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 그대로의 고아원 생존기 01
고아원에서의 삶은 전반적으로 그동안 살아내던 일상에 비하면 나쁘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잡고 때리고, 불을 지르고 칼을 휘두르던 존재에게서 손으로 콕 쥐어박거나, 간식을 뺏어먹고, 자신이 할 일을 대신하도록 시키며 괴롭히는 언니들로 대체되었을 뿐. 나쁠 것 없었다.
고아원은 3층짜리 건물에 층별로 집이 두 채씩 총 여섯 채가 있는 빌라건물이었다. 입구에 들어가 왼쪽은 여자방, 오른쪽은 남자방이었다. 1층은 미취학 아동들이 있었고 2,3층부터는 초, 중, 고 생이 함께 생활했다. 이곳이 살아남아야 하는 또 다른 정글임을 깨닫는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2층 여자방인 '진달래방'으로 안내되었다. 한 여자분이 "이제부터 네가 살 곳이야"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보니, 그분이 그 방 담당 선생님이자 내 선생님이었다. 이내, 두 명의 큰 언니가 다가와 본인들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했다. 생존본능이었을까, 아니면 학대당한 아이의 본능이었을까. 좀 더 세 보이는 언니를 선택했다. 지내다 보니 그 언니는 지금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세게 괴롭히다 못해 변태에 가까웠다.
내가 고아원에 버려졌던 시기는 90년대 후반이었다. 지금도 인권의 사각지대가 넘쳐난다지만 그때만 해도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뭔지도 모를 시기였다. 고아원에서 인권 그것도 아동인권을 운운한다는 건 누군가의 코웃음과 비아냥을 감당해야 했을 정도였다.
내가 선택했던(?) 고아원 내의 학대의 출발이자 상징적 존재인 쎈 언니에 대해 말해봐야겠다. 밤이면 자신이 잠들기 힘들다며 나를 포함한 4, 5명의 초등학생들에게 자신이 잠들 때까지 머리를 쓸어내리게 만들고, 때로는 자기만의 아지트로 데려가 자신의 신체 위에 포개듯 누우라고 시켰다. 다행히(?) 옷은 입은 채였다. 유사 성행위였다는 걸 고등학생이 되고 알았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방에서 따돌리기 일쑤였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나오기 30년 전에 나는 이미 그 샘플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고아원에 처음 오고 1,2년 즈음 지났을까. 그때 그 언니는 방직고등학교에 들어가 고아원을 일찍 퇴소했다. 당시 듣기로는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일도 하기 때문에 고아원에 다시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후 30년 즈음 지나서 들린 소문에 의하면 그 언니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여하튼, 그 언니가 퇴소한 뒤 나의 삶은 역시나 바뀐 것이 없었다. 내 생부에서 그 쎈언니로, 또 그 쎈 언니에서 그 아래 나이대의 다른 쎈 언니들의 다양한 괴롭힘으로 대체되었을 뿐이었다. 괴롭힘은 참으로 다양하고 스펙터클했다. 그중 두 가지만 얘기해 보고 싶다. 한참 잠을 자고 있던 새벽 녘, 영문을 모른 채 뺨을 흠칫 두들겨 맞아 코피를 흘린 적이 있다. 이유는 잠자던 중 내가 그 언니 본인의 몸을 발로 찼다는 것이다. 한참 몸부림치며 자는 어린아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언니의 사춘기였다. 그 언니는 그것을 참아줄 수 없었다. 그래서 깊이 잠들어있던 나를 깨워 주먹으로 얼굴을 그대로 가격한 것이다. 사실 당시 코피를 보기 전까지도 나는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고 말 그대로 인사불성이었다.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본인의 게임기를 내가 잃어버렸다며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저녁 시간이던 19:00-20:00에 방에 들어가서 혼자 있으라던 또 다른 쎈 언니가 있었다. 당시 그 언니가 고등학교를 가기 전까지 거의 2년 동안 나는 그 갈굼을 견뎌야 했다. 이것 외에도 자신의 이부자리를 펴고 개는 것 등 자신들의 해야 할 일을 아래 동생들에게 시키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러한 언니들의 괴롭힘을 막아줄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선생님들은 길면 2년, 3년마다 관두셨고 언니들은 나나 그 언니가 퇴소하지 않는 한 계속 함께 살아야 할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학대와 괴롭힘은 고아원을 창문은 있었지만 피할 곳 없는 막다른 감옥처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인생이란 어쩌면 매 순간 다양한 가해자들이 내 안 밖을 돌아다니며 학대하고 괴롭힌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닫기에 충분한 현실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자란 나는 어떤 아이가 되었을까? 아니 되어야 했을까? 아니 될 수 있었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