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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Mar 31. 2024

『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김보람 옮김, 『흐르는 강물처럼』(다산책방, 2024)


슬픔은 방향을 갖게 한다

셸리 리드, 김보람 옮김, 『흐르는 강물처럼』(다산책방, 2024)


삶을 무너뜨릴 듯한 슬픔이

길을 내고 물을 흐르게 한다


다산책방 출판사에서 『스토너』를 이을 차세대 모던 클래식으로 주목받은 셸리 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이 출간되었다. 문학동네 독서 모임인 독파 챌린지로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는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흐르는 강물처럼』은 총 5부로 구성되어, 1948년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실제 미국 서부 지역을 배경으로 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구, 아이올라를 배경으로 주인공 빅토리아와 그 외의 주변 인물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슬픔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살아가는 내용이다. 


슬픔을 아는 자의 말과 행동에는 힘이 있다.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남겠다는 복숭아 나무의 다짐이다. 그 힘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타고나지 않으면 가질 수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가 강력한 다짐을 가지고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야 한다. 저 사람은 얼마나 거대한 슬픔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인가. 그 슬픔의 양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감당할 수 없다면 멀리서 가늠해보면서 작은 구원 정도를 대신 바라줄 수는 있을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하듯 나의 행복을 조금 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슬퍼 보이는 사람이 여기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 빅토리아는 거대한 급류에 휩쓸려 죽어가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판단하고 싶다면 그 마음으로 타인을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더 힘차게 이겨내려 하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강물의 방향을 슬픔으로 어떻게 바꾸는지.



그날 아침 우리 농가를 나설 때만 해도 나는 그저 평범한 소녀였다. 내 안에 어떤 새로운 지도가 펼쳐졌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이제 비범한 소녀가 되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1부 1948년~1955」40p


슬픔은 강물이 흐를 수 있는 길과 방향을 만든다면, 사랑은 강물에 가깝다.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감당하기 위해 슬픔은 사랑이 흐르는 길을 넓히고 방향을 만드는 게 아닐까. 주인공 빅토리아는 인디언 윌슨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집어삼킬 듯한 커다란 물결을 느끼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문을 열어버리듯 빅토리아는 사랑에 진심을 다한다. 하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과 편견으로 인해 윌슨은 죽고 둘 사이에 생긴 아기를 출산하기 위해 빅토리아는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했던 삶을 변화하려고 집을 나간다. 처음으로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슬픔이 만든 길에 스스로 올라타 사랑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는 어딘가 벅차기도 하다.



나는 돌멩이 여섯 개를 주워다가 바위 위에 하나씩 내려놓으며 완벽한 원을 그렸다. 그러면서 부디 지난 6년의 세월이 아들에게 다정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3부 1955~1970년」 307p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빅토리아가 보여주는 슬픔은 침잠하지 않고 발산하는 방식으로 해소된다. 특히 그 발산은 슬픔이 아닌 사랑으로 전환된 감정이 바깥으로 쏟아진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거부했던 루비앨리스나 교수님 등 다양한 인물에게 건네는 빅토리아의 사랑은 자신이 경험한 사랑보다 입체적이다. 입체적인 사랑의 울림은 종소리처럼 뻗어나간다. 빅토리아 자신은 모를지라도, 그와 평생을 함께한 복숭아 나무를 결국 길러내듯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계속 퍼트려 타인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으로 얻게 된 복숭아가 달지 않을 수는 없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우리의 삶에서 보고서 같은 역할을 한다. 언젠가는 기억에서 사라져 책장 어느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로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손에 다시 쥐었을 때, 우리는 각자가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볼 수 있다. 약이 되는 건 자신이 슬픔의 길을 걷는 동안 뒤에 따라오는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과 슬픔을 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시를 가르쳐준 선생님께서는 항상 사랑을 말씀하셨다. 사랑을 믿지 않는 나에게 지금까지 나를 일으켜 세운 사랑의 양태를 스스로 확인하게끔 도와주었다. 삶은 이처럼 슬픔의 늪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끔 손을 맞잡아 주는 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강물처럼 끊임없이 맞잡는 손으로 슬픔과 사랑과 희망을 감각하게 한다. 혹시나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역경이 있고 그 역경이 막을 수 없는 재난과 같다면 이 책을 읽어도 좋다. 이 책은 손을 뻗는다.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어디 한 번 죽을 거라면 죽으라고. 하지만 죽기 전에 네가 가진 사랑을 보라고 말을 건넨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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