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Jul 18. 2022

놀이터에서 생긴 일

<나의 아줌마 관찰기>


진정한 친구는 가장 큰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친구를 얻기 위해
가장 적은 노력을 한다.
– Francois de la Rochefoucauld -




친구의 ‘조동 모임’ 사진을 보았다.


친구 딸을 포함해 아직 돌이 안된 아기 예닐곱 명이 소파 위에 조르륵 앉아 있었다.

솜털 같은 머리에 레이스 두건을 두르고, 나란하게 지하철을 타고 가는 취한 승객처럼 기우뚱하게 앉아서 울거나 웃거나 찡그리고 있었다.

조동모임은 조리원 동기 모임의 줄임말이라는데 이게 낯설어 입에 붙지가 않았다. 뭐 무슨 모임?


남편은 근무로 바쁠 테니 출산은 친정 근처에서 하는 게 마음이 편하겠지 싶어 선택한 조리원이었다. 거주지가 아닌 곳에서 몸조리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먼저 아이를 낳은 지인들은 내 기대와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기 낳고 조리원 안에서 동기 모임 만들면 외롭지 않고 적응하기도 좋은데. 아직 안 늦었으면 다시 생각해봐. 난 아직도 조리원 동기들이랑 자주 만나.”


개의치 않고 친정 근처에서 몸조리를 했다. 내 몸 같지 않은 몸 건사하기도 바빴다. 남들은 시간 맞춰 젖을 물리며 오만 떼만 토크를 나눈다던데.


나는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편이었다. 처음 하는 수유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노출하고 싶지도 않고, 씻지도 못하고 퉁퉁부은 몸뚱이로 젖이 잘 나오는 편인지 둘째 계획은 어떠한지 양가 부모님 반응이나 휴직 계획에 대해 공연히 나누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좀 더 융통성 있고 친사회적인 성격이었다면 조동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마치 게임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을 보았는데 순간적인 손가락 판단 미스로 화면이 지나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조동모임은 정말 버프템이었을까?


선택할 거리들의 연속이었다.

돌이 지나고 아이를 데리고 간 문화센터에서도 나는 친구를 사귀어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아이의 친구의 엄마. 그런데 아이는 아직 어려 서로 대화하고 놀 줄 모르니, 내 아이의 친구라고 해도 되나? 그럼 엄마 친구 딸인가? 가만, 이것도 ‘친구’ 맞나?


아줌마가 되어 사귄 ‘친구’ 관계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예를 들면 관계 초반 막 사귀기 시작할 땐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는 점. 한참을 누구 엄마 누구 엄마로 부르다가 나중에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고 수다도 떨다가 더치페이를 하게 될 일이 생겼을 때, 띠링! 울리는 예금주 성함으로 그제야 상대의 이름을 확인한다.


“아 누구엄마 이름 이유였구나. 이름이 이쁘네.”


그러고는 또 커피 마시고 빵 먹고 애들 놀리다보면 이름 부를 일이 없어져 상대 이름을 까먹게 된다.

휴대폰에라도 저장하게 되면 모를까. 010-1234-5678 누구엄마. 밑에 김 아무개.


이름 없이 만나는 관계는 처음이라서 마치 닉네임을 획득한 가상세계 같기도 하다. 84누구맘. 79땡땡언니. 로 명명되어 관계를 맺는다.


관계의 시작은 대개 이렇다. 지난번 하땡이 엄마가 유명 한의원에서 파는 비타민 젤리랑 드링크를 내밀기에 받아왔는데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그 조그만 간식 가격이 커피값이 훌쩍 넘더라. 헉.

(이거 120퍼 그린라이트?)


당시 나는 줄 수 있는 게 혼합제제 범벅인, 드럭스토어에서 1+1 벌크로 파는 젤리밖에 없어서 “아유 어뜩해 우린 줄게 없네 저 이거라도..” 하고 내밀었는데 하땡이가 먹기 전에 엄마에게 인터셉트당했다.

“우리 하땡이 아직 이거 안먹어봐서.”


어제도 놀이터에 나가 아이를 좀 놀리고 벤치에 앉아있으니 1005동 세땡이 엄마가 방울토마토랑 무가당 젤리를 들고 나와 애들한테 나눠준다.


나도 적당히 뭐가 첨가된, 너무 비싸 호들갑스럽지 않은 상대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적당한’ 먹을거리를 찾아서 지퍼백에 넉넉히 담아 놀이터에 영업용으로 챙겨 나간다.

우리 우정이라고 해도 될까.


아줌마가 되어서 사귄 친구와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만난 친구는 관계의 결이 다르다. 나는 진짜 ‘친구’가 사귀고 싶은데. 참내 진짜 또 뭐고. 가짜는 뭐고. 사귀기 어려운 건 나만 그런가? (빌런은 바로 나?)


친정엄마 왈, 아무 아줌마나 그냥 사귀라고.

뒤돌아보니 그 나이 때 같이 애 키우면서 아줌마들 사귀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단다.

(엄마 나 그때 엄마 친구 누구냐 그 희진이 아줌마 딸이랑 놀기 진짜 싫었거든!)

근데 아무나 아무렇지 않게 적당히 사귀는 게 아무래도 안되는 아줌마는 어이해?



+ tmi :-)

오늘 저녁에 아줌마들끼리 약속이 있다. 3단지 우땡엄마 이땡엄마 등등 몇몇이 모여 비도 오는데 애들 재우고 후딱 부침개에 막걸리 먹기로 했다.

아줌마가 되어서 마음 맞는 친구 한 명이라도 사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도 상대도 더 강해지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기를!

이따 우산 들고 슬 나가봐야지.

맥주의 힘을 빌려도 될까.



























작가의 이전글 살림 학원 다녀야 될까 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