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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Jul 06. 2024

『쓰게 될 것』

최진영, 『쓰게 될 것』(안온북스, 2024)


여러 개의 눈으로 본 미래를 말하려면

최진영, 『쓰게 될 것』(안온북스, 2024)







오답도 정답도 아닌 믿음으로

미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안온북스 출판사에서 최진영 소설가의 『쓰게 될 것』이 출간되었다. 2020년대에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 가장 화두가 되는 사회문제를 비롯한,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는 지점들을 여러 인물의 시선으로 내놓으며 폭넓게 다룬다. 작가가 쓸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씀으로써, 독자는 그것을 읽고 자신이 있을 미래의 장면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최진영의 신작은 지금까지 출간한 여러 작품처럼 자신만의 소설적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 걸음 더 확장하는 단단한 에너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는(물론 나도 나의 주변은 매우 좋아하고 아끼고.. 그렇다) 인간적인 현상을 버거워한다. 가끔은 지구온난화나 전쟁, 질병 등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커다란 이유로 얼른 지구가 리셋되는 편이 서로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뉴스를 보면 야당과 여당은 항상 싸우고, SNS에는 가면을 쓴 채 자신이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러운 모습을 당당히 내놓는 걸 보면서 갈 때까지 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수많은 바깥을 경험하면서 조금 아쉬운 것들이 생겨 주머니에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지만 귀한 기억들을 변기 물 내리듯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게 된다면, 그건 정말 슬프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단 하나, "어떻게 살 것인가"

최진영의 신작 『쓰게 될 것』은 믿지 못하는 것들을 눈앞에 두고 그것 주변에 있는 것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표제작 「쓰게 될 것」의 배경인 전쟁을 기점으로 기후 위기, AI 여성 서사, 빈부 격차 등 지금을 사는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정면으로 맞서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작가의 태도는 작가만의 확신을 가질 때까지 위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도, 플롯도 아닌 작가의 일관된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최진영의 소설에는 항상 모든 이야기와 플롯을 뛰어넘는 태도가 앞장선다. 무엇이 작가를 현재의 가장 끝이자 미래의 초입에 우뚝 서게 했는지는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기꺼이 망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마음, 그 마음은 주변에 있는 귀한 것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발현된 마음일 것이다.


 

모두 지난 일이다. 그리고 반복될 일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 세상을 받아들이듯.

그러므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쓰게 될 것」 39P.


표제작 「쓰게 될 것」은 전쟁의 현장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상황과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이후에 전쟁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담았다.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아이의 발랄함이 어떤 미래가 분명 존재할 거라는 암시로 작용한다고 느껴졌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에 나온 저 인용문은 이 소설집에 수록된 모든 소설의 중심이기도 한 문장들이라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표제작을 맨 앞에 두었기 때문에 저 문장들이 빛난다고 생각했다. 이후 일곱 편의 소설로 넘어가기 전에 작가의 포부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최진영이 왜 읽히는지 느꼈고 오랜만에 압도적인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정말, 압도적이다.

중간에 있는 모든 소설이 다 좋았는데(진짜 좋았다) 표제작 다음으로 좋았던 소설은 「홈 스위트 홈」이었다. 소설집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인데, 암에 걸린 화자가 "미래의 어느 여름날"에 부추전을 해 먹겠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은 미래에 자신이 살아갈 집을 지금의 내가 찾는 과정에 의미를 더한다. 작가는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집중한다.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찾고 그 의미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쓰게 될 거라는 말은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이고 그걸 쓰기 위해서는 써야만 하는 것을 계속 손에 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앞서 던진 질문은 지금도, 미래에도 유효하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최진영의 소설에는 최진영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이 있다. 그 답은 정답도 오답도 아니지만,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어떤 미래의 초입에 서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모습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은 최고의 국내 소설이었다. 어쩌면 독자들은 오답도 정답도 아닌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믿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최진영은 먼저 길을 만드는 사람이 맞다. 그 길을 만드는 과정은 이 소설집에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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