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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Apr 10. 2024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강혜빈,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넥서스 앤드, 2024)


다정함은 의도할 수 없어서

강혜빈,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넥서스 앤드, 2024)



여럿이면서도 하나인 마음을 열면

다정하고 어두운 용기가 있어


넥서스 출판사의 브랜드 앤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가 출간되었다. 강혜빈 시인의 첫 산문집이면서도 시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어 사진 산문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밤의 팔레트』, 『미래는 허밍을 한다』에서 보여주었던 환한 용기와 사랑의 질주를 산문의 형식을 빌려 표현한 만큼, 조금 더 세심하고 구체적인 시인의 세계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시를 쓰는 나는 살면서 딱 한 번 시인에게 시가 좋다고 dm을 날려본 적이 있다. 19년도였나,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일 그 메시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시가 너무 좋았기 때문. 그 당시에는 너무 좋은 시를 읽으면 참을 수 없이 마음이 뜨거워져서 버틸 수가 없었다. 좋은 것은 너무 좋다고 말하는 수밖에. 나에게는 그 사람이 강혜빈 시인이었다. 등단작을 읽고 너무 좋다고 대여섯 줄 정도 써서 보낸 것 같다. 답장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저 좋다는 말이 닿길 바랐던 것이기에 보내고 아무 생각도 없이 누워서 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답장이 올 줄은 몰랐지. 환하고 다정한 용기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이 사람의 시를 기다렸나. 첫 시집 『밤의 팔레트』는 밤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용기였고 다음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는 조금 더 시인의 시적 세계를 확장해 용기와 사랑이 삶을 껴안아 주변을 환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용기와 사랑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한다면 이 시인 같은 모습이겠구나 싶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는 내가 생각했던 시인의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조금 다른 컨셉을 잡아서 지루할 뻔한 부분을 잡은 것 같다. 어딘가 있으면서도,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당신을 호명하며 시인은 자신을 되돌아본다. 뒤표지 카피처럼 무수히 당신도 나와 같은 모습과 태도를 가졌는지, 당신도 꾸준히 실패하고 갑자기 다정하며 선잠을 자면서도 꿈과 기쁨을 세는지. 질문하는 방식으로 시인과 독자의 경계를 허문다. 시인의 용기가 어색하지 않게 그러한 태도를 행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큰 장점이자 좋음으로 다가왔다.



열차는 점점 더 세게 흔들린다. 

손잡이를 잡지 않은 채 중심을 잡는 일은 쉽지 않고, 

쉽지 않은 일은 쉬운 일보다 더 많이 있지만,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서서 갈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편지 X 부드럽고 환한 레몬 마들렌」 23p


누구나 자신의 세계가 흔들릴 때가 있을 것이다. 중심을 잃고 사람들과 뒤섞이거나, 어떨 때는 뒤섞인 사람과 자신이 같은 사람이고 스스로 자아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진솔하게 자신이 흔들린 여러 과정을 꺼내 놓는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당신은 그런 적이 있는지, 당신의 세계에서는 마음이 연체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진 않는지, 잠은 잘 자고 꿈은 어떤 꿈을 꾸는지 묻는다. 시인은 당신을 호명하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수신인과 연결되려고 한다. 시인은 왜 연결되려 하고 세계를 확장하는가. 이유가 있다면 시인은 굳이 흔들릴 때 흔들리면서 보이는 빛의 실루엣들을 관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흔들렸고 갑자기 당신이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궁금하고 나의 세계와 당신의 세계를 이어 우리 조금만 덜 흔들리고 살아가자는 마음일 것이다. 세상은 이러한 시인의 태도를 다정함이라는 마음으로 부른다. 다정은 절대 의도할 수 없다. 시인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나아가기 때문에 다정할 수 있다.


사실, 넥서스 서평단으로 신청을 했지만 떨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야 서평단을 하든 말든 좋았던 책만 신청하고 읽지만, 이 산문집은 내가 너무 좋아했던 시를 쓴 사람이 쓴 첫 산문집이니까 살 수 있어 좋은 마음인가. "좋아해? 좋아해."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시를 써서 좋다. 그리고 시를 쓰는 사람이 산문을 써서 더 좋았다고. 흔들리는 세계를 사진으로 찍은 듯한 풍경이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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