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파리 번영의 역사
중세 이후 파리는 몇 세기 동안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나폴레옹 몰락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낭만주의 시대, 파리 개조 사업을 통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19세기 중후반 근대화 시대. 그리고 벨에포크에서 1차 세계대전을 거쳐 재즈시대로 이어지는 20세기 초. 파리는 이렇게 거대한 물살을 거치며, 문화예술이 태동하는 뜨거운 심장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쁘띠 팔레 (Petit Palais)에서 열리고 있는 근현대 파리 <Le Paris de la modernité> 전은 가장 번영했던 20세기 초 파리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처음으로, 모든 산업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적인 혁신과 성장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패션, 영화, 사진, 시, 조각, 그림, 디자인, 춤, 음악, 소설, 장식미술, 건축 등 창작의 열기가 뜨겁게 끓어올랐던 파리를 톺아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1914년에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암흑기도 존재했습니다. 전쟁 이후, 파리는 다시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여 자유를 갈망하는 도시가 되었지요.
벨 에포크는 번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의미로, 말 그대로 ‘그때 참 좋았지’라고 회상하는 황금기입니다. 우디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남자주인공 길과 아드리아나가 함께 타임슬립했던 시기이기도 하죠. 통상적으로 벨에포크는 1880년부터 1914년까지를 일컫습니다.
19세기말에는 몽마르트르가 예술가들의 성지였습니다. 프랑스의 다른 지역을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의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저렴한 몽마르트르의 아틀리에로 모여들었습니다. ‘Le Bateau Lavoir’라는 아틀리에에서는 피카소를 주축으로 예술가들이 모여 담론을 나누는 모임이 열리기도 했죠. 그러나 몽마르트르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 없었어요. 과도하게 오르는 부동산과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젊은 예술가들의 중심은 센강 아래에 위치한 몽파르나스로 점차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Le dôme, La Rotonde, La Closerie des Lilas 등의 카페가 예술가들이 자주 모였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몽파르나스는 예술가들로 활기가 넘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파리 살롱은 20세기 초 다양한 현대 미술 사조의 새로운 물살을 일으켰던 예술사적 유산입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계 흐름을 대중에게 전달하며 확장시키는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했죠. 입체파(Cubisme), 야수파(Fauvisme), 미래파(Futurisme)도 살롱을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각 사조별 대표적인 작품 하나씩을 보여드릴게요.
: 입체주의 미술작품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을 위해 연습했던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피카소의 작품세계에서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작품이죠. 큐비즘의 본격적인 시작을 연 작품이며, 전통 서양 미술과의 결별이기도 합니다. 이 초상화는 이목구비가 과하게 확대되어 있으며, 단순하고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낯선 표현기법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원시미술을 연상하게 하여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20세기 초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 등 많은 유럽 예술가들이 아프리카 미술에 강한 신비로움과 생명력을 느끼며, 독특한 조형세계를 전개하는 데에 큰 모티브를 얻었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죠.
: 야수주의 미술작품
1905년 가을 살롱에서 앙리 루소(Henri Rousseau)는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Le lion ayant faim se jette sur l'antilope)’을 공개했습니다. 원시적인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죠. 공개 당시에는 ‘무질서한 부조화’라며 스캔들을 일으켰는데요. 예술사적으로 충격은 언제나 새로운 흐름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죠. 작품 속 사자가 결정적인 모티브가 되어 바로 야수파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됩니다. 두 해 뒤, ‘뱀을 부리는 주술사’를 발표합니다. 원시 자연에서 피리를 연주하는 이브의 모습이 문명화된 현대사회와는 아주 먼 환상 속 세계처럼 보입니다.
: 미래주의 미술작품
미래파는 입체파와 야수파에 비해 비교적 낯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약 5년 정도로 아주 짧게 일어났던 운동이기 때문이죠. 산업혁명 이후 점점 발달하는 기술 문명에 고무되어, 속도와 소음, 힘, 움직임을 찬양하는 사조였습니다. ‘팡팡댄스’는 미래파를 표방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입니다. 파리의 한 카페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무희와 이를 둘러싼 군중들이 뒤섞인 모습이 상당히 생동감 있고 역동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이 기계 문명의 고무될 만큼 이 시기는 새로운 기술과 혁신의 태동으로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만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교통수단의 등장으로 우리는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높이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운송수단 전시회들이 매년 열렸는데요. 1901년 그랑팔레에서 국제 자동차, 자전거 및 스포츠 박람회를 시작으로 1909년 국제 항공 기계 전시회 등이 열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최초의 자동차, 비행기, 열기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문명과 예술로 화려하게 꽃을 피우던 파리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멈추게 됩니다. 모든 문화생활의 중단되었고, 시민들이 떠나 파리는 텅 빈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2년 후 점차 극장 공연과 전시가 재개되었고, 전쟁을 기점으로 이전과는 또 다른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파리는 전쟁 후 회복된 평화를 축하하는 축제의 장이 되었고, 훨씬 자유롭고 격정적인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칵테일과 함께 재즈의 흐드러진 리듬에 맞춰 반짝이는 스팽글과 깃털 드레스, 상상이 되시나요? 마치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그려진 파티의 한 장면과도 같죠. 자유를 갈망하는 미국의 시인과 예술가들이 재즈의 유행과 함께 파리에 오기도 했지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재즈음악이 유행했던 이 시기를 재즈시대라고도 합니다. 바로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를 만났던 바로 그때이지요! 이 시절 밤의 유희는 평화를 축하하는 파티이기도 했지만,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잊으려는 노력이기도 했습니다.
파리는 축제다
_어니스트 헤밍웨이
"당신이 젊었을 때 파리에서 살 수 있는 운이 있다면, 파리는 평생 어딜 가든 당신 곁에 머물 것입니다. 파리는 축제이기 때문입니다.
Si vous avez la chance d'avoir vécu jeune homme à Paris, où que vous alliez pour le restant de votre vie, cela ne vous quitte pas, car paris est une fête."
_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저는 이 시기를 정말 사랑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제 인생소설이기도 하고요. "슬플 때 우린 춤을 춰”라는 문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이거든요. 오직 오늘 밤을 위해 사는 듯한 현대인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공허함과 슬픔. 예술은 슬픔을 이겨내며 탄생할 때 더 화려하니까요.
쁘띠 팔레는 1차 세계대전 동안 손상된 예술 작품을 전시하였고, 1925년에는 아르데코국제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예술사적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위에 소개한 작품들 외에도 패션, 공연 및 음악, 운송수단, 건축 등의 다방면에서 번성했던 파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코르셋 없는 드레스로 여성들에게 해방을 선사한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를 비롯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브랜드인 랑방 (Jeanne Lanvin), 까르띠에(Cartier)의 100년 전 디자인들 덕분에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헤밍웨이가 말했던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제게 젊은 날 파리는 마음속 영원한 도시가 되겠지요. 물론, 21세기의 파리와 그때의 파리는 많이 다르지만요. 아무래도 20세기 초의 파리를 여행하기 위해서, 21세기의 파리에 온 것 같습니다. 모든 예술이 격정적으로 피어오르며 가장 생동했던 시기, 저는 경험해 본 적도 없는데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파리는 곳곳에 그때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품고 있습니다. 파리에는 여전히 낭만이 가득하고, 그렇기에 우리는 가슴속에 언제나 영원한 파리라는 꿈을 꾸며 살고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