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를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부임한지 벌써 여섯 경기가 지났습니다. 카마빙가가 새로 팀에 합류하여 미드필더는 매우 탄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벤제마는 꾸준한 활약을 해주고 있고, 비니시우스가 예상하지 못한 대활약을 하며 5승 1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팀의 상태를 안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토니 크로스, 카르바할, 베일의 부상으로 전력을 100% 쓰기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벤제마 외에 사용할만한 공격수가 없습니다. 움직임은 좋아졌으나 공격 포인트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아자르 역시 골칫거리입니다.
그러나 제일 심각한 문제는 수비입니다. 경기 결과로만 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xGA 지표를 볼 때, 19/20 시즌은 2번째로 낮고, 20/21시즌은 4번째로 낮았으나, 이번 시즌은 매우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모스와 바란이라는, 주력, 대인방어, 제공권 3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들이 이탈하며 센터백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공권과 클리어에서 문제를 보이는 나초, 좋은 기술과 속력을 갖추고 있으나 힘이 부족한 밀리탕, 신장이 작은 알라바 등, 개개인의 능력만 봤을 때 작년에 비해 수비가 많이 약화되었으며, 키퍼 쿠르트와의 하드캐리로 겨우 문제를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긍정적인 부분은 안첼로티 감독이 이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경기에서 3백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점을 볼 때, 수비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아직 하는 중으로 보입니다. 모드리치나 발베르데 같은 미드필더들을 믿고 수비 숫자를 더 늘리는 것으로 보이며, 알라바를 좀 더 공격적으로 활용하면서 공격 숫자가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발렌시아가 공격이 약한 팀은 아니기에 전반은 수비에 집중하여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4~5명의 선수만이 공격에 참가하는 역습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역습이 전개되는 속도나 패스가 미흡한 부분이 많아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반면 주도권을 잡고 천천히 공격을 하는 상황에서는 전반전 카르바할이 부상당한 뒤의 20분을 제외하면 무조건 3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442의 수비형태에서 공을 잡으면 3백으로 전환합니다. 왼쪽에 인원을 많이 배치하여 빌드업에 힘을 주고, 침투하는 오른쪽 인원에게 공을 넘겨 크로스나 컷백으로 찬스를 잡으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파이널 서드에서의 점유율은 왼쪽보다 오른쪽이 많은, 개막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전술이 크게 변경된 데에는 다음 요소들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1) 나초를 2인 센터백으로 사용했을 때 폼이 좋지 않아 수비수가 더 필요하다
2) 발렌시아는 442 위주의 수비 진형을 짰다가 역습하는 전술을 사용하며, 2톱을 상대하기에는 3백이 편하다
3) 윙어급 공격력을 가진 카르바할을 120% 활용하고 싶다 = 양 사이드에서 모두 공격을 하고 싶다
4) 알라바의 패싱 능력을 좀 더 활용하고 싶다
역습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발렌시아의 공격을 제어하고, 좌우 모두 적절한 공격 인원을 집어넣기 위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미드필더의 부족한 숫자는 알라바가 적극적으로 빌드업에 참여하며 메꾸는 방식으로 해결을 했습니다. 중거리 패스가 가능한 알라바가 왼쪽에 서는 것보다, 중앙에 서게 된다면 좌 우 공간을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날 알라바는 감독의 기대대로 센터백과 레지스타의 롤을 모두 잘 수행해주었습니다.
솔레르까지 부상으로 이탈하며 레알 마드리드가 쉽게 주도권을 쉽게 잡아 나가는듯 했으나, 카르바할이 부상을 당하며 큰 그림이 무너지게 됩니다. 전문 풀백이 아닌 바스케스가 나오면서, 발렌시아는 3가지 변화를 줍니다.
1. 바스케스 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2. 게데스나 막시 고메즈가 사이드로 빠지는 움직임을 가진다.
3. 토니 라토(교체로 들어온 왼쪽 풀백)이 전진하고, 전방압박을 세게 가져간다.
바스케스의 대인방어나 피지컬이 좋은 편은 아니고, 카세미루의 압박 대처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약점을 활용하는 겁니다. 또한 왼쪽 사이드의 수적 우위를 만들면서, 상대가 3백을 쓰지 못하도록 강제합니다. 3백은 2톱에는 강하지만 1톱에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대응을 하게 되는 포메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카르바할과 달리 바스케스는 안정적으로 공을 소유하고 주변 동료들을 활용할 줄 아는 풀백은 아닙니다. 오른쪽 라인이 볼을 전진하지 못하고 에러를 계속 내며 발렌시아가 좋은 공격 기회들을 잡게 됩니다.
카르바할이 이탈하고 다시 4백을 썼던 레알 마드리드는 후반 시작하고 다시 3백으로 전환합니다. 하프 타임 때 많은 전술 조정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공격 상황에서 윙이 본업인 바스케스는 오히려 카르바할보다 더 공격적으로 올라가고, 부족한 수비와 후방 빌드업을 메꾸기 위해 발베르데가 사이드로 이동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전술 숙련이 덜 된것인지, 수비 상황에서 순간적인 수비 숫자 증가에 발베르데가 합류하지 못하고 바스케스가 본인의 자리를 이탈하는 최악의 수를 두며 실점을 하게 됩니다. 바스케스의 킥과 스피드는 준수하나, 풀백으로서의 판단력은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모드리치의 체력 저하로 왼쪽에서 시작되는 발렌시아의 빌드업을 제대로 저지하지 못한 부분도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됩니다.
안첼로티 감독은 제 예상을 깨고, 과감한 선수 변화를 선택합니다. 6년 전의 안첼로티 감독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습니다. 고정이나 마찬가지인 카세미루와 모드리치를 교체합니다. 카마빙가와 호드리구를 투입합니다.
그리고 발베르데와 아자르를 빼고 요비치와 이스코를 투입합니다. 극단적으로 사이드에 힘을 주고, 중앙은 기동력과 에너지가 좋은 선수들로 숫적 열세를 극복한다는 방침입니다. 그렇게 포메이션은 아래처럼 변합니다.
저렇게 해도 수비가 버틸만했던 이유는 3백과 카마빙가의 공이 큽니다. 발렌시아는 1:0 리드 후 442 포메이션으로 완전히 잠그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역습을 당하더라도 3백이기 때문에 센터백 3 vs 공격 2의 상황이 나와 수비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리고 공격수에게 전달되는 롱패스들을 카마빙가가 차단을 해줌으로서, 소수의 인원으로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거의 차단했습니다.
이번 경기로 본 카마빙가는 정말 포텐셜이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많은 툴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동력이 좋으면서 활동 범위도 넓고, 카세미루처럼 피지컬을 활용하여 수비하는 영리함을 갖췄습니다. 시야가 넓어 패스를 보내기까지의 시간이 짧습니다. 킥의 궤적은 아쉬운 부분이 있으나, 개선이 비교적 쉬운 부분이기에 앞으로가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카마빙가는 공중볼 경합이나 몸싸움으로 공을 따내며 발렌시아의 공격 시도를 보이는대로 다 차단했고, 3백은 그나마 차단하지 못한 시도를 잘 저지했기에 안정적으로 공격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후반전인만큼 두 팀의 수행능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요.
이제 공격 부분의 변화를 살펴볼 시간입니다.
구조적으로, 4백은 2톱에게 취약합니다. 센터백 2명과 공격수 2명이 직접 경합을 하는 상황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442 형태의 수비를 하는 발렌시아에게 있어, 요비치의 투입은 활약과 상관없이 일단 불리함을 안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호드리구가 들어가면서, 바스케스와 발베르데 2명이서 전개하는 것과 달리 카마빙가, 호드리구, 바스케스 3명이 공격을 함으로서 우측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가기가 쉬워졌습니다. 결국 호드리구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받은 벤제마가 영리한 움직임을 가져가며, 비니시우스에게 어시스트를 하게 됩니다.
동점골은 안첼로티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보여준 장면입니다.
1) 호드리구는 카마빙가 덕분에 압박을 덜 당하고, 바스케스 덕분에 패스 플레이로 패널티 근처까지 갑니다.
2) 크로스를 받은 벤제마는 요비치가 있어 센터백의 견제를 덜 받고, 프리한 비니시우스에게 패스합니다.
3) 요비치를 의식하느라 늦은 센터백이 반응하기 전에 정확한 슈팅으로 비니시우스가 득점합니다.
역전골의 경우는 비니시우스의 정확한 킥, 그리고 요비치를 의식하느라 자신을 보지 못한 센터백의 맹점을 벤제마가 정확하게 파고들어 기록한 골입니다. 요비치의 투입이 간접적인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는 있으나, 전술적인 계산보다도 개인 능력의 비중이 높은 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있었던 플랜A를 준비해온 것, 예상치 못한 선수의 부상과 그로 인한 점수차에도 과감한 판단으로 동점골을 기록한 안첼로티 감독의 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실패 (14-15시즌),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실패를 겪으며 과감한 교체와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은건지, 지금까지의 안첼로티 감독은 플랜A는 조금 엉성할지 몰라도, 감당가능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전술적인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백 시스템은 최소한 442 시스템을 상대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며, 페를랑 멘디의 복귀까지 바스케스와 발베르데의 수비 전술만 조정이 잘 된다면, 임시 플랜으로는 괜찮은 선택지가 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주전들의 체력 소모가 많았기 때문에, 다음 마요르카 전에서는 꾸역승을 하더라도 서브 선수들의 선발과 요비치의 활용 방법을 모색해봤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