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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 Jun 11. 2024

한국 추상미술 1세대 이성자의 지구 저편으로 여정

아리도록 밝게 빛나는 이성자의 은하수를 기억하며

이성자, 9월의 도시, 2008년


때때로 해석보다는 말 없는 감상이 먼저여도 좋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감상자가 무엇을 느끼든 상관없이 감상 자체로 좋은 그런 그림들이죠. 이성자 화백의 그림이 그렇습니다. 솜사탕처럼 코끝을 간지럽히고, 별사탕처럼 달콤한 맛이 느껴지듯 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의 작품이 누구보다도 처절한 그리움과 한으로 수놓아진 별들이었음을 깨닫고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합니다.


2024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성자의 ≪지구 저편으로(Towards the Antipodes)≫ 전시가 한창입니다. 이성자는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일찍이 프랑스 화단에서 인정받은 작가입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인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와도 꼭 닮은 작가의 지구 저편으로의 여정을 톺아보고자 합니다.






고독과 그리움으로
수놓은 하늘


(좌)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길 1월 N.4 90”, 1990,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우) 김환기, “산월”, 1958, 국립현대미술관


작가는 한국전쟁, 이혼 그리고 자식들과의 생이별을 겪은 후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약 60년간 고독과 그리움이 알알이 박힌 하늘을 그렸습니다. 과거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항로가 변경되기 전에는 알래스카 극지를 거쳐 비행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비행기 창문 밖으로 내려다본 빙하를 모티브로 하여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이라는 그림으로 자신의 기나긴 행적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극지방의 차갑고 하얀 빙산에서 그의 마음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을 고국의 산이 겹쳐 보이는 듯합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익히 알려진 김환기 화백이 파리 시기에 그린 ‘산월’ 또한 떠오르게 합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푸른 하늘에 산과 달을 그린 김환기처럼, 이성자 역시 고국을 향한 깊은 애정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1950년 파리에서는 김환기, 이응노 등의 한국 추상화가들이 동양의 전통 기법과 서양 현대미술을 결합하며 한국 추상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자는 그들보다 먼저 파리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했던 1세대 화가입니다. 그러나 비전공자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국내 미술계에서는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프랑스 평론가들 사이에서 더 일찍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서양화법을 사용하면서도 그림 속에는 동양철학을 담아낸 그녀의 작품 세계는 프랑스 화단에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1958년 한국화가 최초로 파리 유명 화랑에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지요.




‘오작교’는 작가의 추상미술이 본격화되면서 동양적 유산과 서양화 기법이 결합한 초기 대표작입니다. 그리움 하나에 점 하나를 찍으며, 이 다리 위에서 자식들과 손잡고 마주하는 순간을 갈망했을 작가의 모습이 아롱거립니다. 또한,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되지 않은 초기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아서 그럴까요? 열 십자 모양의 창틀 사이로 보이는 빼곡한 별들과 초승달이 어쩐지 한겨울의 밤하늘을 더욱 시리게 밝히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주는 하나이자 무한하며
동시에 없다


이성자, “천왕성의 도시 4월 2일”, 2007, 캔버스에 아크릴, 개인소장


맞닿을 듯 말듯 쪼개진 원형과 하늘 위를 유영하는 듯한 기하학적 도형들은 그의 작품에서 줄곧 등장합니다. 음양과 같이 상반된 두 개의 것이 만나 비로소 완전한 합을 창조하려는 작가의 꾸준한 시도입니다. 그의 삶 자체도 분열 속에서 조화를 찾는 여정이었습니다. 결혼과 이혼, 자녀의 탄생과 이별, 그리고 타지에서 이방인의 존재로 살아가는 삶 또한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 기하학 도형들은 한국적 정서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단청의 오방색과 색동저고리 등 한국의 색을 입혔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빛깔을 묻는 질문에 단순히 분홍빛이 아니라 ‘한국의 진달래 빛’이라고 답할 만큼, 작가가 손끝으로 발현시키는 모든 빛의 원천은 여전히 오래전에 떠난 고향임을 알 수 있지요.





문화예술 커뮤니티 안티에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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