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황유원 옮김, 『패터슨』(읻다, 2024)
패터슨이라는 삶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황유원 옮김, 『패터슨』(읻다, 2024)
패터슨에서 패터슨으로
도시와 폭포의 언어로 말하는 시
읻다 출판사에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패터슨』이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출간되었다. '패터슨'이라고 하면 2017년에 개봉한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떠올릴 것이다. 인기 있는 영화인 만큼 주인공 패터슨과 그가 살고 있는 도시 패터슨, 그리고 그가 읽는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시집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다만 국내에 완역본이 없었기에 이번 읻다에서 출간된 『패터슨』은 특별하다. 황유원 시인이 번역을 맡은 만큼 세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만날 수 있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에즈라 파운드와 앨런 긴즈버그처럼 미국 20세기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시인이다. 이미지즘의 창조자라 불리는 만큼 『패터슨』에서도 실험적이며 획기적인 시구와 시어들의 호흡이나 리듬을 볼 수 있다.
혹시 김해를 아시나요? 나의 고향은 김해다. 가끔 나의 경상도 말씨 때문에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김해라고 말하며 저 질문을 꼭 붙인다. 김해를 아는가? 당신이 아는 김해와 내가 아는 김해는 다르다. 당신의 고향과 내가 아는 고향이 다르고 당신의 서울과 나의 서울은 또 다르다. 우리가 기억하는 도시는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이미지의 형상화다. 기억하는 만큼 보이는 도시라면 기억은 고정적인 것일까? 그것은 또 아닐 것이다. 도시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극진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도시의 애정을 본다. 애정에는 이미지가 있다. 김해에는 겨울마다 물이 없어 바닥이 드러난 연지공원의 호수가 있는 것처럼. 그 이미지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그 도시로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패터슨』은 미국의 도시 패터슨을 중심으로 퍼세이익 강과 '그레이트 폭포'에서 시작된다. 윌리엄스는 패터슨의 퍼세이익 폭포가 흐르는 물에서 힘과 이미지를 포착해 패터슨의 역사를 말한다. 압도적이면서 거대한 광경. 패터스는 도시의 역사이자 사물이고 사람이며 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길고 두꺼운 서사시는 도시의 설명서 같은 것인가? 그것은 또 아니다. 윌리엄스는 언어가 '말하듯이' 뿜어져 나오는 것에 집중한다. 생략되기도 하고 아주 깊고 세밀하게 말해지기도 하는 폭포와 강물의 물줄기 그리고 물이 지나간 곡선의 자리처럼 말이다. 황유원 시인은 윌리엄스의 언어를 그대로 옮겨 도시를 도시에서 꺼내 흐르는 폭포처럼 보여주는 것에 성공한다. 그래서 패터슨은 구멍 뚫린 치즈처럼 아름답다. 들여다볼 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패터슨은 몇 년에 걸쳐 작성되었다. 도시를 이루는 자연 요소를 통해 패터슨의 전체 구성을 보여주는 1권은 1946년에 나왔고 2권은 도시 공간에서 사물과 인간 그리고 문명의 여러 면모를 현대적인 언어로 재창조했다. 1948년에 나왔다. 3권은 파괴된 댄포스 공립 도서관, 퍼세이익 강의 범람 등 여러 재난을 통해 '아름다움'의 파괴성을, 4권은 강에서 바다로 시선을 옮겨 현대 문명을 말한다. 각각 1949년, 1951년에 나왔으며 1958년에 나온 마지막 5권은 다시 패터슨으로 돌아간다.
나는 내가 태어난 김해를 매우 미워했고 싫어했으나 지금은 좋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에는 다양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김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김해. 내가 아는 김해를 당신들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패터슨』 몰랐던 것처럼, 이제 내가 아는 패터슨은 윌리엄스가 본 패터슨이기에, 당신들이 아는 김해를 내가 아는 김해로 바꾸고 싶다. 그것이 시인의 역할이라면 나는 잘할 자신이 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