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산에 다녀온 뒤로 2주를 쉬었다. 그 사이에 나는 표면 코팅이 갈라진 등산화를 다시 보기 좋게 만드느라 도색을 하고 코팅제를 바르기도 했는데, 비싸고 적절한 재료를 쓰지 않아 금방 갈라지고 말았다. 그냥 색깔이 들어간 왁스나 잘 발라놓는게 가장 속편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내가 밟아서 밑창을 망가뜨린 후배의 부츠를 수선했고, 아름다운 가게에서 산 등산 바지의 밑단을 재봉틀로 수선해 보다가 실패해서 세탁소에 맡기기도 했다. 실패가 많은 시기였다. 이 과정도 모두 이후의 수리 활동에 다소 도움이 되긴 했지만, 사실 실패로 이어진 시도 대부분은 후회되고 고통스러웠다.
흔히 에디슨이 전구 개발 과정에서 겪은 실패를 실패라 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은 전구 개발 방법을 많이 알아낸 것’라는 식으로 표현했다는둥, ‘과거의 실패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둥 하며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그 정도로 넓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살긴 쉽지 않다. 바쁘디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 누구나 시간을 빚지고 있고, 따라서 당장 명확한 길을 곧게 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시금 등산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길을 잘못 들어도 처음 보는 광경으로 보상을 받는 일이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3월 첫 주에 갈 곳은 큰 고민 없이 관악산으로 정했다. 삼성산의 쁘띠 지옥을 맛보고 나니 서울 남부의 본가라고 할 수 있는 관악산을 다시 가보고 싶어진 탓이다. 전에 가본 서울대 신공학관 코스는 대중적일 따름이지 별로 멋진 코스가 아니었으니 이번에는 더 강렬한 곳을 가고 싶기도 했다. 물론 추천할 만하냐, 전혀 아니냐 따지자면 서울대 신공학관 코스도 추천할 만한 코스이긴 하지만, 거의 계곡길이라 풍경이 좋지 않고, 길이 짧은 만큼 경사가 심해서 정상부의 짜릿함을 빠르고 안전하게 맛보고 하산하기에나 적합하지, 초보에게 산에 오르는 과정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전하기엔 눈곱만큼도 맞지 않다. 볼 거리가 없는 데크 계단길은 운동기구 ‘천국의 계단’의 야외판이나 마찬가지라 등산 포교 실패의 지름길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계산도 산이라기엔 체력단련장에 가깝다)
그리하여 이번에 갈 코스는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암릉이 험하며 경치는 좋은 사당 코스.......의 파생 코스인 ‘파이프 능선’ 코스로 정했다. 사당 코스를 알아보는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능선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는 말에 당장 매료되고 만 것이다. 내가 본격적인 등산에 빠진 계기가 ‘숨은벽’이었던 걸 생각하면 남들이 잘 모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런 느낌을 주는 길에 끌리는 건 천성인 모양이다.
사당 코스는 이름에 걸맞게도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터라 마음이 퍽 가벼웠다. 관악산 입구보다야 집에서 멀지만, 사당역은 서울 중간에 있는 만큼 걸핏하면 지나는 곳인데다, 역에서 나와 버스를 탈 필요도 없이 조금만 걸으면 등산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산은 접근성이 좋아야 마음편히 가기 좋다. 지하철을 타고 길게 이동하는 동안 앉아서 취하는 수면도 제법 꿀맛이긴 하지만, 가깝거나 최소한 환승이라도 적게 해야 어느 세월에 거길 갔다오나 하는 저항감이 줄기 때문이다.
역에서 내려 관음사 일주문을 지날 때쯤은 11시였다. 아침을 지독하게 늦게 시작하는 나로서는 아주 이른 출발이었다. 이날 온도는 8도 정도로, 등산을 하기에는 쾌적하지만 산에 오르면 제법 쌀쌀할 확률이 높아서 그 핑계로 망사로 된 내의를 입어봤다. 등산 의류에 심취하면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되는 이 물건은 폴리프로필렌을 주 소재로 삼아 만든 것으로, 보기에는 시스루 패션의 일종같아 민망하지만, 피부에서 땀을 빠르게 제거하고 말려버리면서도 체온을 저하시키지 않는 효과가 있어 일부 국가의 군용 장비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면과 달리 수분을 머금는 성질이 없는 폴리프로필렌을 많이 써서 잘 만든 고급 제품은 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비싸서 나는 직구로 유사품을 샀는데, 당연하게도 망사 내의만 입고 다녔다간 아무리 복장에 관대한 산속이라도 눈총을 맞아 죽을 수 있는 터라 그 위에 통풍이 잘 되는 바람막이를 걸치고, 다시 그 위에 방수 재킷을 걸쳤다. 물론 바람막이를 이중으로 입는 건 좀 이상한 레이어링이었으나, 근래에 중고로 구한 바람막이가 통풍이 잘 되는 축구용이라 그렇게라도 시험해보고 싶었다. 요컨대 이것도 장비병의 일종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준비가 무색하게도 지극히도 특별한 구석이 없는 날이었고, 모든 면에서 적당한 수준이라고들 평하는 사당 코스는 실제로도 평이했다. 초반부터 여기저기 튀어나온 바위가 제법 많아서 볼 것도 꽤 많고 걸음도 즐거웠지만, 어딜 잡고 어딜 디뎌야 하나 궁리해야 할 정도로 험한 것은 아니라 초보에게 ‘서울 산은 요런 돌산이 많은데, 재미있지 않니?’라고 맛을 보여주기에 적당한 곳이 아닌가 싶은 정도였다. 물론 그런 생각은 서울 근교에서 제법 험악한 암릉을 다녀본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다 12시쯤에는 경관이 크게 트인 널찍한 바위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다른 산 같으면 상당히 높이 올라가야 볼 수 있을 만한 바위 능선을 빨리 마주하니 좀 즐거워졌다. 다시 말해 여기까지는 다소 심드렁했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괜히 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딱히 시시껄렁한 오솔길도 아니었는데 어째서일까? 아마 기대도 각오도 하지 않고 갔던 삼성산에서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놀랐던 탓이리라. 역시 안전하게 다니려면 미리 알아야 하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어진다는 딜레마는 극복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즐거워질 무렵 그 근방에서 아주 파릇파릇하게 젊은 음악 애호가 둘과 조우했다. 기껏해야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 남자 둘은 사이좋게 산을 오르며 스마트폰으로 ‘밤양갱’을 튼 채로 걷고 있었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스피커로 음악을 트는 건 이어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연령층이 주로 하는 행위라고만 생각했는데, 매우 심한 편견이었다. 타인의 고요를 인지하지도 존중하지도 못하는 자는 반드시 어디에나 있었다. 다만 이후에도 겪은 바를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중년 이상의 연령층은 혼자 있어 심심할 때 음악을 틀고, 청년층은 여럿이서 같은 음악을 즐기려 할 때 음악을 트는 듯하다. 험한 오르막을 즐기기도 바쁜 나로서는 산을 오르며 음악을 듣는 건 영화를 보면서 음악을 따로 듣는 것과 차이가 없게 느껴지는데, 산을 오르는 게 진심으로 고역이라면 음악으로 고통을 누그러뜨리고 행복의 색채를 덧씌우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하산길이 지루하면 방송을 들으니까. 그러나 자신만의 행복에 남을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나 나름대로 돈과 체력과 시간을 지불해서 고요를 즐기러 왔단 말이다.
오래지 않아 선유천 국기대가 나왔다. 바위지대가 험한 것은 아닌데 은근히 울퉁불퉁하고 이리저리 경사가 져서 약간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쯤 밑에서부터 비슷한 속도로 올라왔던 60대 여성이 국기봉을 잡고 주변을 조망했는데, 위아래로 노란색으로 맞춰 입은 차림새가 영화 ‘킬 빌‘을 연상케 했다. 나는 저 나이에 여자 혼자 관악산에 오르다니 대단하시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으나, 사실 관악산 사당 코스가 엄청나게 근력을 요하는 곳도 아니고, 아마 그 분이 등산을 처음 해봤을 수십년 전과 비교하면 근래에 들어 깔끔히 정비된 코스들은 안락한 꽃길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나이가 있는데도 건강이 어쩌니 하는 생각은 건방진 착각일 확률이 높았다.
거기서 13분을 진행하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잘 정비된 인기 코스답게 팻말이 세워져 있었는데, 본래 사당과 연주대만 가리키는 팻말에 누군가가 파이프 능선 방향을 새겨서 표시해두었다. 마치 앞서간 생존자들의 비밀 표식처럼 보여 상당히 위험한 길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사실 파이프 능선 부분이 만만치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왔기에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런데 거기부터 길이 좀 묘하게 흘러갔다. 아무래도 길이 아닌 것 같은, ‘군대 시설이니 들어오지 마시오’같은 경고문이 붙은 철조망 옆으로 한참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내리막이 길게 이어져, 이러다 아예 하산을 해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지어 짐승길인지 정찰용인지 모를 길로 잘못 들었다가 돌아나오기도 했다. 나는 어디서 왔나 싶은 노부부 등산객을 보고 나서야 여기가 어쨌든 등산로 부근이 맞구나 싶어 마음을 좀 놓았다. 잘 보니 어느 산악회에서 곳곳에 묶어놓은 리본이 있어서 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하여간 산속에서 GPS와 스마트폰 지도가 항상 쓸만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내리막은 작은 계곡을 건너자 당장 오르막으로 바뀌었다. 어쨌든 결국 산 위로 가는 길이 맞구나 싶어 다시 한 번 안도했는데...... 흙길이 순식간에 흙이 좀 덮인 바위를 이리저리 오르는 길로 변하는가 싶더니 아예 밧줄을 타고 바위를 기어오르는 길이 되고 말았다. 거친 바위에 영혼의 일부를 사로잡힌 작자로서는 물론 환호할 만한 일이었으나, 이 정도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심박수가 마구 오르기에 좀 쉬면서 뒤에서 오는 등산객 무리를 먼저 보내야 했다. 중년의 등산객들은 중간중간 잡담을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바위 위로 올라가버렸는데, 지치지도 헤매지도 않는 그 기세는 정말이지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관악산처럼 험하고 가파른 산을 몇 번 올라야 그렇게까지 건강해질지 의문이다. 아마도 무릎 연골 연화증부터 치료하는 게 올바른 순서겠지만.......
그렇게 올라간 거친 오르막의 끝은 절벽이 장식했다. 정말이지 그건 오르막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절벽이라는 표현이 훨씬 적합한 길이었다. 위에서 내려온 밧줄이 없다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만한 곳이었으니까. 그래도 굵직굵직하게 모난 바위들을 밟으면서 올라가기에는 큰 무리가 없는 터라 먼저 간 사람들을 따라서 바위산 위로 기어오를 수 있었다. 삼성산의 험로를 두 배에서 세 배로 확대한 듯한 규모라 내 몸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지만 밧줄 덕에 편하기는 약간 더 편한 면도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나타난 것은 완전히 바위로 된 능선이었다. 여기저기 서울 근교의 암릉을 제법 돌아다녔지만 이런 바위 능선은 처음이었다.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 능선이 저 멀리까지 쭉 펼쳐져 있고, 근처에 나무라곤 도통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한 돌산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을 가려줄 게 전무해서 예닐곱 보이는 사람들은 다 재킷 모자를 당겨쓰고 있었다. 나도 배낭에 고정해둔 재킷을 풀어 둘러입고 천천히 그 비경을 음미했다. 한국에서 산이라면 보통 숲을 떠올리기 마련인 만큼, 이 능선의 광막한 바위지대는 어디서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나무가 없어 하늘과 산의 경계가 또렷했고 하늘이 더 넓었다. 제법 이국적이었다. 이 풍경을 구성하는 건 하늘과 바위와 바람뿐이었다. 파이프 능선에 영혼이 있다면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계속)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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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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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