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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훈 Jan 05. 2022

전대협 동우회 유감.

가장 사랑하고 미워하는 “선배들” 비판.

전대협 동우 유감.(2020.01.05)


386이란 말이 언제즈음 부터 본격적으로 나왔는가 복기 해보면 아마 대략 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전후해 전민련~전국연합 초창기 중앙 조직과 학생 조직을 맡던 세대 일부가 선도적으로 제도정치에 들어가면서 386이라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등장했던거 같다. 그리고 2000년 제 16대 총선에서 이들 중 일부가 원내에 진출 하며 전대협 세대가 본격적으로 제도 정치의 한 주역이 되었다.


이를 다르게 생각해보면 전대협 세대가 제도정치에 본격적으로 데뷔한게 20년이 되었단 소리다.


그러면 이미 X86, 전대협 등은 정치적 새로움 보다는 극복과 "정치적 장의"의 대상에 더 가깝다 봐야한다.


그런데 아직도 전대협이란 이름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그 네트워크에 당시 여러 학교의 회장들(진짜 고생한 이들은 오간데 없고)이 모이고 있고, 그들은 X86이 전면에 나온지 20년이나 된 시점에서 그걸 상징적 기표로 정치권에 진출 하려 한다.


87년 항쟁으로 표상되는 희생의 정치와 잔혹한 국가 폭력를 견뎌냈다는 숭고함이 정치적 정당성 장치로 동원되는 시점은 불행히도 끝났다. 오히려 하나의 형태로 박제되어버린 표상을 어떻게 해체하고 다시 그것에 생명력을 '성찰적으로' 불어넣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에, 한국 사회가 사회경제적으로 새로운 위기와 변화에 놓인 상황에, 미래와 한국 사회의 전망에 대해서는 관성적인수준 이상으로 말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80년대에 뭘 했는지로 정치적 존재의 정당성을 가져오는게 얼마나 불행하고 비극적인 일인가.


이건 역사에 대한 일종의 지대 추구적 행위 아닌가? 그 역사를 개인이, 집단이 전유하지 않고 개방하고 확대해야 하는데 지금도 그걸 정당성 기제로 활용하는건 지적, 정치적 게으름이고 무책임 아닌가. 그 세대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과 해악)을 성찰해도 모자랄 당사자들이 과거의 역사에 대해 지대를 추구한다면 솔직히 전대협 동우회는 청산의 대상이고 다른 이름의 타도의 대상 아닌가. 조국 장관 사태에서 배운게 무엇일까 묻고 싶다.


* 이건 어떤 특정 개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총선 대선 앞두고 전대협 동우회 이야기가 자주 내 귀에 들려 나오는 엄청난 짜증의 표출이고 사랑하고 동경하는 선배들에 대한 매우 불경한 존경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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