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이후 단 1년을 제외하곤, 동네를 떠나본 적이 없다. 이런 나에게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지인들(고아원 동기들?)은 외모만큼이나 참 안 변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불혹이라는 내 나이만큼이나 논과 밭뿐이던 동네 곳곳은 30년이란 세월 앞, 샅샅이 파헤치고 들어업쳐 져 새로운 건물과 사람들로 채워졌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리 잡은 건물들과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시기심이 폭발해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까렸다.
'니들이 주인 같지? 실은 내가 너네보다 훨씬 먼저 살았어.'
이 동네에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갖고 있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나의 마음은 꼬여있다. 전문가에게 찾아가 풀어내고 혼자서 15년을 넘게 사람 마음을 공부하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실타래 같은 마음이다. 그래도 그 실타래가 이렇게 나의 글의 원천이 되어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뭐 어찌 되었건 다시 본문으로!
어제였다. 집으로 가기 위해 우회전을 기다리고 있던 내 눈에 00 교회가 들어왔다. 다 변해도 나는 안 변한다는 그분의 말씀을 마치 실현이라도 하듯 언제나처럼 당연하다는 듯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교회였다.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의 빨간 벽돌과 십자가 첨탑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잡념들이 방안 먼지처럼 일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살던 고아원에서 그 교회를 반 강제적으로 매주 한 번씩 거의 7,8년 동안 다니게 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제는 고등학교 건물로 바뀐 내가 살던 고아원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일까. 내 어린 시절 그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에 바보같이 서 있는 그 교회를 마주하니 추억이 되어 버린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오랜 세월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고아원 생존기를 써보자 마음먹게 했다. 당시에는 죽기보다 가기 싫었던 그 교회가 이 이야기의 출발이 될 줄이야. 사람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나는 브런치를 통해 여러 글을 게재했다. 내 이야기를 쓰면서도 훗날 있을 여러 가지 일들을 대비해 적절히 소설처럼 버무렸다. 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걸 좋아하는 내 성정에 엇나간다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이후에 혹시라도 그 진실들이 날 베는 칼이 될까 두려워 적당한 선에서 그렇게 글을 써왔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진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하다.
여하튼, 나의 고아원 생존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의 인생 초반 10년은 학대에서 살아남았고, 이후 10년은 고아원에서 살아남았으며 스무 살이 되어서는 그 20년의 세월이 남긴 상흔에서 살았고 여전히 살아내는 중이다. 사연 없는 삶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이 넓은 세상 속 사람들, 가정들은 저마다의 사연 하나씩 직장인 서랍 속 사직서처럼 가슴에 품고 산다.
고아원을 이야기의 시작으로 잡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고아원에서 살아본 당사자로서 기록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다. 언젠가부터 내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든 어떤 이에게는 유의미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아가 쉽지 않은 일상을 위태롭게 견뎌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사실 내가 쓰는 모든 글의 목적은 위로다. 아울러 훗날 이제 갓 돌을 지난 내 아들이 사춘기가 되었을 때, 나의 이 이야기가 그 아이의 삶 속 자부심이며 방황 속 이정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있다.
전문작가가 아니기에 전달력이 다소 떨어져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할까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누더기 같은 글 너머 삶의 힘과 진심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담아 적어보려 한다. 나의 이 글이 당신에게 때로 재미로, 때로 가슴 아프지만 따뜻함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