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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Jul 28. 2024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문학동네, 2024)


몸이라는 문을 여는

김원영,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문학동네, 2024)



불거지고 헛디디면서도 앞장서는

평등한 몸을 위한 몸짓으로


문학동네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 '독파'에서 진행하는 7월의 독서로 김원영 작가의 6년 만의 단독 신작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을 읽게 되었다. 변호사로 일했으며 2020년 무렵부터 작가, 무용수, 공연 창작자로 살아가는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경험을 차별받았던 몸과 춤의 역사와 엮어 책에 풀어냈다. 인문학적이면서도 사회문제를 깊게 몸의 역사와 다룸으로써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고, 머나먼 미래의 몸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저자가 지금과 분투하는 장면들은 형용할 수 없는 울림을 준다.


다들 내가 춤을 좋아한다는 걸 듣는 순간 놀라거나 웃지만, 나는 춤을 정말 좋아한다. LMFAO의 'Party Rock Anthem'이 나왔던 2011년, 모두가 셔플을 추던 그 시절부터 춤을 좋아했다. 중학생 때부터 음악을 제대로 듣기 시작했던 터라, 나의 중학생 시기에는 춤과 노래가 전부였다(정말!). 내 MP4에 절반은 EDM, 절반은 힙합이었으니 춤이 빠질 수가 없었다. 당시엔 저 노래와 Yolanda Be Cool&BUCP의 'We No Speak Americano'를 들으며 자전거를 타고... 너무 오래된 노래니 추억은 그만 언급하겠다. 아무튼, 나는 춤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는 마침 지금도 활약하는 와일드 크루 친구들과 조금 안면이 있어, 그들이 추는 비보잉을 구경하고 발재간을 따라 하며 놀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비보잉을 좋아하지 않아서 춤을 찾아보던 중 'URBAN DANCE CAMP'를 발견하고야 만다(지금은 'Choreography'라고 더 많이 불리는 듯하지만 나에게는 Urban dance가 아직도 익숙한 표기이다). 그 자유롭고 몸을 여는 춤들이 좋아서 결국 대구로 대학을 가자마자 댄스 학원에 등록해 춤을 췄다. 하지만 당시 술을 먹느라 10키로가 찌고, 생활고에... 각종 이유로 한 달 만에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춤을 췄다. 불 꺼진 방에서 땀을 흘리며 추는 춤이 참 좋았다. 물론 지금도 좋다. 그때 배운 웨이브와 아이솔레이션은 내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7살이 된 나는 춤은 보기만 하고... 대신 여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젠더, 인종, 노동의 문제는 20년에 들어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나 역시 그 문제들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몸과 노동, 이 두 문제는 더더욱 그러하다.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고 서빙조차 기계가 하는 마당에 인간의 자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같은 대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러한 큰 인류적 발전에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것에 놀랍다. 그런데 여기서 예술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과연 나는 장애인이 경계에 갇히지 않고 예술가로서 예술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본 적이 없다. 연극, 춤 같은 부분은 특히 그렇다. 장애인도 예술을 분명 할 것이다. 비장애인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은 내가 궁금해하는 이 모든 것에 답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던 저자는 특수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고, 고등학교 때는 일반학교에 진학해 비장애인들과 함께 공부했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병신춤' '프릭쇼' 등과 같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차별하고, 비방하며, 폭력과 착취를 하고 있는 역사를 엮었다. 동시에 한국인 무용가 최승희, 이사도라 덩컨, 니진스키 등 동서양 무용인들의 역사를 함께 내놓는다. 게다가 독자적 흐름을 만들고 있는 20세기 후반 국내외 장애인 극단과 무용팀의 목소리 또한 담아냈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몸에 관한 역사를 먼저 언급한다. 어린 시절에는 휠체어에 타던 저자에게 할머니는 "불거지지 마라, 불거지지 마라"라며 가슴을 쓸어주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책의 포문을 연다. 이후 중학교 특수학교에서 첫 기숙사 친구이자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책에서는 뇌성마비로 언급되지만, 이는 저자의 각주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김태훈'(책속에서 동명이인을 발견하는 건 얼마나 즐거운지!)을 만나 기숙사 바닥을 마구 뒹굴고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은 정말 당연하면서도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몸의 해방, 즉 자신의 몸을 긍정할 수 있는 첫 계기라고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예종 입시 시험에서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춤을 추는 대목도 있었는데(낙방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장면 또한 닫힌 몸에서 열리는 몸으로의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일만 가득하다면 이 책은 쓰이지도, 쓰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차별과 폭력을 당했던 경험을 털어놓기 위해 차별받은 몸들의 역사를 언급한다. 100년 전에도 200년 전에도(물론 나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겠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고, 지금도 전장연 시위 같은 경우만 봐도 반복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씁쓸한 지점들이다. 특히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대목은 니진스키와 최승희 그리고 프릭쇼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은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다 언급하지 못하고 나의 감상만을 적으려고 한다. 프릭쇼는 과거 왜소증 등 질병을 앓은 사람들을 착취해 비장애인들이 유흥으로 삼는 좋지 못한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프릭쇼를 긍정하는 부분(일부이긴 하다만)이 있어 놀라웠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들이 세상에 직면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점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지점을 건드린다. 저자는 이와 같은 춤의 역사들로 사유를 단단하게 독자에게 내놓는다. 동시에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배제했던 몸들을 바로잡는다.


김원영 작가의 책은 오랜만에 읽은 육각형 책이었다. 빠지는 부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자신의 경험을 자신 개인의 내밀한 서사에서 그치지 않고 공적인 사회문제, 역사 등 다양한 지점을 꺼내 설명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장애라는 카테고리에서 더 확장해 젠더, 사회, 문화, 예술 등 폭넓은 이야기를 다루기에 이 책을 각종 언론과 대중이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몸과 예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그들이 보이기 위해 한 노력들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융화해서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을까? 장애인 예술가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레벨이라면 비장애인 프로들과 동등한 자리에서 경쟁하고 화합하며 함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움직임을 20년도에는 꼭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예술은 경계를 부수고 다양하며 차별적이지 않고 평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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