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오, 『버블』(창비, 2024)
잠깐,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
조은오, 『버블』(창비, 2024)
열고 다가가고 마침내 손을 잡으려는
단단한 외로움을 걷어내는 성장의 움직임
창비 출판사에서 조은오의 첫 장편소설 『버블』이 소설Y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소설Y 시리즈는 『위저드 베이커리』『나인』『스노볼』 등 이야기 본연의 매력과 다채로운 문학적 사유를 전해 온 창비의 국내 소설 시리즈다. 조은오의 『버블』은 세계가 '버블'이라는 가림막에 휩싸여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 맺기에 제한을 건 독특한 환경이 배경인 소설이다. 통제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의 위태롭고 확신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결국 자신을 둘러싼 오래되고 이상한 세계를 부수는 열쇠라는 것을 이야기로서 증명한다.
*출판사의 요청으로 스포일러성 후기가 없는 개인적인 생각만 적은 서평임을 미리 밝힙니다.
창비Y 시리즈 서평단을 신청한 큰 이유는 작가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건 편견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어서, 읽을 명분만 충분하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은 작가의 문장일 것이다.
나의 완벽한 세계에 균열을 내기로 했다.
당차면서도 자신의 세계에 균열을 내겠다는 말은 어딘가 파괴적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아름다운 문장으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을 부수고 망가지겠다는 불온한 문장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래서 신청했다. 이런 문장을 카피로 내건다면, 정말 세계를 부수는 소설이거나 읽을수록 짜증 나는 소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30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인 만큼 전자에 희망을 걸었고, 그 희망을 두 배로 돌려받았다.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이다.
이 소설이 좋은 이유는 작가가 설계한 세계에 치밀한 매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앙과 외곽이라는 공간을 분리해두고 각 세계가 서로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세계의 매커니즘에 반하여 살아갈 수 없음을 초반부터 미리 알려준다. 더 말할 순 없지만스토리적으로도 만만하게 볼 소설이 아님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는 이름, 주인공은 07, 126이다. 몇 개의 숫자로 된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숫자로 제시한 이름이 그저 신비로운 뉘앙스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중앙이라는 통제된, 규칙에 사로잡혀 타자와의 소통이 불가한 공간에 숫자로 된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타자를 사물화하여 서로를 감각하지 않는 장치로 사용된다. 이는 이 소설에 중요한 지점으로 보이며 주인공인 07이 자신이 살아가는 버블이 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그 순간 독자도 이상하다는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이름에서부터 이미 힌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치밀한 설정이 독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듯하다.
마지막으로는 복잡함이다. 유의미한 복잡함. 성장 소설인 만큼 단순한 플롯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인식 - 도전 - 좌절 - 성취'의 구조에 자잘한 변형이 있다. 결말도 특히 그러하다. 정말 결말.. 예상하진 못했다. 굿.
결론은 좋은 소설이다. 오랜만에 후속작이 나와서 내가 알게 되면 사게 될 작가가 나온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좋은 소설을 읽었다. 구체적인 세계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소중함을 잃고 있는 요즘 세상에 필요한 소설이 등장한 듯해서 좋다고도 본다. 소설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꼭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그전에 재미만 있어도 장땡이긴 하다) 이 소설은 재미와 메시지가 적절한 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알게 되었지만, 이 소설을 쓰신 작가는 조은오 작가라고 한다. 작가가 바라보고 열어 확장하고자 하는 세계가 현실에도 천천히 서서히 실현되기를, 버블을 터트리고 더는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하려는 세상이 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누구나 눈을 감고 살아가던 시절은 있으니까. 그러다가 누군가를 만나 손을 잡기도 하겠지. 그렇게 세상은 절벽도 도로도 있는 복잡하고 이상한데 살고 싶은 세계가 되는 건 아닐까.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