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들과 눈높이 맞추기
지난 한 주 지방 출장이 많아서 참 힘들었다. 엄마가 픽업을 못해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학원과 집을 오갔을 거다. 초2부터 혼자 버스를 타고 학원을 다녔던 참 대견하고 고마운 아이..
요즘 같은 시대에 초 2학년이 30분 정도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녔다면 다들 깜짝 놀라는 일이다. 어느 여름날엔가는 아이가 학원 끝나고 2시간이 넘어가는데 집에 안 오고 연락도 안되고.. 정말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아이에게 위험한 일을 감행했나. 온갖 생각이 머리를 미치게 했다.
다들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 기다리다 결국 통화가 되었다. 버스가 너무 막히는 금요일이어서 버스 타나 걸어가나 일거 같아서 버스 노선대로 집까지 걸어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 목소리는 길 잃은 자가 아니라 뭔가 탐험하고 있는 아이의 자신감,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그 빙빙 돌아오는 노선대로 걸어서 그 길을 올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혹시 몰라서 오는 중간중간에 영상도 찍으면서 왔다고 한다. 신변보호 및 기록용으로.. 나름 주도 면밀했구나.
그 여름에 어린아이가 2시간가량 초행길을 걸어오다니.. 안전하게 돌아와 감사하고, 또 이런 생각을 행동에 옮긴 게 신기하고.. 그래도 담엔 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난 또 최단거리 루트도 알려주었다. ㅋ
물론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는 아이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학교 기말고사 스트레스로 감정 기복이 심해서 나도 참 대하기 어려운 시점이라 말을 아낀다고 하는데도, 쉽지 않다.
본인은 쉽게 풀어서 제출했던 주관식 시험이 계산 실수로 매번 몇 개씩 본인의 예상치와 다르게 틀리나 보다. 다시 꼼꼼히 했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그래서 그 진전이 생각보다 느리고 극복하기 어려운, 넘어야 할 산처럼 느끼나 보다. 목요일에 학교에 가서 2번의 주관식 수행이 20점 만점인데 첫 번째 결과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안 좋아서 수학학원에서 문제풀이를 하면서도 풀이 죽어있고 이렇게 해도 또 계산 실수가 나오겠지.. 이런 자책들도 있었나 보다. 2번째 수행평가까지 합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잘 방어를 했는지 다시 또 약간 기분이 올라와 있었고, 오늘은 집에서 쉰다고.. 여유롭게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다가 자유시간을 갖고 늦게까지 안 잘 거라고.. 나에게 선언을 한다..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고 말로는 하면서 ㅎㅎ 그럼 씻고 일찍 자는 게 좋겠다. 전자기기 잠시 내려놓고 거리두기 하면 좋겠네 오늘은.. 이 말이 화근이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는 말 때문에 쉬라는 말이, 자기가 생각했던.. 자유롭게 게임이나 유튜브를 하겠다는 말이 오늘은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는 말이었다니.. 아무런 논리적 모순이 없는데도, 그 말이 아니라며 ‘톡’ 붉어지는 감정선,
역시 질풍노도, 힘이 세다.
오늘은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신나게 할래요!!하면 안 되나? 평소에도 사실 크게 규제하지도 않는데, 본인이 요 근래 시험공부로 맘껏 못하고 자제해 오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인가?
그래도 여하튼 오늘은 며칠 전 해프닝이 씻기는 또 하루여서 나도 마음의 돌을 또 하나 내려놓았다. 아이의 감정선을 나는 같이 타고 떠돌아다닌다. 어느 지점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하는 게 아이의 마음에 닿는 길인가?
다소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아이였던 게 이 시기가 되니 또 한 번 그 기질이 나타난다. 항상 그림을 보면 그 감수성이 묻어났었고, 그걸로 많이 해소를 했던 아이 었는데, 스마트폰은 그런 부분을 즉흥적인 기쁨들로 치환해 버렸다.
그런데 그런 모습마저 나이기에.. ㅎㅎ 한참 잊고 있었던 나!!! 바로 그 아이가 어쩜 내가 지금엔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억도 안 나지만, 그 시절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아빠는 어떻게 헤처 나가신 걸까?
오늘도 새벽에 눈을 뜬다. 마음은 실컷 늦잠이라도 자자! 이런 생각이었지만 지방 출장으로 새벽기차를 타던 기상 패턴이 오늘도 여전히 나를 깨웠다.
잠이 없고, 작은 소리에도 잘 깨는 것도 나를 닮았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유전정보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되어 발현되는가?
아이가 늦잠 자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언젠가 아이가 사춘기의 질곡을 다 지나고 나서 이 글을 보고 엄마가 매일매일 본인의 감정선을 따라서 하루하루를 떠나녔단 사실을 늦게라도 기록으로 알기를..ㅎㅎ
난 사회에 나가서 참 많이 변했고, 좋은 선배와 동료들을 만나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동기들 중에 막내로 입사했고, 4~5살 많은 언니, 오빠들과 입사동기가 되면서 막내인 내가 동기 회장이 되고, 사장님 앞에서 대표로 뭘 해야 할 기회도 많았고, 막내여서 관심 가져주시고 주목해 준 경우도 많았다. 그런 기회가 많아지면서 차츰 알에서 깨고 나오듯, 한 겹을 덮고 있던 껍질을 벗게 되었다. 지금도 일부러 나서는 것은 참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책임감으로 온몸의 에너지를 밑바닥부터 끌어올려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의 준비가 필요하고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렇다. 그래서 나의 아이는 안 그러길, 아니 덜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자꾸 말을 보태게 된다. 다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단 걸 알면서도 말이다. 버려야 채워지는 것이기에, 난 오늘도 퇴사 준비생이다. 항상 요즘엔 그걸 언제 버리느냐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에 무엇인가 앞당겨지거나 아예 미뤄지거나 할 것 같다. 어렵다... 세상살이와 한 인격의 성장 과정을 담대하게 지켜보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