횟집 식사는 섬세한 살결처럼

-섬세한 맛과 균형의 미학

by 이건해



회의 맛은 바로 이렇습니다, 하고 정리하긴 어렵다. 회라는 건 본질적으로 식재료의 질감과 식감이 맛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회마다 이것이 또렷하고 선명하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를 상세히 표현할 정도로 맛에 대해 똑똑하지 않다. 말랑하고 탱글한 살…… 이런 애매하고 시시한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으로 봐서 회에 대한 글을 길게 쓰기엔 자격 미달인 것같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선 회 맛에 대한 표현이 끊임없이 쏟아지던데……. 아무튼 회라는 건 결국 다 초장 맛이 아니냐는 말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회가 다 이거나 저거나 그게 그 맛이고 별반 가치가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그만큼 순수하고 섬세해서 초장처럼 강렬한 양념장을 찍으면 구별이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비유하자면 선글라스를 끼고 백색과 미색, 베이지색, 연회색 등등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저러나 예전부터 가족의 식사 모임에선 횟집을 가는 일이 상당히 많았고, 점점 그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집 근처에서 맛집을 찾은 탓도 있지만, 속이 편한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높아진 탓이 크다. 후끈한 불판의 열기와 매캐한 공기가 가득한 고깃집에서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양껏 먹고 부른 배를 오래도록 두드리는 일이 영원토록 부담없이 즐거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찾아간 횟집에서 모듬을 시키면 일단 다채로워 눈이 즐겁고 이것저것 번갈아 먹는 재미도 좋다. 항상 입맛에 꼭 맞는 회만 먹을 수는 없다는 점이 오히려 맛을 둔감하지 않게 만들어 매력적이다. 광어나 숭어를 제외하면 죄다 한 사람 몫이 한두 점밖에 없어서 가능한한 맛을 음미하게 된다는 것도 순기능이라면 순기능이다. 가장 좋아하는 걸 양껏 먹을 수 없어 살짝 아쉽게 끝나는 정도가 다음을 기약해준다는 미덕도 있다. 단순히 생각하자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실컷 먹는 게 제일 같지만, 질리도록 먹는 것과 약간 부족한 듯 감질나게 먹는 것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이제는 후자를 고르고 싶다. 삶이란 어느 시점부터는 선택지를 잃어가는 과정인지라, 다음에 뭔가를 고를 이유를 남겨두는 게 얼마간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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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본어번역가.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수상.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 2024년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공모전 단편 우수상 수상. 협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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