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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 Jun 19. 2023

호기심을 자극한 그의 이름은 노리코

나이를 잊은 그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이름은 노리코. 일본 나고야에서 왔다. 어학원 첫 등교 날, 맨 앞줄에 앉은 그에게 제일 먼저 시선이 갔다. 어깨 위로 가볍게 내려오는 샤기컷의 갈색 머리, 초롱초롱한 눈, 인자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입, 어깨가 풍성한 벌룬 소매의 하늘색 블라우스. 그에게선 왠지 모를 여유와 우아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삼색기 디자인의 핸드폰 케이스에서 그의 프랑스에 대한 열렬한 애정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반은 A1 반으로 레벨이 가장 낮은 초급반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예습을 하고 온 모양이다.


"Comment tu t'appelles?" (이름이 뭐예요?)

"Je m'appelle Noriko" (제 이름은 노리코입니다.)


이 정도의 자기소개는 꽤 연습해 왔다는 듯이 능숙하게 구사했다.



"Tu as quel âge?" (몇 살인가요?)


둥글게 둘러앉아 각자 나이를 숫자로 말하는 연습을 했다. 그는 '힝... 꼭 말해야 해?'라는 표정을 지으며, 살짝 부끄러워했다.


"J'ai soixante-xxxx ans." (저는 예순 XX살입니다.)


그는 우리 반의 연장자였고,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는 그에게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대신에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한 발짝씩 다가가기 위한 질문으로 나의 경의를 표했다.



"Tu habites où au Japon?" (일본 어디에 살아요?)

실은 과거형으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과거형을 배우지 않았다.


"Quelle est ta profession?" (직업이 뭐예요?)


"Until, quand, Tu habites à Paris?" (언제까지, 파리에 지내요?)

어휘력이 점점 고갈되기 시작했다. 말할 때 점점 쉼표가 많아진다.



쉬는 시간마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딸이 있었고, 딸은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 한국어를 배우고 있단다. 핸드폰에서 딸 사진을 꺼내 자랑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육십 대 아주머니였다. 남편이 있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어학원은 5월까지만 다니고, 여러 나라를 여행한 뒤, 6월 말에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예상보다 짧은 기간에 나는 아쉬운 내색을 보였다.






"J'aime bien, la cuisine, coréenne! Kimbap!" (저 좋아해요, 한국 음식! 김밥!)

"C'est vrai? J'aime beaucoup, la cuisine japonaise! Sushi, Soba, Ramen..." (정말요? 저도 좋아해요, 일본 음식! 스시, 소바, 라멘...)


외국인과 친해질 때는 서로의 나라에 대한 관심을 최대한 표현하기, 특히 음식 이야기가 적격이다. 나는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을 알려 주었다. 야키소바 위의 노른자를 비벼 먹었던 경험도 말해 주었다. 실제로 나는 외국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편이라, 어느 나라 사람에게 건 '나 그거 좋아해!', '와, 먹어 보고 싶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럼 곧, 하이 파이브와 함께 '이야~ 너 먹을 줄 아는구나?' 하며 기특해하는 반응을 얻기도 한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 음식은 어떤 재료로 만드는지, 본인은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지 등으로 흘러가며 어색한 공백을 조금씩 채워 간다.






"Sali, viens, chez moi!" (살리, 놀러 와요, 우리 집에!)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기 집에 놀러 오라며 나를 초대해 주었다. 오코노미야키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역시 나는 "진짜 좋아해요, 오코노미야키!"라며 화답했다.




노리코의 집에 놀러 가는 날, 같은 반 일본인 친구들인 나미, 사토시와 함께 과일 한 봉지를 사 들고 갔다. 그의 집에는 친구 미유키도 함께 있었다. 미유키는 "안녕하세요~ 한국 너무 좋아해요!"라며, 열띤 한국어로 나를 격하게 반겨 주었다. 약 3주 만에 다시 만난 노리코는 그동안 미유키와 함께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노리코가 정성스럽게 차린 식탁 위에서 그들의 여행 사진을 구경하고, 각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앞으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리코는 일본에 돌아가면 다시 일을 하고, 여행을 다닐 거라고 했다. 미유키는 부자라서 평생 일을 안 한다는데, 어느 정도 사실을 기반으로 한 장난 같았다. 아무튼, 박보검을 좋아해서 셀린느 옷을 사 입으며, 나보다 한국 연예인을 더 많이 아는, 아주 흥 많고 해맑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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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이렇게 친구처럼 대화를 해본 적이 있던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어 본 중년의 사람들은 회사 대표, 부장, 혹은 엄마 아빠의 친구들 정도가 있겠다. 그때마다 속으로 '제발 남자친구 있냐고 질문만 하지 마라. 설마 요즘 시대에 결혼 언제 하냐는 말은 안 하겠지...?'생각하며 얼른 자리를 피할 생각만 했지, 서로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던 적은 없었다.



국경의 차이 혹은 언어의 차이가 세대 간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든 걸까? 우리 사이에는 물려주거나 이해를 강요할 무언가가 하나도 없었고, 순수한 호기심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유학 생활을 격려해 주는 그의 응원, 짧은 여행 기간 짬을 내서 언어를 배우러 온 그의 열정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있었다.






노리코는 오코노미야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그의 열정만큼 두툼했던 오코노미야키를 2장이나 먹은 덕분에 아주 배부른 하루였다. 그리고 나는 나고야의 오코노미야키 맛집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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