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없이 떡도 없다

-경사와 풍요의 상징

by 이건해


마음놓고 떡을 양껏 먹는 것처럼 소박해 보이지만 호사스러운 일도 드물다. 떡을 먹으면 살이 찌기 때문이다. 흔히 살을 빼려면 한 글자로 된 음식을 끊으라고들 하는데,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어도 떡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 본다.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정도만 점심에 떡을 곁들여도 당장 체중이 늘어난다. 떡을 먹으니까 다른 걸 이만큼 줄이면 되겠지, 하고 안이한 생각으로 조절해봤자 별반 소용이 없다. 그만큼 떡이란 작고 무서운 음식이다.


그러나 칼로리가 곧 맛의 지표라는 농담처럼 떡이 대체로 맛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떡은 맛 없어서 도저히 못 먹겠다’ 싶었던 적이 있나 돌이켜보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굳이 하나 꼽자면 콩송편 정도다. 소수파인 콩송편 애호가들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콩송편은 쫀득하고 부드러운 외피의 식감 속에서 딱딱하고 퍽퍽한 소가 나오는 전환이 내 입에 맞지 않는다. 심지어 송편은 속이 보이지 않아서 무작위적으로 기대를 배신한다는 점 때문에 더욱 얄밉다. 마치 고기인 줄 알고 집어먹었더니 더덕일 때의 기분같다. 이 무작위성만이라도 제거한다면 콩송편을 증오할 이유까지는 없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손해 앞에서 사람은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대체로 다 맛있는 떡이 가장 실용적으로 빛을 발할 때는 역시 식사를 대체할 때라고 생각한다. 도저히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없는데 뭘 먹긴 해야 할 경우에 떡은 강력한 아군이 되어준다. 김밥도 비슷한 용도로 이용될 수 있고 더 건강한 식사거리가 되긴 하지만 보존이 힘들다는 점에서 떡이 더 비상 식량으로서 기능적이다. 냉동실에서 꺼내어, 적당히 녹았을 때 두 입에 먹어치우면 한동안 허기만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하는 상상으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알약’ 얘기가 있는데, 한국에서 여기에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떡이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알약 얘기에서 단점으로 거론되듯 인권 상실로 여겨지진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 떡으로 식사를 해치우면 어째선지 그럭저럭 망가진 느낌까지 들진 않는다. 예전에 모 대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매일 아침 사무실 앞에 마음대로 먹으라고 떡이 놓이는 걸 보고 대기업은 복지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으니, 실제 영양 균형과 무관하게 떡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은 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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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본어번역가.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수상.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 2024년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공모전 단편 우수상 수상. 협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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