 회화, 독일 표현주의, 현대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각 장면을 설계했다. 평생 필름으로만 작업했던 우디 앨런을 스토라로가 설득해 소니 F65 디지털카메라로 처음 촬영했고, 결과적으로 모든 프레임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했다.


브루클린 청년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할리우드 삼촌(스티브 카렐)의 비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보니는 안정적인 미래를 선택해 삼촌과 결혼한다. 바비는 뉴욕으로 돌아가 나이트클럽을 성공시키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몇 년 후 재회한 두 사람은 각자 결혼해서 성공했지만, 서로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새해 전날 밤, 바비와 보니가 각자 배우자와 함께 있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황금빛 나이트클럽에서 벽 너머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 물질적 성공은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없는 삶. 이것이 우디 앨런이 말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다.

<카페 소사이어티> 출처: 네이버 영화

초기 슬랩스틱 코미디의 평면적 촬영에서 <카페 소사이어티>의 회화적 미장센까지. 우디 앨런은 이제 단순히 개그를 보여주는 감독이 아니라, 시각적 예술가가 되었다.


"인생은 운"이라는 철학

우디 앨런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생은 운"이라는 철학이다. <매치 포인트>의 네트에 걸린 테니스 공, <블루 재스민>의 우연한 몰락,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의 우연한 만남, <카페 소사이어티>의 선택하지 못한 사랑. 모든 것은 운에 달려 있다.


우디 앨런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 대한 내 유일한 관점은 이겁니다. 인생이란 고통스럽고 악몽 같고 무의미한 경험의 연속이라는 것이죠.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속이고 남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착하게 산다고 보상받지 않고, 나쁘게 산다고 처벌받지 않는다. 도덕도, 정의도, 신의 심판도 없다. 오직 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디 앨런의 답은 역설적이다. 비록 인생이 무의미하고 운에 달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 예술, 재즈, 뉴욕의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비록 일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작품과 예술가, 논란의 사이에서

사실 우디 앨런에 이야기하면서 그의 사생활 논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92년, 당시 우디 앨런의 연인이었던 미아 패로는 우디의 집에서 패로의 21세 입양 딸 순이 프레빈의 누드 사진을 발견한다. 우디는 순이와 불륜 관계임을 인정했다. 그 후, 미아는 미아와 우디가 그들의 입양딸인 딜런(당시 7세)을 성추행 했다고 비난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코네티컷 주와 뉴욕 소셜서비스는 조사 끝에 성추행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었고, 예일-뉴헤이븐 병원 아동 성학대 클리닉은 딜런의 진술이 어머니에 의해 코칭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양육권 재판에서 판사는 미아에게 양육권을 주며 우디를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1997년 우디 앨런은 순이 프레빈과 결혼했다. 법적으로 우디는 순이를 입양한 적이 없었고, 미아와 결혼한 적도 없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도덕적 논란은 계속되었다. 연인의 입양 딸과 결혼한다는 것, 그것도 35세 연상의 관계라는 것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이 스캔들로 우디 앨런의 대중적 인기는 크게 타격을 입었고, 많은 배우들이 그와의 작업을 거부했다. 할리우드는 그를 외면했다.


우디 앨런의 사생활 논란은 그의 예술적 유산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보이콧했고, 할리우드는 그를 외면했다. #MeToo 운동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강화되었다. 예술가의 작품과 그의 사생활을 분리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사생활을 이유로 단숨에 그를 부정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48편의 장편 영화, 24번의 아카데미상 후보, 4번의 수상. 우디 앨런은 감독, 각본, 주연의 3역을 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화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영화는 현대 시네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애니 홀>은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바꿨고, <맨해튼>은 뉴욕을 영화로 표현하는 방식을 재정의했으며, <매치 포인트>는 도덕적 스릴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작품 그 자체만을 봤을 때, 우디 앨런의 영화는 분명 가치가 있다. 그의 영화가 탐구하는 주제들—죽음에 대한 공포, 사랑의 복잡성, 운명의 잔인함, 실존적 불안—은 보편적이고 시대를 초월한다.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 연기, <카페 소사이어티>의 비토리오 스토라로 촬영, <매치 포인트>의 긴장감 넘치는 서사는 영화사에서 중요한 성취다.


예술가와 작품을 분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는 각자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분명한 것은, 우디 앨런의 사생활 논란이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가치 자체를 지워버리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를 보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도덕적 결정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순수하게 예술 작품으로 감상하고 그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것 역시 정당한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맹목적인 찬양도, 무조건적인 거부도 아닌, 비판적 사고를 동반한 감상이다.


불확실한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디 앨런의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영향은 우리 자신의 신경증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의 인물들은 모두 불완전하고, 신경질적이며, 강박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우디 앨런은 인간의 약점을 비판하지 않고 유머로 승화시킨다.


그의 영화는 "인생은 운"이라는 냉정한 진실을 일깨운다. 우리는 운을 통제할 수 없다. 네트에 걸린 공이 어느 쪽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다. <매치 포인트>의 크리스는 운이 좋아 범죄에서 벗어났다.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은 운이 나빠 모든 것을 잃었다. <카페 소사이어티>의 바비와 보니는 운이 나빠 함께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디 앨런은 그 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록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 황금빛 나이트클럽에서 벽 너머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 그 기억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운명 앞에 선 예술가

우디 앨런은 신경증의 거장에서 미장센의 예술가로 진화했다. 초기 그의 영화는 마른 체구에 안경 쓴 신경질적인 주인공이 뉴욕 거리를 헤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그의 영화는 아름다운 배우들이 유럽의 화려한 도시에서 욕망과 도덕 사이를 갈등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애니 홀>에서 <매치 포인트>로, <맨해튼>에서 <카페 소사이어티>로. 그의 여정은 코미디에서 드라마로, 뉴욕에서 유럽으로, 평면적 촬영에서 회화적 미장센으로의 변화였다. 하지만 그의 핵심 주제는 변하지 않았다. 인생의 무의미함, 죽음에 대한 공포, 사랑의 복잡성,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은 운"이라는 냉소적 진실.


그의 사생활은 논란으로 가득하고,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현대 영화사에 남긴 족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예술가와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분명한 것은, 우디 앨런의 영화가 담고 있는 실존적 질문들—우리는 왜 사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2025년 현재 89세의 우디 앨런은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는 "난 죽음에 강하게 반대한다"라고 말한다. 그가 영화를 만드는 한, 그는 살아있을 것이다. 인생이 내 뜻 때로 흘러가지 않아 괴롭거나, 운명의 장난에 좌절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삶을 그리워할 때, 우디 앨런의 영화를 떠올려본다. 네트에 걸린 공처럼, 우리의 삶도 운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우디 앨런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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