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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Nov 24. 2020

기도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듣는다.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월요일 오전, 웬만해선 상담일정을 잡지 않는다. 한 주의 시작이기도 하고 처리해야 할 사무업무나 기타 등등의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방문할 때까지 막진 않는다. 뭐 어찌 되었건, 오늘 월요일 아침에는 출근 전부터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요일 오후 약속한 그녀는 지금 곧바로 상담을 시작할 수 있는지 물었고, 나는 30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시간적 여유가 마음의 여유로 이어지는 나는 상담을 할 때마다 준비가 필요하다.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상담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지난주 그녀가 경험한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자신의 탓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30분 이상 지속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분노가 차올랐다. 특별히 그녀가 자신을 지칭하며 "저 때문에.."라고 할 때는 정말이지 살 떨리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저 때문에 싸우는 거라고, 저만 사라지면 될 것 같아요."라고 기름을 부었다. 상담 10분을 남겨두고 나는 폭발했고 울분을 토하며 그녀에게 토해내듯 쏟아냈다.




그런 말이 어딨어요. 세상에 누구 때문에라는 말이 어딨어요. 자기 선택이지.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 사람들 말대로 진짜 00 씨 때문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00 씨만큼은 자기 자신에게 그거 아니라고 그렇게 변호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그 순간에서 00 씨조차 00 씨 편이 아닌 거죠? 전 그 지점이 너무 가슴이 아파요. 아니 아프다 못해 찢어져요. 다시 한번 말할게요. 00 씨 탓 아니에요.




붉어진 그녀의 눈은 마치 빨간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이런 걸 두고 피눈물이라고 하나보다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그녀를 만나고 단 한 번도 울지 않은 적이 없는 내 가슴이었다. 보고만 있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사랑스럽고 이쁜 그녀를 두고도 정작 그녀의 부모는 전쟁같은 싸움을 계속하며, 심지어 그 싸움조차 그녀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아무 힘이 없는 그녀는 그걸 고개 끄덕이며 받아먹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며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면 나 또한 그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났다.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녀의 주변인들이 그녀를 대했던 그 태도로 나 또한 대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을 받는다. 그럴 때면,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억누른다. 그리고 나의 신께 기도한다. '하나님, 잘 들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내 사심을 채우는 듣기가 아닌, 오직 그녀만을 위한 듣기가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녀의 편에 설 수 있게 해 주세요'




누군가에게는 그런 비과학적인 방법에 기대냐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나는 저 방법으로 수많은 내담자들을 조금 더 나은 삶으로 이끌었다. 모든 상담적 지식과 기술을 내려놓고 신에게 간절함을 담아 빈다는 것은 겸손함의 한 표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치료사의 겸손함은 내담자 스스로 살아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자신의 치료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는 치료의 최종 종착점과도 맞닿아 있다. 치료의 최종 종착점은 내담자 스스로 자신을 위해 나아지기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담담히 고백하며 내 신께 기도한다. 내일은 그의 삶이 더욱 나아지기를.. 내일은 조금 더 그녀 스스로 자신의 편에 설 수 있기를... 그 여정 속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도망가지 않고 내가 함께 할 테니 같이 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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