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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dcat혜진 Jun 26. 2022

세계와 세계, 그 끝에서 끝까지

| 사고: 산산조각으로 깨진 마음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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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나설 때 하얀 눈이 날리고 있었다.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며, 재희는 지난 생일을 떠올렸다. 하늘 위로 퍼져나가던 불꽃놀이, 그날 마음으로 붙잡던 서로를…. 원우의 해외 스케줄이 끝나가고 있었다. 며칠 후에 함께 할 것이라는 설렘이 가득한 목소리, 출발 전 들었던 원우의 목소리에는 곧 만날 기대감과 다시 함께 하게 될 며칠 후의 시간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호텔에 도착한 후 혜숙에게 서울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했다. 늦은 시간 도착하여 서울에서 하루를 지내고 가겠다는 연락이었는데, 자신들도 일이 있어 서울로 갈 계획이니 돌아오는 길에 함께 오면 되겠다며 좋아하는 혜숙의 말에 재희는 웃었다. 샤워를 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보다가 원우와 보냈던 그날의 밤이 떠올라서 자신도 모르게 붉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한 시간만 있다가 갈게.’

‘응. 가고 싶을 때 가.’

‘가고 싶을 때 가라고 하면 못 가. 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가.’

‘그런데 왜 시간을 정해서 간다고 해?’

‘안 그럼 영영 못 돌아갈 것 같으니까, 너한테 빠져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서로를 바라보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삭이듯 말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손만 만지작 거리면서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가끔 시선이 부딪치면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다가, 꼭 끌어안아주기를 반복하던 시간. 어떻게 지나간 건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 순간이었다.




‘빨리 스케줄 다하고 한국에서 보면 좋겠다.’

‘응, 같이 바다도 보고.’

‘맛집도 가고.’

‘데이트야?’

‘데이트지.’

‘…….’

‘왜?’

‘아직도 꿈인 것 같아서.’

‘현실이야, 그것도 아주아주 행복한.’




제 손끝에 입을 맞추면서 대답해주던 다정한 목소리가 다시 듣고 싶었다. 오랜 시간 미뤄두었던 감정들은 한꺼번에 밀려 나와서 이제 원우의 얼굴만 보면, 그리고 목소리만 들으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자신만의 일방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을 때와는 달리, 흔들리던 모든 시간을 건너 서로를 찾은 지금은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감만 계속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걱정될 정도로. 아무래도 너무 깊이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설 정도로.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안젤로의 말처럼 던져버리기로 했다. 더는 그런 걱정이나 섣부른 생각들 때문에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낯선 호텔 침대에 홀로 누워있으니 그때가 그리웠다. 꿈같은 시간은 왜 그렇게도 잡을 수도 없을 만큼 빨리 지나갈까. 재희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매듭 모양의 펜던트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언젠가부터 잠이 오지 않으면 들어버린 습관이었다. 오랜 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했지만 시차 때문인지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겨우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붙였다.



.

.

.

꿈은 불길했다. 번쩍 뜬 눈으로 한참 동안 천장만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꿈을 기억할 수는 없었다. 살짝 어지러운 자신의 머리를 젓다가 물 잔을 찾아들었다.


일어나서 조식을 먹은 후 혜숙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방안에 무음으로 켜 두기만 했던 텔레비전 화면에 사고 현장이 나오고 있었다. 비치되어있던 차를 한 잔 끓여 마시려던 재희는 잠시 컵을 내려두고 화면을 뚫어져라 봤다. 고속도로는 참혹할 정도로 차 수십대가 충돌한 상황이었다. 30중 추돌 사고의 원인은 반대편 차선에서 가드레일마저 넘어온 트럭에 실려있던 목재가 도로를 덮쳐서였다.


홀린 듯이 리모컨으로 무음을 제거하고 소리를 들었다.




“현재 사고 현장은…….”




그 후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재희의 눈에는 지금 아나운서가 서 있는 저 화면 끝에 잡혀있는 목재, 그리고 그 끝에 걸려있는 머플러….


예전에 혜숙에게 선물하기 위해 원우 시호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샀던 그 머플러, 결국 제인의 목에 걸렸다가 다시 제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제인은 ‘미안해. 그런데 내 선물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심술 좀 부린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인이 곱게 세탁해서 혜숙에게 전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지난번 혜숙의 집에 갔을 때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머플러가 왜 저기에….


이미 사고 후에 충돌한 차량과 사상자는 수습을 한 후의 화면이었다. 재희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저런 머플러야 얼마든지 같은 것이 많으니까. 혜숙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상대방이 받지 않는 그 신호음은 계속해서 시간을 갉아먹으면서 재희의 속을 메마르게 했다. 현우의 휴대폰도 마찬가지였다.




“아…….”




재희는 어느새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어이, 그 순간이 왔다. 자신이 우려했던 그 순간이, 밀어내려 했지만 자신을 찾아와 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질 때 까지도 재희는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했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재희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인정해야 했다. 항복해야 했다. 지금은 그저 두 사람의 행방만 알고 싶을 뿐이다. 그저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자신이 걱정하는 것이 우려일 뿐이길.




“해리. 저예요. 부탁하나 할게요.”




한국에서 그들의 가족은 원우뿐이다. 자신은 그들에게 법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정상적인 경로가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제발, 제발.


재희는 지금이라도 혜숙에게 연락이 오길 바랐다. 사실은 오는 동안 깜박 잠이 들어서 못 받았던 거라고. 현우의 휴대전화는 집에 두고 왔다고. 그런 사소한 이유들을 상상하며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바라고 또 바랐다.




-




한국의 장례식은 여전히 낯설었다. 어릴  자신이 제인의 손을 잡고 등장했던  장례식장과 전혀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낯선 향과 메마르고 하기만  건물. 정체를   없는 수많은 화환과 죽은 이를 위한 장소보다  사람들의 장소가  많은 . 제인의 장례식과 마리아의 장례식처럼 고인을 추모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보다 산사람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 같은 곳이었다.




“그래도 자식이 유명한 가수라며? 기자들도 왔던데.”

“그러면 뭐해. 죽으면 아무 소용없지.”

“아이고, 그러게. 그렇게 갑자기 허망하게….”





그리고 그 장소에서 재희는 이방인처럼 서성거렸다. 어떤 시간에는 복도의 벤치에 앉아있었고, 또 어떤 순간에는 비상구 계단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또 어느 때는 건물 밖의 흡연장소와 멀리 떨어진 화단에 웅크리고 있었다. 낮과 밤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재희는 혜숙과 현우의 영정 사진을 딱 한번 봤다. 도저히 그 앞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제인의 죽음과도 다르고, 마리아의 죽음과도 다른 두 사람의 죽음 앞에 재희는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울 수도 없었다.


재희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뭘까.


이건 대체 뭘까.


누군가의 죽음은 하나의 죽음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시간을 빼앗고, 그 시간 속에 슬픔만 박혀버리는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많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삶은 보통의 또래보다 어두운 구석을 만들어냈고, 제인의 죽음 이후에 커다란 구멍이 삶에 생긴 것 마냥 휑한 그 많은 시간을 메우면서 겨우 버텼다. 그리고 마리아의 죽음은 재희에게는 무너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무릎을 꿇은 채 이제 그만하라고 세상의 누군가에게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어쨌거나 또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편지를 남긴 제인이나, 분신이나 다름없는 귀한 손자를 자신에게 친구로 소개해줬던 마리아를 생각하며 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조문객이 드물어진 시간, 장례식장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 인형처럼 우두커니 앉아있는 원우의 모습을 바라보면 재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사고 소식이 원우에게 겨우 전달되고, 18시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원우는 곧장 검은색 옷을 입고 상주 노릇을 해야 했다. 평소와 달리 얇은 테의 안경을 쓴 그 무표정한 얼굴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첫날에 잠깐 얼씬거리던 기자들도 나중에는 자리에서 사라지고, 원우를 형제처럼 여기는 같은 그룹의 멤버들만 결국에는 남았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새삼스럽게도 고아였던 현우와 가까운 친척 하나 없었던 혜숙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혈육은 원우가 전부였다. 장례식장 한편 화면에 한자로 적혀있는 ‘상주’라는 글자는 아무리 봐도 사무치게 외로울 정도로 홀로 있었다. 원우…. 그 둥근 이름이 이상하게 서글퍼서 입에 올릴 수 없었다. 그나마 그동안 쌓아둔 인맥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혜숙과 현우의 지인들이 수많은 발걸음을 했지만, 결국 언제나 조용한 새벽이 되면 남는 것은 원우 혼자였다.


그럼에도 재희는 원우의 옆에 갈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그 시간조차도 자신이 그의 곁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자신의 슬픔은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어야 마땅했다. 자신은 혜숙과 현우의 영정 사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이렇게 직면하고 보니, 더더욱 씁쓸할 사실이었고, 그런 씁쓸함조차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했고, 마지막에는 차라리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면 그들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 이르렀다.


다시…, 또다시.


저를 둘러싼 불행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몸을 누군가가 일으켜 세우는 손길이 있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안 추워?”

“…….”

“나야, 시호야.”




제 앞에 선 시호의 눈과 코가 빨간 것을 보던 재희는 그 이유도 자신 탓인 것 같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원우의 옆에 그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걸 대비라도 한 것처럼, 혼자인 그를 결코 혼자 두지 않을 다른 이들이 존재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니, 불행 중 다행히도.




‘형제 같아, 친구 같기도 하고. 난 외아들인데 지금은 형이나 동생이 많은 그런 느낌?’




언젠가 원우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자신을 소개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한국에 돌아오면, 그리고 기회가 되면 꼭 집으로 초대해서 정식으로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고. 가족만큼 가까운 이들이니까, 그들은 뭐라도 이해해줄 거라고. 자신도 그들에게는 뭐든 그럴 테니까.




“괜찮아? 아까부터 찾았어. 춥다. 들어가자.”

“…, 원우는?”

“원우도 겨우 눈 붙였어. 너도 상주실에서 눈 좀 붙여.”

“…….”




그런데 이들에게 뭘 이야기해야 할까. 이제 대체 뭘 이야기해야 할까. 우린 어디서부터 잘 못 되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야 마땅할 것 같은데.


시호의 말에 재희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원우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뜻 같았다. 재희의 고갯짓을 읽은 건지 시호는 더는 권하지 않았지만, 차갑게 얼어버린 재희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재희는 지금 시호의 손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얼굴로 어딘가를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틀 동안 잠은커녕 끼니도 챙기지 못했고, 그저 메말라 시들고 얼어버린 꽃 같은 얼굴이었다.


하얗게 질려버린 그 얼굴을 데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재희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듯 시호의 손을 잡은 채 어딘가로 향했다. 아무도 남지 않은 장례식장 안에는 원우의 곁을 이틀 째 붙박이처럼 돌아가며 지키는 멤버들이 있었지만 재희는 그들과 인사를 하지도 눈을 맞추지도 못했다.


불행이 옮으면 안 되니까.


이제 남아있는 원우의 ‘그들’에게 재희는 어떤 것도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되니까. 그런 생각을 다 하기도 전에 어둠이 깔린 어떤 공간으로 들어섰다. 한편에 마련된 아늑한 공간 안으로 발을 들이자 그제야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며 방금 전까지 있었던 밖이 얼마나 추웠던지를 깨달았다. 따뜻한 곳에 들어서고 나서야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시호가 이끄는 대로 어둑한 방 한 구석에 몸을 눕히자 곧 깊고 빠르게 몰려드는 수마에 재희는 눈을 감았다.




“시호야….”

“응.”

“원우는?”

“지금 저기서 자. 너도 눈 좀 붙여.”

“…….”

“내일 새벽에…….”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시호의 목소리에 재희는 이제 또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관, 화장, 수목장…. 같은 단어들을 들었다. 3일 혹은 일주일. 아직 남아있는 고인의 혼이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장례식을 며칠 씩 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혜숙과 현우의 영혼도 이곳 어딘가를 맴돌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들이 잘못 떠난 사실을 뒤늦게 깨달으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여전해서 재희는 깊은 잠이 밀려들고 있었지만, 걱정스러움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곳에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까……. 원우는 자신이 있어주기를 원하는 걸까……. 그도 아니면 자신은 이제 어디를 가야 하는 것이고, 누구를 만나야 하는 것일까.


마지막 의문에 재희는 울컥 새어 나오려는 눈물을 삼켰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반대쪽 구석에 구겨지듯 누워있던 원우의 실루엣을 보았다. 한껏 넓은 등은 오늘따라 말라 보였다. 얼굴을 벽면 쪽으로 돌리고 있어서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새우처럼 구부린 그 몸이 너무 슬퍼 재희는 한 참이나 옆으로 누운 채 다시 잠들지 못하고 그 뒷모습만 보았다.




“원우…….”




동그란 이름이 오늘따라 너무 힘들었다. 목소리가 겨우 나올 듯 말 듯 웅얼거리는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건지 뒤척거리던 원우의 몸이 재희의 쪽으로 돌려졌다. 한 손으로는 얇은 테의 안경을 가볍게 접어 쥐고 있었다. 눈을 뜬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재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앉는 원우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았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의 빛은 닫힌 커튼 틈으로 밀려들어와 두 사람 사이에 가느다란 실금을 만들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원우의 실루엣이 제법 또렷해졌고, 뚜렷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는 원우를 재희는 알 수 있었다. 재희는 원우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켜 맞은편 벽면에 기대앉았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 그어진 실금 같은 빛은 사라지지 않은 채 어둠과 대비되며 뚜렷해지고 있었다.


톡톡, 원우의 손이 바닥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리는 것을 보고 재희는 잠시 머뭇거리며 그대로 있었다. 다시 자신의 옆 공간을 툭툭, 두드리며 고개 짓을 하였을 때, 재희는 그때서야 원우가 자신에게 옆으로 오라고 하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재희가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얀 실금을 넘어가 원우의 옆에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


두 사람은 같은 벽에 등을 기대고 그렇게 나란히 한참 동안 앉아있었다.




“…, 집에 가고 싶다.”

“…….”

“잡채 해 준다고 했었어. 엄마가.”

“…….”

“먹고 싶다고 했거든.”

“…….”

“네가 좋아하는 것도 준비해 둔다고 했었는데.”

“…….”

“돌아오면 다 같이 일출 보러 가자고 했어, 아빠는.”

“…….”

“바다에 같이 가자고.”

“…….”




그 말을 하고 나서 원우는 세워둔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 채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재희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메말라버린 자신의 입술 한쪽을 물어뜯었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울지 않았지만, 슬픔은 이미 차고도 넘쳐 울지 않아도 충분했다.




“나도….”

“…….”

“나도 집에 가고 싶어, 원우야.”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지만, 재희는 원우의 손끝을 향해 천천히 겨우 손을 내밀었다. 미지근한 자신의 손과 달리 늘 따뜻했던 원우의 손은 오늘따라 차갑기 그지없었다. 분명히 바닥도 공기도 따뜻한 실내였지만, 천천히 닿는 손끝은 지독할 정도로 차가웠다. 원우의 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를 더듬어 겨우 잡아주었을 때, 재희는 자신의 입술을 더 세게 깨물었다. 피멍이 들 지언정 그 정도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쳐질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두려움, 하지만 원우는 그러지 않았다.


다만 가만히 차가운 손끝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주는 재희를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이윽고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쳤을 때, 실금 같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둘 것 같았던 빛의 선은 어느새 방구석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바라보는 서로의 두 눈은 울먹였지만, 울지 않았고, 슬펐지만, 그 슬픔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집에 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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