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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Nov 11. 2020

제발 부탁한다.

스물 네번째 이야기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죠.

아버지는 어머니를 욕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욕해요. 친할머니는 어머니를 욕하고, 외할머니는 아버지를 욕해요. 친아버지에서 친어머니로 친 어머니에서 친할머니로 친할머니에서 외할머니로, 그렇게 전 떠넘겨졌어요.



그런 순간이 있다.

어떤 말로도, 어떤 마음으로도, 마주 앉은 내담자의 아픔을 담아주지 못할 것만 같은.

흐르는 눈물을 쉬이 멈추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나 또한 찢어지는 마음으로 그저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내담자의 거대한 고통 앞에 설 때면, 최선을 다해 그 마음에 함께 머무르려고 한다.



그토록 작은 가슴에 담겼을 거대한 산과도 같은 고통이 내 마음을 쳤다. 어지간해선, 웬만해선 이제 우는 것 즈음 컨트롤 가능하다 자부하는 나의 10년 경력을  흔드는 아픔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큰대는 콧잔등의 훌쩍거림에 그녀는 미처 울지 못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했다. 그렇게 한 동안 우리는 함께 그 순간, 감정의 너울을 넘고 있었다.



나의 마음이 통한 걸까. 그녀는 말을 이어갔고, 차라리 부모로부터 단절되고 싶은 본인의 바람을 깊은 마음속 죄책감을 담아 이야기했다.





누가 너를 욕해요. 그런 마음 가질 수 있죠. 충분히.




'용서하길 포기하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 속엔 우리 의지만으로 용서라는 단어를 담기에 불가능한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양심과 죄책감은 당위로써 '용서해야 한다, 해결해야 한다'를 섣불리 강요한다.




나의 내담자 역시 자신을 떠넘기는 부모와 단절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자신의 생각을 죄악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누구도 너를 비난할 수 없음을 일깨웠다. 그녀는 사실상 심리적 고아였다. 그녀는 한 때 이렇게 뇌까렸다.




"차라리 고아원에 버려주었다면 나았겠다 싶었어요. 이리저리 핑퐁질만 해대고 서로 욕해대는 부모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핑퐁질 하지 않을게요. 전 00 씨 떠넘기지 않을게요. 여기 이 자리에서 약속한 이 시간을 꼭 지킬게요. 그러니, 우리 함께 가봐요.




나는 그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아주 작은 약속을 했다. 그리고 다짐해 본다. 그녀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에게도 떠넘기지 않으리라. 고스란히 함께하며 느껴주리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부모들은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헐뜯으며 욕설을 주고받을 때, 그의 자녀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지. 그들 간의 패드립이 부부싸움의 마지노선이라면, 자녀에게 상대 배우자를 욕하는 것이 그와 맞먹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들은 결단코 모른다.




제발 부탁한다.

자녀 앞에서 상대 배우자 욕하지도, 헐뜯지도 말라.

제발 부탁한다.

그건 상담실에 가서 쏟아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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