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구하기 전에 사람부터 구할 것

-맛도 잘 모르지만 이따금 곁들이면 즐거운 술

by 이건해


와인이 고급한 부의 상징이 된 게 언제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부자가 꼭 스테이크에 와인을 마시는 꼴을 보자면 이러한 인식을 보편화 시킨 것은 단연코 미디어가 아닐까 싶다. 삶의 방향을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이 편의점 야외석이나 길바닥에 주저앉아 와인을 마시는 꼴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으니. 심지어 한때는 하루에 와인 한 잔 마시는 게 건강에 이롭다는 낭설까지 나돌아다녔는데, 와인이 건강에 이로운 게 아니라 매일 와인을 마실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이 건강한 것이라는 해석이 더 신빙성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도 와인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와인이 사치스럽게 느껴져서, 혹은 맛이 없어서는 아니다. 대체로 부차적인 문제들 때문이다. 일단 와인은 병의 부피가 크다. 이래서야 운반도 번거롭고 폐기도 성가시다. 게다가 코르크 마개를 따서 먹기가 쉽지 않다. 코르크를 써야 한다는 건 이해하나, 놀러갔다가 와인 따개가 없어서 낭패한 적이 있는 터라 유서깊은 이 방식에 다소 불만이 있다. 실수로 코르크 마개를 부러뜨려 코르크 가루가 섞인 와인을 마셔야 했던 적도 있다. 이때 첫 잔을 개봉자인 내가 책임지고 마셔야 했으니, 불순물이 뜬 와인의 첫 잔은 주인이 마신다는 관례의 원래 의미를 고스란히 체험한 셈이다.


와인은 달아서 위험한 술이라는 것도 문제다. 술술 넘어가는 술이 위험한 법이라는 사실은 상식에 가깝지만, 와인이란 대체로 맛나게 마실 수 있는데다 도수도 애매해서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대중 없이 잔을 비우게 되고, 그러길 반복하면 취기가 두 박자쯤 늦게 몰려와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 두 박자가 치명적이다. 마치 악셀을 밟았는데 속도계가 1분쯤 뒤에 반응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라 지독한 실수나 사고, 파멸적인 숙취가 따라오기 대단히 쉬운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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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본어번역가.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수상.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 2024년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공모전 단편 우수상 수상. 협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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