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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기 Jan 26. 2016

옛사람의 글쓰기 문장

공자! 세상을 경영하는 일은 언어를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1

언어의 빛과 그림자

공자는 체계적인 글쓰기 이론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문명의 질서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명은 언어로부터 시작합니다. 문명은 인간이 말을 사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명세계의 언어에는 밝은 빛과 어두운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언어의 빛과 어둠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말이 필요 없는 사람, 성인

흔히 성인은 글을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그분들의 말씀은 제자들의 기억에 의존한 2차 진술이 대부분입니다. 제자들에게는 훌륭한 스승의 몸가짐과 그 행위 하나하나가 가르침의 언어 그 자체입니다. 말은 행실의 나머지이고 글은 말의 나머지입니다. 어찌 보면 성인은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극히 훌륭한 인간의 행실은 그 자체로 자족적이고 나머지 말이 그다지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행실이 곤궁해질 때 말이 필요하게 되고 말이 곤궁해질 때 글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 어느 누가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고 더 이상 글이 필요하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은 그의 행실이 조금도 구차하거나 곤궁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공자는 제자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그러자 언변이 좋고 말하기를 즐기는 자공이 묻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신다면 저희가 무엇으로 도를 전하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다시 “하늘이 무어라 말하는 게 있더냐? 사계절을 운행케 하고, 모든 생명들을 생성케 하지만, 하늘이 무어라 말하는 게 있더냐?(《논어》양화19))”라고 말합니다. 하늘의 이치는 인간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해와 달처럼 그 자체로 명명백백한 것입니다. 하늘이 그러하듯 성인의 행동 하나하나도 그 자체가 도의를 발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또한 말을 기다려서야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의 이러한 무언(無言) 선언에는 불완전한 문명세계의 언어에 대한 극도의 피로감과 삶 자체가 주는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나타납니다.         


나머지로서의 말과 글

공자는 몸으로 덕을 “행하고, 그래도 남는 힘이 있을 때 글을 배우라(《논어》학이6)”고 합니다. 글은 실천궁행의 나머지 영역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공자는 실천이 없는 그저 말뿐인 말, 허울뿐인 말을 혐오합니다. 언과 행, 행과 언의 경중을 가릴 때면, 공자는 늘 행의 편에 섰습니다. 

그는 “글로는 말을 다 전하지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 전하지 못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주역》계사]”고 말하기도 합니다. 말은 뜻을 온전히 전하기에 부족하고 글은 말을 온전히 전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참뜻이 1차적인 것이고 말은 2차적인 것이며 글은 3차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글을 공부하는 것은 근본적인 공부일 수 없고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말과 글은 본질이 아니라 나머지라는 것입니다. 


공자가 생각한 참된 공부는 말로 하는 공부도 아니요 글로 하는 공부도 아닌, 다만 몸으로 하는 공부였습니다. 나의 몸 공부는 타인의 몸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훌륭한 덕행으로 살아가는 타인의 몸을 바라보면서, 나의 몸을 좋은 습관으로 길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의 본령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영어단어 외고 수학공식 외우는 것이 공부의 본령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영어 단어는 물론이고 숫자도 결국은 언어의 일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시대의 공부는 언어공부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런 시대에 공자의 이런 생각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다보면 알게 됩니다. 언어가 무력해지고 무색해지는 순간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말없는 가르침[不言之敎]’를 말하고 불가에서는 ‘불립문자’와 ‘언어도단’과 ‘염화미소’를 말하는데 이러한 발언들이 공자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말과 글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을 연결해 주는 일종의 수단이며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말과 글

그러나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어느 누구도 언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무언 선언을 했던 공자도 결국 많은 저술을 남깁니다. 사마천에 의하면, 시경, 서경, 역경, 예기와 같은 문헌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공자는 불완전한 인간세계에서 언어와 문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옛글에 ‘말은 뜻을 족하게 하고, 문은 말을 족하게 한다.’고 하였다.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뜻을 알겠는가! 그리고 말에 문이 없다면 멀리 행해지지 못할 것(《춘추좌전》양공25년)”이라고 합니다.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뜻을 알겠는가!”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했던 자공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논어》요왈3)”고도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적 동물은 결국 언어적 동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언어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공자가 생각한 문의 의미

공자는 정교하고 체계적인 문장론을 별도로 설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박한 언어관은 동아시아에서 후대의 문장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공자에게는 3천이나 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공자는 그 많은 제자 중에서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 문학에서는 자유와 자하가 출중했다고 말했습니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도 말과 글에 능통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논어에 재아는 4번, 자공은 36번, 자유는 8번, 자하는 20번 출현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출현하는 대목들을 유심히 보면, 언어와 문학에 출중한 사람들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와 언어와 문학에 대한 공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어라는 말은 지금이나 그때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이란 말은 차이가 있습니다. 문학은 문화학술을 총칭하는 개념입니다. 시서예악 등의 저술이 모두 그 안에 포함되고 그중에서 순수문학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이라는 말도 단순히 ‘글’을 의미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문맥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문화, 문물, 제도를 의미하기도 하고, 예로부터 내려오는 문헌의 글이나, 문채, 문사, 형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공자학단의 교육 -노래하고 대화하기

공자에게는 3천이나 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중국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공자는 당대 최고의 교육자였고 공자의 집단은 일종의 교육공동체이며 교육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공자학단의 교육 방법과 그 철학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논어, 사기, 공자가어와 같은 문헌들을 보면 공자의 교육, 특히 언어교육에서 노래하기와 대화하기가 매우 중요하게 나타납니다. 

공자는 시경을 편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경은 중국 각처의 노래를 수집하여 정리한 책입니다. 공자가 당시에 유행하는 3천편의 시에서 3백여 편을 엄선하여 엮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경을 일종의 ‘노래집’이라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공자는 시를 공부해야 한다고 자주 권합니다. 바쁘게 뜰을 지나가는 아들 백어를 불러서 세워,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논어》계씨13)”고 하고, 또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마치 담벼락에 마주 서있는 것과 같다(《논어》양화17)”고 말하기도 합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도 시를 배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합니다. 그는 노래를 배우면 “뜻을 감발시키며, 정치의 잘잘못을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하며, 정치를 풍자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가까이는 부모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게 한다(《논어》양화9)”고 하면서 그 다양한 효용을 말합니다. 


노래가 정말 이렇게도 크고 다양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에는 악부라는 관청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관청에서 하는 일은 민간의 노래를 수집하여 정리하는 것이었죠. 무엇 때문에 나라에서 굳이 민간의 노래를 수집하고 정리했을까요? 민간의 노래에는 백성들의 희로애락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민요라고 하지요. 위정자들은 민요를 통해서 백성들의 희로애락을 알려고 했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희로애락을 아는 것은 정치의 이해득실을 파악하는 것과 동일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자와 옛 위정자들은 노래와 정치가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란 결국 소통의 기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 중에서도 위정자와 백성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악부의 존재 의의를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소통은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자연과 공감하는 데도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그러한 점을 생각하면 공자가 노래집을 편수하고 노래 공부를 중시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시의 내용을 가지고 제자들과 토론하면서 그 깊은 뜻을 이해하는 제자를 발견하면 함께 시를 논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매우 즐거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자 자신이 시를 노래하며 즐기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공자는 노래와 같이 감성적 소통을 통한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공자는 대화를 통한 교육을 중시했습니다. 대화는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제자가 묻고 스승이 대답하거나 스승이 묻고 제자가 대답하기도 합니다. 이를 문학(問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곧 ‘학문’이라는 말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논어, 공자가어와 같은 문헌들에는 그러한 대화의 양상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습니다. 학문이란 대화의 과정입니다. 이러한 대화의 공부 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학교에서는 이러한 대화가 사라졌습니다. 질문이 없고 일방적인 대답만 있을 뿐입니다.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학교에는 평가만을 위한 획일화된 교육만 남아있습니다. 진정한 학문도 진정한 교육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에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문제에 여러 가지 해답이 있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에 한 가지 해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문제라 하더라도 그 해답은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자의 교육은 요즘처럼 평가를 위해 획일화된 해답을 요구하는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각각의 개성에 맞게 개별적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생활 속에서 면담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공자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가다듬고 자신들의 언어를 가다듬었습니다.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기만의 언어를 정리하는 데 이것보다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공자가 배격한 나쁜 말

공자는 언어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의 오용 가능성에 대하여 매우 걱정하고, 그러한 말을 적극적으로 배격했습니다. 공자는 “신속하게 말하는 자를 쓰지 마시고, 경솔하게 망언하는 자를 쓰지 마시고, 말이 많은 자도 쓰지 말라(《공자가어》문례).”라고 합니다. “신속하게 말하는 자는 탐욕이 있고, 경솔하게 망언하는 자는 혼란을 일으키며, 말이 많은 자는 황당한 짓을 잘하기(《공자가어》문례)”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말을 교묘하게 하고 표정을 꾸미는 사람은 어진 덕이 없다.(《논어》학이3)고도 합니다. 유명한 교언영색을 말합니다. 말이 지나치게 신속하고 경솔하고 많거나 교묘한 것은 무언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교묘한 말은 어진 덕이 없다고 했습니다. 즉 어질지 않은 사람의 말이라는 것입니다. 공자는 진실을 이탈했거나 한계를 벗어난 언어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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