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훈 Oct 15. 2021

정치개혁이란 무망함

황교익 경기관광공사 사태를 복기하며

.


 # 1.   현 정부 들어 모 부처 산하 공사공단의 장을 임용 하는 과정에서 내정자가 떨어지고 전혀 다른 사람이 일순위로 올라온 적이 있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내정자 탈락을 공공연한 이유로 아예 임용 자체를 안했고, 그 결과 탈락자는 인사 비서관과 해당 부처 장관을 고발했다. 내정자는 부산 출신으로 문대통령 대선 등 부산지역 당 조직에서 활동해온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 2. 지난 2020년 대구 민주당으로 총선 출마한 사람 중에 지금 대구에 있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세네명? 정도 제외하면(그나마도 한명은 현 권영진 시정부 경제부시장, 한명은 시당위원장이다) 다들 어딘지 알수 없지만 어딘가에 갔다.


한때 돈 안드는 정치라는 예쁜 거짓말이 세상에 하나의 진실 처럼 부유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상 매표에 가까운 향응 살포, 과거 지역 할거 체제 하에서 일부 정치인 개인과 높은 수준으로 유착된 지역의 열성 지지자들(약간의 돈과 약간의 자의식 약간의 일체감 사이에서 움직이는)의 존재 그리고 정치를 매우 고고하게 보는 사대부 통치의 유구한 전통 속에서 돈 없이 정치를 할수 있게 하는 것과 정치에 돈이 안들게 하는 두 엄연히 다른 문제는 구별되지 못한채 대충 버무러져 '돈 안드는 정치'란 개혁으로 틀려버렸다. 사실상 딱히 그 분야의 현장을 모르는 지식인과 예쁜 거짓말을 좋아하는 언론, 개혁이라는 이미지를 선호하는 선수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았을가? 이 말이 안되는 일이 그렇게 현실화 되었다. 하긴 차떼기가 국민적 은어가 된 시점을 배경으로 했으니 대중적 열망 역시 컸을 것이다.


한국의 정당이 둘수 있는 유급 정당 사무원의 숫자는 사실상 한국의 의회가 수행하는 업무 수준이나 정치의 역동성에 비하면 택도 없이 적은 편이다. 그나마도 지구당이 사라지며 광역시도당에 많은 조직관리 사무가 이첩된 상황에서 지역 시도당에 인원을 나눠주면 서울에 백명 정도 인원이 남을까?


개인적으로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가장 공감가는 부분은 "정치로써 살고자 하는 이들을 정치로써 살아갈수 있게 하라는" 뭐 그런 말이였다. 하지만 이 돈 안드는 정치라는 현행 제도의 기조 아래에서 직장은 커녕 직업으로 정치는 아주 소수에게만 그 기회가 열려 있을 뿐이다. 출마하거나 몇 자리 없는 보좌관이 되거나, 그보다 더 자리 없는 유급 정당 사무원이 되거나. 시민사회단체나 기타 이해관계자 단체에서 이 문제를 취급하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그 대부분의 노동환경을 돌이켜보면...그건 빼자.


내가 아는한 대구에서만도 사실상 정치가 직업인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그중에 출마를 목표로 하는 이들(난 이들을 선수라 부른다)을 제외하고도 늘 언젠가 선거가 있을때 마다 나타나 조직을 꾸리고 업무를 보고 사람들을 모으고 정책을 만들고 기자들 만나고 하는 '아저씨'들이 존재한다.(난 그들을 스탭이라 부른다) 그들은 보좌관도 아니고, 정당의 유급 사무원도 아니다. 하지만 엄연히 그들은 단지 유급이 아닐뿐 정치라는 사실상의 업 속에서 살아간다. 이를 위해 다른 생계수단(밥벌이)가 있을지언정.


대선과 지선은 매우 중요한 취업의 장이다. 예전에 MB정부에서 청와대에 계셨던 우리과 모 선생님과 대통령이 작정하고 인사권을 썼을때 변동이 생기는 일자리가 몇개나 될지 헤아려본적이 있다. 회의비 나오는 그냥 무슨 위원회 위원까지 하면 최소 만단위다.(당시 7만 이야길 했는데  진실이거나 알콜이 만든 오산이거나) 온갖 공사 공단의 사장, 이사, 감사, 본부장, 실장부터 여기;저기 위원회 위원까지 사람들은 낙하산이라 욕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정치가 주된 삶의 터전인 스탭과 명망가들의 생계를 위해 그들이 그곳으로 가고, 해당 기관들은 예산 확보나 사업 진행의 편의 등을 들어 이를 이해하는 구조다. 사실상 돈을 묶고 미디어 선거, 말의 향연으로써 정치를 열겠다는 현행 제도의 핵심과 기조가 역설적으로 돈을 묶고 엽관주의를 열어버린 것이다. 그런 스탭과 명망가들이 아니라도 지역 수준에서 후보와 당, 후원회 수준에서 해소 할수 없는 온갖 비공식적인 경선/본선 캠프 운영을 위한 경비와 노력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보상되고 있는거라 생각하면 낙하산을 그냥 낙하산이라 욕하기 쉽지가 않다.


낙하산을 없애고 싶으면 사실상 직업으로 정치를 하고 사는 이들이 정치로 살아갈수 있게 하거나, 정치에 이들을 커버할수 있을 정도의 돈이 들어오게 해줘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하면 무슨 이야기 나올지 뻔하지만....적어도 낙하산이 그만 보고 싶고 앞에 상술한 모 공단 사태 같은걸 피하려면 대통령/지자체장이 되는데 빚진 사람들, 그 가운데 이권이 아닌 걸로 보상해야 하는 이들을 어떻게 챙기고 그걸 어떻게 제도화 할지부터 고민해야하는거 아닌가. 허나 그런 고민은 멀고 낙하산은 가깝다. 그리고 그 낙하산의 거두가 한 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정치개혁이란 고매하면서 무망한 껍데기만 그렇게 공중을 떠다닌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염병 시대의 정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