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관점에서의 교육 목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개발자들이 '사일로 효과'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UI/UX만, 백엔드 개발자는 서버 로직만, 데이터베이스 담당자는 DB 설계만 생각한다. 자신의 개발 영역을 지키려고만 하고, 다른 영역이 침범하면 반발한다. 특히 조직 내 분위기가 '사일로 효과'에 빠져 있다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실제로는 이 모든 영역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부분의 결정이 다른 부분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프론트엔드에서 사용자 편의를 위해 실시간 검색 기능을 추가했는데, 이것이 백엔드 서버에 과도한 부하를 주고, 결국 전체 시스템 성능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또는 데이터베이스 정규화를 지나치게 진행해서 쿼리 성능이 떨어지고, 이것이 사용자 경험 저하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개별 기술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전체 시스템을 조망하는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단순히 여러 기술을 아는 것이 아니라, 기술들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비즈니스 목표와 기술적 제약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능력이다.
시스템 사고를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실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프로젝트 교육은 여전히 도구 중심이다. "리액트로 투두 앱 만들기", "스프링부트로 게시판 만들기" 같은 과제들이다. 이런 과제들은 기술 사용법은 익힐 수 있지만, 진정한 시스템 설계 경험은 제공하지 못한다.
예전 강의를 진행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다른 방식의 프로젝트를 제안했었다. "당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찾아서 어떻게 만들지 계획을 세워보세요"라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술 구현이 아니라 문제 정의와 해결 과정이다.
이런 문제가 주어지면, 대부분 당황해한다. 명확한 해답이 있는 문제를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스튜디오의 예약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예약 신청하기"를 만들려고 했지만, 문제를 깊이 분석해 보니 더 복잡한 이슈들이 드러났다. 사용자의 정보를 어디까지 받을 것인지, 예약 접수, 진행, 취소, 확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또한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고려해야 했다.
결국 그 학생은 이메일 보내기로 간단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메일 주소와 예약 시간, 내용을 입력하면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발송하는 시스템이었다. 기술적으로는 매우 단순했지만, 개인정보 보호(DB에 저장하지 않는다), 실시간 알림(Gmail이나 네이버 메일 등은 앱이 설치되어 있고, 알림이 설정되어 있다면 실시간으로 알림이 울린다), 구현 복잡성을 모두 고려한 현실적인 해결책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은 기술 사용법뿐만 아니라 문제 정의, 솔루션 설계, 제약 조건 고려 등 시스템적 사고의 핵심 요소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시스템 사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실패 경험이다. 현재 교육은 성공 사례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시스템 설계에서 실패는 불가피하고, 그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학습 과정이다.
실제로 유명한 시스템들도 수많은 실패를 거쳐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트위터는 초기에 '고래 에러' 문제로 유명했고, 넷플릭스는 DVD 사업에서 스트리밍으로 전환하면서 큰 위기를 겪었다. 이런 실패들이 오히려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에서도 이런 실패 경험을 의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이 설계한 시스템이 예상과 다르게 작동하거나, 확장성 문제를 겪거나, 사용자 요구사항 변경으로 인해 전면 재설계가 필요한 상황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은 초기 설계의 중요성, 변화에 대한 대응력, 지속적인 개선의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다.
진정한 시스템 사고를 기르려면 기술적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심리학, 경제학, 디자인,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 사용자 행동을 이해하려면 심리학적 통찰이 필요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려면 경제학적 사고가 필요하며,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려면 디자인적 감각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 '캡스톤 디자인', '다학제 프로젝트', 'PBL 수업', 'd.school', 'DesignX' 등을 진행하고 있다. 컴퓨터공학과 학생은 기술 구현을, 경영학과 학생은 비즈니스 모델을, 심리학과 학생은 사용자 분석을, 디자인과 학생은 사용자 경험을 담당한다.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시스템적 사고가 형성된다.
AI 시대에는 AI 도구들을 시스템 사고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AI를 단순한 답변 제공자가 아니라 사고를 촉진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ChatGPT에게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설계해 줘"라고 하는 대신,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해 줘"라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면 AI는 기술적 관점, 비즈니스 관점, 사용자 관점, 법적 관점 등 다양한 측면을 제시해 준다. 학생들은 이런 관점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설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시스템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
또한 AI를 활용해서 "만약 사용자가 100배 늘어난다면?", "만약 새로운 규제가 생긴다면?", "만약 경쟁사가 비슷한 서비스를 출시한다면?" 같은 시나리오 분석도 할 수 있다. AI가 각 시나리오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해 주면, 학생들은 이를 바탕으로 더 견고하고 유연한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다.
시스템 사고 교육이 성공하려면 평가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처럼 정답을 맞히는 시험 방식으로는 시스템적 사고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 대신 설계 과정과 사고 과정을 평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몇 가지 대안적 평가 방식을 개인적으로 제안해 보면, 먼저 '설계 포트폴리오' 방식이 있다. 학생들이 학기 동안 진행한 여러 프로젝트의 설계 과정, 의사결정 근거, 실패와 개선 과정을 문서화해서 제출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 과정과 학습 과정이다.
'동료 평가' 방식도 효과적이다. 팀 프로젝트에서 팀원들이 서로의 기여도와 협업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시스템 설계는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협업 능력도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어야 한다.
'리플렉션 저널' 방식도 있다. 학생들이 매주 자신의 학습 과정과 깨달음을 기록하게 하는 것이다. "이번 주에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기존 생각이 바뀐 부분은?", "다음에는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것인가?" 같은 질문들을 통해 학생들의 메타인지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시스템 사고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도 크게 바뀌어야 한다.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에서 학습을 촉진하는 '촉진자'로 전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좋은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결정이 다른 부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용자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같은 질문들을 통해 학생들의 사고를 확장시켜야 한다.
또한 학생들의 실패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실패했을 때 "틀렸다"라고 지적하는 대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다음에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라는 식으로 학습 기회로 전환시켜야 한다.
시스템 사고와 통합적 문제해결 능력은 하루아침에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육 목표도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역량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학생들이 복잡하고 불확실한 문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분석하며,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개발자로서의 역량을 넘어서, AI 시대를 살아갈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시스템 사고와 통합적 문제해결 능력 교육은 기존 교육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정답을 찾는 교육에서 질문을 만드는 교육으로, 개별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에서 지식을 통합하고 활용하는 교육으로, 경쟁 중심의 교육에서 협업 중심의 교육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변화를 통해서만 AI 시대에도 창조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