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탈해 Nov 17. 2021

푸코, 지금 여기 ‘장판’을 거쳐 우리의 이야기까지

인문책수다 <'장판'에서 푸코 읽기> 독서 모임 후기


충정로 2가에는 매주 모여서 갖가지 책을 읽고 나누는 모임 '충정로 2가 책벌레들'이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대면모임이 어려워지면서 모임의 정체성 및 특성과 함께 앞으로의 방향도 고민하게 되었다. 각 구성원이 다양한 연령대, 직업, 정체성으로 이루어진 만큼 이제까지의 우리는 같은 책을 읽어도 풍성한 이야기가 가능했는데, 재난 상황은 우리 내부의 이런 차이까지도 크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모임의 안팎, 나아가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폭과 깊이를 넓혀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마침 인문 360에서 진행하는 '우리동네 인문책수다' 사업 지정도서인 <'장판'에서 푸코 읽기>를 함께 읽어보기로 했다. 모임은 가능한 최소 인원 이외에는 전원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독서 모임 및 저자와의 대화는 최소 인원 외에는 전원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이 책은 장애 운동 활동가인 박정수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철학적 개념들을 풀어 설명하는 동시에, 이를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 운동판에 적용하여 사태를 진단한다. 푸코는 에피스테메*, 규율권력**, 생명권력*** 등의 개념을 통해 근대성이 어떻게 ‘인간’을 정의하는 '인간학'****을 구축해 왔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푸코에 의하면 근대적 권력으로 정의된 ‘인간’은, 우리 사회가 포용하기 힘든 타자를 규정하고 분리하며 관리∙통제함으로써 성립되어 왔다. 박정수는 이런 푸코의 논의를 빌려와, 우리 사회가 ‘광기’와 ‘장애’를 다루는 방식과 거기에 담긴 인식, 논쟁 지점들을 들추어낸다.


우리는 그런 <'장판'에서 푸코 읽기>를 함께 읽으면서 '인간'을 정의하는 인식, 정치, 권력의 문제를 논하는 푸코의 방법론과 사유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권 운동 판과 장애학에서의 쟁점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지점을 짚어볼 수 있었다. 내용 이해를 위한 각 장의 발제들과 관련된 설명들을 곁들여 읽으니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셸 푸코'와 '장애학' 두 영역이 함께, 그리고 매끄럽게 다가왔다. 그래도 정리되지 못한 부분은 추후 진행된 저자 북토크에서 막힘없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자 박정수님과 함께 한 <'장판'에서 푸코 읽기> 북토크.




그러나 정말 값진 경험은 따로 있었다. 푸코의 사유와 국내의 '장애학' 이야기는 우리의 안팎을 직∙간접적으로 관통했고, 이는 장애와 관련하여 우리가 마주한 경험 또는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불러왔다.


"색약검사를 했는데 적녹색약으로 진단을 받았어요. 당시 선생님이 저더러 색약이니 이과는 못 간다고 말했지요. 저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의식적으로 그쪽으로 마음의 문을 닫게 됐어요. 그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책의 내용처럼 에피스테메에 따라 질병의 분류도 조금은 자의적으로 변하는데, 이제는 시각장애 내용 분류에  색약은 포함되지도 않는 걸 보면 뭔가 우습기도 하고 그러네요."


"어릴 적에는 동네에 소위 말해 '바보 형/누나'가 한 명씩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동네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그 사람을 조금씩이나마 케어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점점 깔끔하고 능숙하게 분리/배제하는 것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실제로 초등학교때만 해도 교실에서 조금씩 보이는 정신질환 아동들이, 중∙고등학교에 이르면 거의 사라져요. 학부모들이 계속해서 해당 학생을 특수학교로 보내라고 민원을 넣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려 하지 않고, 손쉽게 분리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런가 하면, 장애학과 비슷하게, '근대적 인간' 또는 '정상성'의 바깥으로 몰려난 목소리가 함께하는 또 다른 '인간학'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여성학 공부를 하면서, 젠더에 관해서는 이런식의 추적이 가능할지, 그만큼의 자료가 확보되어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서 푸코를 많이 인용하는데, 장애학에서의 인식론과 페미니즘에서의 인식론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가진 ADHD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최근에야 성인 ADHD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특히 여성 ADHD의 경우에는 성 역할과 결부된 사고방식 때문에 관련 진단이 늦어진다고도 하더라구요. 장애학, 정신질환과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된 젠더의 관계를 함께 생각해보면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이런 정신질환들을 큰 의미에서 '신경다양성'으로 묶어 논의하려는 이야기도 나온다는데, 정신과 약물 자체는 의학적이고 뇌과학적이지만 증상을 인식하고 설명해내고 진단하기까지는 인간학적 과정이 따르기 때문에 더 자세하고 복잡한 논의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특히 기독교에서 주로 그러는데, 동성애를 치료의 대상인 정신병이라 여기는 풍토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돼요.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생각한 것은, 오히려 '정신병'을 대상화하고 규정하는 소위 '정상병'을 가진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인식들은 결국 몰려나거나 배제되지 않은 이들이 함께 공유해야 하는데, 이것 자체도 공유되지 않는다면 그게 곧 병 아닐까요?"




이처럼 푸코의 사유와 '인간학'을 통해 비추어본 장애학을 알아보면서 우러나온 우리 각자의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더 넓은 범위의 '인간'을 인식할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단순한 경험담의 연속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인 박정수는 장애 분류에 관한 반성적 수정, 탈시설 등의 실천적인 방향성 외에도 마지막 장에서 '타자 돌봄'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자기 돌봄'의 인식 틀을 제시한다. 우리가 무심코 '인간'의 바깥으로 여기는 존재들에 대한 돌봄이 우리 스스로의 돌봄과 이어져 있음을 알 때에, 우리는 자신/타자를 위해서 타자/자신을 돌볼 것이다.


이런 인식론적 단초를 시작으로 하여 어떻게 이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것인가, 나아가 어떤 실질적인 행위로 이어지게 할 것인가는 여전히, 동시에 책의 논의를 다 따라간 지금에야 우리 앞에 놓여진 숙제이다.




*에피스테메: 선험적 인식틀. 지식이 형성되기 위해 먼저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자 체계, 인식의 지층. p. 28
**규율권력: 효율성을 목적으로 한 메커니즘 속에서 신체를 복종하도록 만드는 근대적 권력 p. 186
***생명권력: 규율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초점에 맞추었다면, 생명권력은 사람들을 무리로 다루며 생명-정치적 권력을 다루어 통치함.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 p. 196
****푸코의 '인간학': 칸트에서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철학적 사유를 지배하고 이끈 가장 기본적인 경향. p. 23

매거진의 이전글 문화는 아래에서 자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