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줌마 관찰기>
나는 무지하고, 경험 없고,
적당한 재료도 없는
불리한 상황에서 일을 시작했다.
‘zero’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minus’에서 출발한 셈이었다.
- Sheila Kaye-smith
<부엌 노동 kitchen fugue/1945>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에 나온 인용문이다. 책의 전체 285페이지 중에서 가장 마음이 동한 문장이다.
나는 살림을 배우지 않은 채로 아줌마가 되었다. 중학교 교과목 중에 가정 과목이 있긴 했었다. 성은 잘 기억 안 나는데 이름이 유나였던 선생님이 어느 날, 얇은 니트 소재의 체리 패턴 크롭 카디건을 입고, 립글로스를 반통 바른 입술로 수업에 들어와서 교탁에 두 팔꿈치를 대고 상체는 앞으로 숙인 채로 (마치 소개팅에서 관심 있는 상대가 나왔을 때 제스처)
“얘들아, 너희 반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애가 누구야?”라고 물었었다.
아이들 반응이 미지근하자
“음, 선생님 생각에는 승일이가 제일 괜찮아. 지금 너희한테는 저런 슬림하고 단정한 타입이 별로 인기 없겠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고 보면 알게 돼. 승일이 같은 타입이 꽤 괜찮았다는 걸.”
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소리 없이 뜨악했다. 승일이라고? 승일이가 진짜 저평가된 가치주였나? 그 친구의 숨겨진 매력을 못 알아보는 우리가 애송이였나? 그건 잘 모르겠고 그렇게 잘 아는 선생님이 왜째서 싱글인지는 더 미스터리했다.
지금 오십 대가 되었을 유나 선생님이 이 글을 본다면 (그럴 리 만무하여 시원하게 썼지만) 부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기 바란다.
다시 말해 나는 의무교육과정으로부터 살림하는 데 쓸모 있는 것을 배우고 익힌 바가 없다.
다들 어디서 살림을 배워서 각자의 살림살이를 잘도 꾸려가는 걸까?
진짜 살림 학원이 있다면 오전 아홉 시 신혼 특강반에 등록해서 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1강 세탁 수업에서는 ‘dry clean only.’라고 표기된 의류의 가정 내 세탁방법에 대해서도 배우고, (세탁소에 다 맡기다가는 집안 경제 거덜 나겠음.)
여러 번 빨아도 쉰내가 나는 수건의 원인 등등… 손을 번쩍 들고 질문하고 싶은 것이 넘쳐났다.
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나 ‘생생정보통’ 같은 프로그램이 장수 프로그램인지 아줌마가 되고 나서 대번에 알게 되었다. (지금도 하나?)
나의 스크린 타임 최다 사용 앱인 ‘instagram’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림을 사는지 조사하거나, 스마트하게 siri에게 내일 날씨를 묻고 알람을 요청할 수는 있었지만,
목화솜 이불에 아이가 쉬했을 때 어떻게 세탁하냐는 질문에 siri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instagram에서는 자꾸만 뭘 살 것을 권유받았다. 초강력 세제나 변기통 닦는 신박한 솔 같은 것들을.
짐작보다 더 살림은 생활에 밀접히 닿아있어서 살면 살수록 불편과 번거로움을 자주 느껴야 했다.
해결하는 데는 경험치가 총동원되어야 했다. 주부 살림 몇 단, 살림 고수 이런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살림에도 레벨이 있다면 나는 하수였다.
siri의 정보처리 기능이 업그레이드되면 내 불편의 가짓수도 줄어들까? (힘을 내요 apple)
할머니와 엄마의 살림이 달랐듯이 엄마와 나의 필요가 다르고 에너지를 쏟는 살림의 종목도 다르다.
사람 사는 방식 따라 살림 사는 모습 모두가 다른 것이다. 달라서 재밌다.
참으로 사적인 영역이라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은밀한 살림을 살며 개개인의 다양한 면면을 보게 되는 것이 재미있다. 진짜다.
살림하며 재미라도 찾아야지 안 그러면 못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