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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Feb 25. 2016

어느새 아줌마

아줌마는 아줌마가 되려고 아줌마가 되는 게 아니다.

버릇처럼 페이스북 앱을 닫고 인스타그램 앱을 켜본다. 잘나고 이쁘고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사진들로 가득하다. 아이 엄마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날씬하지? 이 사람은 피부 참 좋다. 저 사람은 집을 저렇게 꾸미고  사는구나, 센스도 참 좋네. 이 사람 저 사람 사는 인생 구경하다 앱을 닫는다.


현실이다.


양치하면서 튀어버린 치약 물이 말라붙은 거울 속으로 내 얼굴이 보인다. 어느샌가 칙칙해져 아무리 웃어봐도 피곤해 보이는 내 얼굴. 아이고. 아들 깨기 전에 얼른 샤워를 마쳐야지. 아직 돌이 안된 아들이  자정쯤에 배고프다고 울기 전에 얼른 씻어야 한다. 옷을 하나 둘 벗는다. 아이를 낳고 망가져 버린 내 몸매를 볼 용기가 없어 거울 속에 나에게 눈 마주치기 전에 욕조로 향한다. '샤워를 끝내면 드라이하기 전에 주방에 가서 보리차 끓이려고 올려둔 물에 보리차 티백 넣고 얼른 드라이하고 방금 벗은 속옷과 타월을 넣어서 세탁기 돌리고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젖병들을 씻어야겠다. 아참, 내일 퇴근해서 먹을 밥도 미리 안쳐둬야지... ' 손가락에 힘을 가득 주고 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마음이 급해져 손가락을 더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들 목욕시키고 썼던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얼른 주방으로 달려간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보다 잠들어있는 신랑이 보인다. 순간  잔소리하고 싶은 충동을 참고 얼른 보리차 티백을 넣고 다시 올라가 아들이 아직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드라이를 한다. 겨드랑이까지 오던 덥수룩한 머리를 잘라 버렸는데도 여전히 드라이하는 시간은 아깝고 힘들다. 혹여나 시끄러운 드라이 소리에 아들이 우는 소리를 못 들었나 몇 번이나 드라이를 껐다가 켰다가를 반복한다.


반짝반짝 거려


스무 살이 조금 지나서였나. 나를 좋아한다던 어떤 오빠가 나에게 그랬더랬다. '체- 사람이 어떻게 반짝반짝 거리냐.' 그냥 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넘겼던 그 말이 요즘따라 자주 생각난다. 맞아. 나 참 반짝반짝 거렸었구나. 참 예뻤었구나. 그냥 순수하게 웃을 수 있던 그때의 내가. 꾸미지 않아도, 파운데이션을 정성스럽게 바르지 않아도,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아도, 그냥 친구를 만나서 반갑게 웃던 내 미소가. 굴러가던 낙엽만 보고도 감성이 터지다가 노래 한곡에 꽂혀 무한반복을 틀어두고 밤새 과제하다가 새벽에 잠들어버리던 내가. 나 참 반짝반짝 거렸었지.


결혼식 날짜를 잡아서 한창 행복에 겨워할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보내는 카톡도 '내일 아침 출근해서 이렇게 보내면 한국이 밤이니까 잠깐 얘기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마음먹고 대화창을 켜야 한다. '나 잘 있다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이나 하나 올릴까.' 인스타그램 앱을 키고 올릴 만한 사진들을 이것저것 뒤져본다. 아무리 뒤져봐도 아들 자는 사진, 아들 어린이집 간 사진, 아들 먹는 사진, 아들 기어 다니는 동영상.. 마땅한 게 없다. '내가 올려봤자 누가 관심이나 있겠어.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시크한 멘트를 속으로 삼키고 앱을 끈다.


치치치지지직 -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밥을 저어 주세요.


고요한 어둠 속에서 쿠쿠밥솥만이 나에게 말을 걸어줄 뿐이다. 밥이 다되었으니 얼른 도시락 싸고 자야지. 부지런히 볶음밥을 만든다. 락앤락에 적당량을 덜어 넣어 도시락 두개를 만들고 얼른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여기저기 고인 물들, 식탁 위에  달라붙은 김칫국물을 행주로 닦고 행주를 빨고 싱크대에 걸어두고 드디어 마무우우우리! 으차. 주방을 나왔더니 제자리를 못 찾은 아들 장난감들, 저번 크리스마스에 신랑한테 선물해주려고 짜다가 만 목도리, 아직 열어도 보지 못한 각종 청구서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애써 모른 체 한다. 벌써 11시 반이다. 신랑을 깨우고 침대로 올려 보내고 나도 보리차 한잔을 마시고  이불속에 몸을 뉘인다. 아직 차갑지만 금방 따뜻해지겠지? 뜨듯한 한국 온돌바닥이 그립다- 하아암- 하품을 한다.


아들이 내 인기척을 들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다가 물고 있던 쪽쪽이를 뱉어버리고 이내 울어버린다. '그래, 차라리 엄마 잠들기 전에 깨 줘서 고맙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고 미리 준비해둔 분유 젖병에 따뜻한 물을 붓고 아들에게 쥐어준다. '짜식, 제법 컸다고 잠결에도 혼자 젖병을 잡을 줄 아네'  그렇게 아들이 젖병을 힘차게 빠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깐 잠이 든다.


어느샌가 나는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어떤 날은 퇴근하자마자 화장실이 급해서 화장실로 뛰어가는 계단에서 나도 모르게 바지 지퍼를 풀고 있었다. 변기에 앉아 그 시간도 아까워 볼일을 보면서 바지를 벗고 방으로 뛰어들어가 츄리닝 바지로  갈아입었다. 갑자기 한국 공중 화장실에서 변기 칸막이에 들어도 가기 전에 바지 지퍼를 열던 이름 모를 아줌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얼른 내가 부지런을 떨어야 빨리 저녁을 먹고 마무리할 수 있으니까.' 괜히 다른 변명으로 나를 위로하고 주방으로 달려간다.


나만큼은 이쁘게 다르게 살 거야.라고 생각했던 결혼 초기의 풋풋함은 사라지고 거울 속에 피곤에 가득한 아침에 그린 아이라인이 번져있고 츄리닝 주머니엔 아들 코를 닦아준 손수건, 쪽쪽이가 가득 차 있는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이제 한국나이로 서른하나. 아줌마가 되기에 괜찮은 나이는 없다. 준비된 사람도 없다.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드라마 주인공에 웃다가 울다가, 화장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바지 지퍼를 열고 신랑에게 잔소리나 툴툴해대는 그런 아줌마가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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