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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n 06. 2019

집안에서 유일한 IT 담당자로 활약한다는 것

부모님과 형제로 이루어진 4인 가족에서 형이 독립해 나간 뒤로 겪게 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IT 전문가가 한 명 줄었다는 것이다. 즉, 공유기가 고장나도, 컴퓨터가 멈춰도, 스마트폰의 동작이 이상해도 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달리 의지할 곳 없이 벌어서 먹고 살며 생활을 챙기는 일을 모조리 알아서 해야 하는 1인 가구로 사는 사람이 듣자면 그게 별거냐 싶겠지만, 전산 업무를 둘이 나눠 하다 혼자 하게 된 처지가 아주 가뿐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나도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유교적 양심이 있으므로 번거로운 일이 터질 때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곤 한다. 부모님은 20대의 어린 나이에 돈을 벌고 자다 깨서 형과 나의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이며 살았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스마트폰 설정하는 것 정도로 괴로워할 수 있겠는가…… 라는 식으로 전통적 가치의 늪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효도는 한국 사회에서 여러가지 효능을 갖춘 특효약 같은 것이라, 그런 생각으로 나를 채찍질 하고 나면 뭘 해도 귀찮다는 생각까지 들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작업들을 하면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아무래도 걱정스러워진다. 잘 따져보자. 아이는 자라면서 세상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어느 시점부터 적어도 첨단 기기에 대해서는 부모보다 더 해박해진다. 하지만 전후 세대가 첨단 기기를 계속 써서 더 잘 쓰게 되고 갖가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건 아닐 확률이 높다. 온갖 기기들은 점점 복잡해지기만 할 것이고, 스마트폰이나 앱을 만드는 천재들은 계속해서 앱을 아이콘으로 도배하고 문자는 제거할 것이며, 업데이트 할 때마다 화면 구성과 버튼의 위치를 바꿔댈 것이다. 요컨대 자동차나 비디오데크 같은 물리적 기기의 사용법을 차근차근 익히듯이 익힐 수 없다는 뜻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늙은 아버지를 위해서 비디오데크 사용법을 차근차근 적어두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최근에 그 비슷한 것을 시도한 적이 있다. TV에 연결된 크롬캐스트(소형 무선 셋톱박스 비슷한 것이다)와 스마트폰을 연결해서 영화를 트는 방법을 어머니에게 알려드리려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방법을 적어두면 해보겠다고 했고, 나도 잠시 그러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펜을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잘 생각해 보니 나도 매번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접속 아이콘이 뜰 때도 있고 안 뜰 때도 있고 앱을 나갔다 들어와야 할 때도 있고 같은 영화도 그림과 위치가 자꾸 변해대는 터라 ‘이렇게 하면 만사 해결!’하고 명쾌한 풀이를 적어둘 수가 없었다. 솔직히 볼륨 조절이 앱에서 되는지 안 되는지도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할 때 ‘나중에 더 좋은 생각이 나면 어쩌죠? 버튼은 그 자리에 있는데?’ 같은 얘기를 하며 무궁무진한 변화의 가능성을 자랑했는데, 그 무궁무진한 변화 덕에 난처해지기도 한 셈이다. 누가 구름의 모양을 글로 가르칠 수 있겠는가?





복잡한 기계 앞의 어른은 자라지 않는 아이와 같다


몇 년 전, 아버지는 오래도록 쓰던 낡은 폰(시크릿 노트)에서 G7으로 스마트폰을 바꿨다. 최신폰도 아니고 안정적으로 사진 잘 나오는 삼성폰도 아닌 LG의 이전 세대 스마트폰을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OLED때문이다. 아버지는 애초에 새 폰을 쓸 생각이 없었고, 중고로 사서 5년은 쓸 작정이었기 때문에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노후되어 결함이 발생하는 OLED보다 수명이 긴 LED 패널을 골라야 했던 것이다. 나도 엇비슷한 방침이라 오래도록 LCD만 고집하고 있었으니, 요즘 플래그쉽 스마트폰들이 죄다 OLED만 달고 나오는 것은 의도했건 아니건 스마트폰에 100만 원씩 쓰긴커녕 보험 들기도 부담스러워하는(중고폰은 가입이 어렵다) 사람들의 선택지를 불사르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그런 사람들이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넘보는 게 잘못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일리는 있겠으나.


각설하고, 지하철 왕복 3시간으로 상태 좋은 매물을 입수한 나는(효심이 지극해서 그런 건 아니고 바꾸는 김에 내 것도 바꿨다) G7에 액정 보호 필름을 씌우고 케이스를 씌우고, 데이터를 이전했다. 어째서인지 케이블이 먹히지 않아서 SD카드로 백업하고 복구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렇게 하고도 열 개 정도의 앱은 이전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이전되지 않은 앱의 목록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하나씩 재설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마이크로 유심을 칼로 잘라서 나노 유심으로 개조했다. 거기까지만 하면 어려운 고비는 끝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일단 잡다한 메모를 옮겨야 했다. 흔히 그렇지만 제조사가 만든 고유의 메모 앱에 적힌 기록은 타사의 앱과 호환되지 않는 법이라 백업 복원이나 동기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가장 무난한 방법은 PC에 데이터 매니저를 설치해서 메모를 빼고 변환한 뒤에 다시 다른 앱으로 집어넣는 것인데, 시크릿노트를 만든 팬텍이 유지되지 못한 탓인지 이 데이터 매니저 하나를 아무리 애써도 구할 수 없었다. 과거 포털사이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자료실을 뒤지면 있을 줄 알았는데 애초에 그 ‘자료실’ 자체가 두어 곳을 제외하면 폭파된 뒤였다.


결국 나는 이 고생을 하느니 그냥 수동으로 옮기는 게 빠르겠다고 판단하고 시크릿노트에 구글의 메모앱인 구글킵을 깔았다. 그리고 무선 키보드를 연결해 봤다. 다행히 알트 탭(작업창 전환)도 잘 먹혀서 서른 개쯤 되는 메모를 텍스트 수동 복사로 옮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처음부터 그렇게 할 것을, 하고 후회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메모였다.


당연하게도 아버지의 메모에는 어른들이 그냥 그렇게 하듯이 개인정보가 많이 적혀 있었다. 비유하자면 금을 묻어놓은 장소를 적어놓은 수첩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넣고 다니는 꼴이었다. 뭐가 되었든 잠금을 걸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G7을 인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인데, 아버지는 스마트폰과 관련된 일체의 작업을 어지간히 귀찮아하는 사람이었다. 충전을 자주 안 하는 것은 물론이고 놓고다니는 것도 일쑤며, 기본 홈화면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도 귀찮아서 간편 홈화면을 쓰면서 무슨 앱을 쓰려 할 때마다 앱 버튼을 누르고 페이지 대여섯 장을 넘겨서 실행하는, 기술 친화적인 사람이라면 보고 있는 것만으로 불합리함에 이성을 잃을 것 같은 사용법을 편안하게 여기는 양반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왜 화면을 두 번 두드려서 깨워야 하냐며 귀찮다고 불만을 갖기도 했는데, 아니…… 그럼 시크릿 노트는 그냥 보기만 하면 저절로 홈화면으로 들어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도저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불만사항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크릿 노트는 홈버튼이 있는 모델이라 그냥 그걸 누르고 스와이프하면 그만이었다. 요는 화면이 전면 가득한 모델과 사용 패턴이 맞지 않는 셈이었다.


다만 그 불만사항 덕분에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는 좀 수월했다. 지문을 등록하면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 잠금을 풀 수 있으니까. 그리하여 아버지가 안드로이드를 몇 년이나 쓰고도 한 번을 접하지 않은 패턴 등록 대신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지문 넷을 간신히 입력하는 데 성공했다. 더 편하게 얼굴 등록까지 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아버지는 ‘귀찮게 무슨…….’으로 거절했다. 그래도 그것으로 일단 보안 문제도 해결은 했다.


그러나 G7 자체의 문제점까지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카메라가 좋은 스마트폰을 원했는데 애초에 좋은 카메라와 LCD를 모두 얻기란 불가능해서 타협한 게 G7이었으니 동일 세대의 다른 폰에 비해 좀 처지는 G7의 카메라를 보완할 구글 카메라(개발자들이 사진 잘 나오기로 유명한 구글 픽셀 시리즈에서 뽑아낸 앱이다)를 찾아내야 했던 것이다. 사실 예전에 G6에서 쓰던 버전이 깔끔하고 빠르게 잘 구동되었기에 그거면 될 줄 알았는데 기기가 바뀐 탓에 호환이 되지 않았고, 그나마 안정된 버전은 좀 느린 편이었다. 


그리하여 어제도 나가서 몇 개의 카메라를 돌려가며 테스트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뜻밖에도 엘리베이터에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아버지는 뭘 입력하라고 뜬다며 짜증스럽게 폰을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니 안드로이드가 보안상 기본적으로 가끔 묻는, 생체 정보가 아닌 수단의 확인 절차였다. 패턴이 있으면 패턴을 넣으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번호를 설정해둬서 번호를 묻고 있었고, 아버지는 내가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가르쳐줬다는 사실 자체도 잊고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아버지는 겨우 잠금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지만(그 과정에서 ‘확인’이나 ‘입력’ 대신 체크 표시로 되어 있어서 몇 초 헤매야 했다) 당연히 짜증을 냈고, 나는 패턴을 입력하면 좀 수월할 거라고 했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것은 ‘귀찮게 무슨’ 이라는 대답이었다. 그즈음해서 나는 슬슬 선풍기나 자동차, 혹은 컴퓨터처럼 직접 손으로 다루고 이해할 수 있는 원리로 돌아가는 기기(컴퓨터도 개인이 분해조립해서 성능을 개선할 순 있으니까.)가 아니면 영 호감을 가지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스마트폰의 놀랍고 편리한 세계를 전파하려는 노력을 상당부분 내려놓기로 했다.


어쨌든 집안에서 유일한 IT 담당자로 활약한다는 것은 이런 식이다. 열심히 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 엇비슷한 것도 크지 않고, 부모님은 늙고, 모든 건 더 복잡해지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5년 안에 내 역할을 완전히 대신해줄 기막힌 시스템이나 온라인 도우미 같은 것이 나올 수 있을까? 아무래도 회의적이다. 솔직히 내가 60대가 된 뒤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어르신, 보건소 가서 인식용 칩 하나만 심으시면 의식을 서버에 업로드해서 가상 세계에서 무한한 아바타를……’ 하는 말에 나 역시 ‘됐어, 귀찮게 뭐 그런 유치한 걸!’하고 짜증을 내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소한 버튼 변경 하나만 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추신

이 글을 쓴 다음날, 아버지가 기본 화면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폰을 내밀었는데, 보자마자 내비바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이번 업데이트로 왼쪽의 점을 두 번 눌러서 내비바를 없애는 기능이 생겼는데, 같은 증상으로 어머니도 질문한 적이 있다. 


*추신2

전화를 워낙 잘 안 써서 나조차 스마트폰으로 전화 받는 방법을 헷갈리곤 한다. 주머니에서 화면이 눌려서 멋대로 통화가 연결되는 걸 막기 위해서 가운데 버튼을 끌어서 원 밖으로 옮기거나 좌측/우측의 버튼을 드래그하는 따위의 방식이 들어가는데 이게 제각각 다르고 심지어 영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이 버튼을 누르면 이 기능이 실행된다'는 리모콘적인 디자인과 현실 사물을 모사하는 스큐어모피즘으로 출발한 이래 iOS도 안드로이드도 효율적으로 진화했지만 그 결과물에는 직관성이라곤 남아나지 않은 것 같다. 스마트폰에 말귀 어두운 음성 인식 비서를 넣기 이전에 설명 화면 출력 버튼 따위를 넣어야 하는 게 아닐까…….


*추신3

이 글을 쓰고 시간이 흘러흘러 지금은 아버지도 나도 별수 없이 삼성 스마트폰을 쓰고 있으며, 크롬 캐스트는 리모콘이 지원되는 신형으로 바꾸었다. 아버지의 스마트폰에 대한 불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크롬 캐스트는 뭘 누르면 화면의 뭐가 움직이는지 명백히 보이는 셋톱박스와 비슷해서 훨씬 나아졌다. 역시 손톱만한 아이콘이 여기 떳다 저기 떴다 해서 영 알 수 없는 방식보다는 리모콘으로 명확히 조종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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