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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Aug 25. 2024

『환희의 책』

김멜라 『환희의 책』(현대문학, 2024)


살아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려고

김멜라 『환희의 책』(현대문학, 2024)



모든 의문을 들여다 보자

세계는 그보다 더 많은 의문을 가져다 주었다


김멜라의 『환희의 책이 현대문학 출판사의 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2021년부터 '젊은작가상'을 연속 수상하고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김멜라는 『내 꿈 꾸세요』 등 여러 작품에서 사회적 약자를 조망했다. 다수의 세계에서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소설의 형식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낯설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번 작품 또한 기존의 소설 작법에서 벗어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다. 비인간동물(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의 동물, 이하 비인간)의 시선으로 레즈비언(일명 두발이 엄지, 주인공인 호랑과 버들) 커플을 관찰하며 자연의 비밀을 밝히려 하는 세 마리 곤충(톡토기, 거미, 모기)의 연구를 보여 준다. 시나리오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되며 지루하지 않은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은 항상 옳은가? 논리는 늘 통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규격화된 이성, 각자에게만 옳은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듯하다. 그래서 세상은 다양한 것이다. 이 생각은 사랑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랑은 꼭 '연애 - 결혼 - 2세'의 굴레를 따라야 하는가? 나는 사실 연애도 관심이 없지만, 결혼, 2세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요새는 고려하고 있긴 하다만, 이 생각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져 왔으니, 오래된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 종을 보전한다. 이 과정은 그들의 일이다. 존중하지만, 나의 일로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생각일 뿐이지만, 이러한 생각이 생활인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는 여러 소수자가 있고,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깥으로 표출하길 겁내지 않아 수많은 상처를 입는다. 상처를 입는 과정에서 병이 생기고 미쳐버린다. 욕망은 더 거세지고 거부하고 싶은 건 더 거부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김멜라의 소설은 이들을 조명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비인간의 시선, 벌레의 시선으로 주인공인 레즈비언 커플의 욕망과 슬픔에 파고든다. 연구로써, 관찰로써 아주 차갑고도 집요하게.

김멜라의 『환희의 책』은 인간이 아닌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의 시선으로 두 인간 레즈비언 커플인 호랑과 버들의 사랑을 들여다본다. 곤충들은 비생식 동거 집단으로 불리는 호랑과 버들을 관찰해 연구를 하는데, 이들의 시선으로 보는 인간은 매우 특이하게 그려진다는 것이 특징인 듯하다. "벌레를 잡으려고 발달한 엄지가 인간 신체의 가장 큰 특징"이기에 인간을 '두발이엄지'로 분류하는가 하면 인간의 이족보행에 관해서는 계속 넘어져야만 했던 이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벌레의 눈으로 본 호랑과 버들의 사랑은 아주 활발(?)하지만,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의 사랑에는 불안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를 안고 만지는 여성들이 머무는 폭력과 허무의 세계에서 그들의 사랑은 항상 전시되고 판단되며 질문화되기 때문이다. 이 서술은 소수자의 사랑이 세계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과감하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소수자 당사자들은 자신의 사랑을 거듭 의심하게 되고, 탈출하려 하거나 모든 것을 내면화해 받아들이고야 만다. 이는 호랑과 버들의 서술로도 확인할 수 있다.





호랑: 그렇게 다 보여주면 사람들이 싫어해.

버들: 숨기 싫어. 너도 그만 숨어. 아무도 우릴 해치지 않아.

호랑: 넌 자야 돼. 잠을 못 자서 그래.

버들: 언제는 그만 좀 자라며!


#집. 거실. 동틀 녘. pp. 92~93.



호랑: 나랑 같이 죽을 수 있어?


버들은 대답 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호랑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호랑: 못 죽어? 이제 마음이 변한 거야?

버들: 안 변했어. 나는 늘 똑같아.

호랑: 그런데 왜 대답 안 해?

버들: 죽고 싶어서 물은 거 아니잖아.

···

버들: 나는 괜찮아. 난 받아들였어. 근데 넌 어떡해?

호랑: 내가 왜?

버들: 넌 무서워하잖아.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그래서 나랑 못 헤어지는 거잖아.


#거실. 이른 아침. pp. 135~136.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정신질환을 앓는 버들의 상태는 의연해지고 오히려 버들을 돌보던 호랑이 위태로워 보이게 전환되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의 전환은 번개라는 매개로 전환된다. 번개의 경고를 본 버들은 앞으로 닥쳐올 재난을 예감하고 호랑은 이를 보고는 버들에게 도망가자고 한다. 이성애 중심의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비생식 집단인 이들이 짐을 싸고, 환전을 해서라도 벗어나 행복해지자고 버들에게 권유하지만, 버들은 계속 이곳에 남겠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세계 자체를 사랑하려는 선언임과 동시에 개체를 넘어선 포용을 보여준다. 이들의 삶을 계속 관찰한 곤충들은 호랑과 버들의 관찰기를 재현하면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시절을 주기로 반복되는 흐름임을 밝혀 낸다. 곤충인 이들이 살아가는 삶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임을 관찰로서 알게 된 것이다. 이후 곤충들은 두발이엄지인 인간을 향한 오해를 풀고 존재와 삶을 받아들이며 궁극적인 환희로 나아가려 한다. 끝나지 않을 관찰을 계속하면서 사랑을 거듭하려 하는 것이다. 


초반에 이 소설에 몰입하기까지의 과정은 조금 어렵고 힘들 수 있다. 곤충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어느새 곤충이 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저자의 의도기도 하다. 처음 들여다보는 순간이 어렵다만, 보기 시작한다면 어느새 제대로 볼 수밖에 없으며 본 것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달라 자신이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려면 진심으로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보았을 때 수많은 눈과 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김멜라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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