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리 Jul 01. 2024

감정 빼고 담백하게 회고하기 feat. 노션 KPT

2024년 인생 실험 상반기 회고


어라, 벌써 새해? 어라, 벌써 봄? 어라? 어? 어? 어이쿠야. 올해 반절이 다 가버렸네. 속절없는 시간 앞에서 더 깊게 각인되는 인생의 유한함이 무섭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순 없지만, 돌아볼 수는 있다. 몇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회고를 하고 있다. 회고의 힘을 더 강력하다. 활동의 제약이 없어지는 만큼 일을 막 벌이게 되고, 으레 마무리가 미흡한 일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벌인 일들을 다시 주섬주섬 수집해서 정리를 해주어야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다시 달릴 수 있다.


인생은 실험이다. 나는 실험주체이자 대상, 프랑스라는 새로운 환경, 외국어라는 새로운 조건, 홀로서기라는 새로운 임무, 그리고 ‘나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라는 가설을 세웠었다.


그렇게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자’는 욕망을 품고 작년에 파리에 왔다. 그리고 올초 ‘다른 예술가의 결과물이 나에게는 새로운 창작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반기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 실험 중간 점검을 해보자.



지난 1분기에 문화기획자 해리님의 회고 워크숍에서 배웠던 회고 프로세스를 적용해 보았다. 


[회고 프로세스]

☞ STEP 1.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나의 '일' 되짚어보기

☞ STEP 2. 나 뭐했지? 했던 일 나열하기 (감정 빼고 사실만 적기) 
☞ STEP 3. 커넥팅 닷.
주제별로 묶고, 점검하기 
☞ STEP 4. KPT 기법으로 하반기 계획하기








회고 STEP 1.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회고에 앞서 다이어리 첫 장에 적어두었던 초심을 다시 꺼내보자.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했었는지. 중요한 건, 무언가 되려 하지 말고, 무언가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스레드에는 ‘파리에서 빵 파는 디자이너’라고 적긴 했다만. 물론, 이 문장 또한 내 정체성 중 하나이다. 그러나 부족하다. 빵 파는 디자이너가 내 최종 목적지는 아닐 테니. 좀 있어 보이는 말로 ‘아트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적기도 한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해 보고자 파리에 왔고, 전시회나 예술가, 문화예술 스팟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안티에그’라는 문화예술 커뮤니티에 에디터로 글을 쓰고, 유튜브도 시작했다. 그 외에 빵집 알바 에세이도 쓰고, 그래픽 디자인도 하고, 인스타 콘텐츠도 만들고 있고… 참 구구절절 사연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것은 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했던 대다수의 일들은 ‘다른 예술가의 결과물이 나에게는 새로운 창작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라는 가설 아래 실행된 실험들이다.




회고 STEP 2 & 3.

나 뭐 했지? 

✒︎ 커넥팅 닷


크고 작은 실험들을 나열한 후, 큼직큼직한 주제로 묶어본다. 흩어져 있는 점들 같지만 연결해 보면 나만의 별자리가 만들어진다.


나의 14가지 실험들은 크게 3가지 주제로 묶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루틴 만들기
두 번째, 콘텐츠 크리에이터 되기
세 번째, 생계형 디자인과 발전형 디자인 사이 외줄 타기


Tip. 노션에서 보드나 표 템플릿을 활용하자! 일단 한 일들을 낱장 카드에 적은 후, 공통점이 있는 것들끼리 분류한다. 그리고 각각의 목표, 배운 점, 아쉬운 점들을 기록해 본다.

노션 보드 Ver.
노션 표 ver.


감정을 빼고 담백하게 사실만 적어보기를 추천한다. 이중 몇 가지 실험 내용을 공유해 보겠다.



첫 번째 주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루틴 만들기


적응한 것 같다가도 금세 낯설고 서러워지는 게 해외생활이다. 쉽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과 마음 건강이 더 절실해진다. 언어에는 요령이 없다. DELF B2까지 갈 길이 멀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거북이걸음으로 다가가는 중이다. 


✦ 실험 1: 빵집 아르바이트


✔︎ 실험 목표   

프랑스 현지인들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가까이에서 관찰한다.

일상 회화 실력을 향상한다.


✔︎ 중간 점검

어느덧 7개월 차. 

배운 점: 빵집 에세이를 쓸 수 있을 만큼 에피소드가 쌓였다. 사소한 일상도 에피소드가 될 수 있다.

아쉬운 점: 입과 귀가 트이는 데에 한계점에 도달한 것 같다. 반복적인 대화는 익숙한데, 100명 중에 1~2명 꼴로 하는 말이나 엄청 말이 많고 빠른 사람들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 



두 번째 주제.

콘텐츠 크리에이터 되기


‘나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라는 가설에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실험들이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잘 다듬어서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모은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마저 누군가에게 소소한 영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 실험 1: 안티에그 에디터


✔︎ 실험 목표   

프랑스 배경과 예술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을 더해서 나의 언어로 글을 쓴다

예술에 대한 권위의식이 없는 글을 쓴다


✔︎ 중간 점검

파트너 에디터로 전환 성공했다. 아트 전문 에디터로 포지션을 잡았다. 번외로, 내 아티클들이 조회수 상위권에 있다. 얏호! “애교 권하는 사회” 조회수 7만 회 이상 CTR 60%, “지극히 개인적인 마크 로스코 작품 감상법” 4만 6천 회 이상 CTR 154%.  

배운 점 : 개인적 시각과 해석은 글의 희소성을 만든다. 좋은 글은 좋은 기획에서 나온다.

아쉬운 점 : 기획만큼 중요한 게 퇴고인데, 퇴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 실험 2: 유튜브 채널 개설


✔︎ 실험 목표   

프랑스 문화예술 가이드라는 페르소나를 만든다

오디언스를 구축한다

✔︎ 중간 점검

4개월 차 롱폼 영상 7개, 구독자 578명 달성. 최고 조회수 1만 5천 회 기록. 먹히는 콘텐츠 파악 중이다.

배운 점 : 주제의 시의성, 예술가의 인지도가 알고리즘 노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만의 해석과 감상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아쉬운 점 : 프리미어 편집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업로드 주기가 길고 불규칙하다. 영상 구도 잡는 게 어렵다.


✦ 실험 3: 스레드 프랑스 빵집 에세이


✔︎ 실험 목표   

오디언스를 구축한다

롱폼을 염두하며 숏폼을 제작한다

짧고 가벼운 이야기 속에 나만의 인사이트를 담는다


✔︎ 중간 점검

1개월 차 팔로워 830명 달성. 최고 조회수 12만 회 기록. 최다 좋아요 567개 획득.   

배운 점: 컨셉이 심플하면 오디언스가 빠르게 모인다. 롱폼으로 완성하기 전에 독자의 반응, 글의 미흡한 부분을 캐치할 수 있다.

아쉬운 점: 1일 1쓰도 벅차다. 스레드도 결국 SNS라 다른 사람들의 삶과 나를 저울질하게 된다.



세 번째 주제.

생계형 디자인과 발전형 디자인 사이 외줄 타기


내가 제일 오랫동안 해왔고, 제일 잘하는 일도 디자인이다. 단순 디자이너에서 벗어나기 위해 콘텐츠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미리캔버스와 캔바, 상세 외주 작업 등 단기수익을 위한 작업도 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일들은 아니다. 브랜딩 역량을 키우기 위해 그룹 스터디를 시작했다.


✦ 실험 1: 브랜딩 스터디


✔︎ 실험 목표   

파리 카페 및 브랜딩 공간 도장 깨기

브랜드 분석과 리디자인으로 포트폴리오 아카이빙

디자이너 정체성 다시 만들기

파리 디자이너 및 예술가들과 네트워킹


✔︎ 중간 점검

공부가 공부로만 끝나면 안 된다.   

배운 점: 브랜드 분석과 리디자인 과정을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다. 해외 공간이라는 메리트가 있다.

아쉬운 점: 대학생 수준의 과제처럼 되지 않으려면 더 체계적인 분석과 전문적인 시각으로 디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뽑아내야 한다. 나는 프로니까!




회고 STEP 4.

KPT 회고법


지난 일들을 분류하고 점검하는 이유는 결국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잘 맞이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KPT 기법이 가장 적용하기 쉬운 회고법이라고 생각한다.


✦ KEEP 잘했고, 앞으로도 계속 잘해보자.
✦ PROBLEM 이건 아니잖아. 분발하자, 응?
✦ TRY 어떻게 잘할 건데? 대안 없는 비판은 무책임하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자.


Tip. 역시 노션을 활용하자. 복잡한 생각들을 직관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할 수 있다.


✦ KEEP

오디언스 구축하기


크리에이터로 살아남기 위해서 오디언스 구축은 필수이다. 양질의 콘텐츠로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콘텐츠 방식에 따라 숏폼과 롱폼으로 나누었다.


숏폼 채널 <스레드>

‘파리에서 빵 파는 디자이너’라는 캐릭터가 직관적이고 유니크해서 킵. 빵집에서 현지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문화와 생활양식, 그리고 대화하며 느낀 한국과는 사뭇 다른 사고방식들을 짧고 가볍게 적어본다. 추가로 디자인 스터디를 하며 관찰한 파리 카페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로 디자이너의 인사이트를 가볍게 전달해볼까 한다. 궁극적으로 스레드는 롱폼을 위한 숏폼 채널이다. 


롱폼 채널 <유튜브>

‘프랑스 문화예술 가이드’라는 페르소나를 공고히 구축한다. 나만의 해석과 감상을 곁들인 전시회 리뷰와 작가 소개를 지속한다. 인사이트의 깊이와 희소성, 영상 완성도 측면에서 ‘나의 시선’, ‘원의 독백’ 채널을 참고하자.


롱폼 채널 <안티에그>

아트 전문 에디터로서 전문성을 기른다. 주제 선정과 기획 단계에서 챗GPT를 활용해 브레인스토밍과 자료의 폭을 넓히자. 퇴고 기간은 3일 이상 확보해서 글 완성도를 높이자.



✦ PROBLEM

No Multi-Source, Multi-Use


내 안에 욕망이 너무 많아. 모든 욕망에 친절히 귀 기울여주다 보니 정체성이 늘 불분명하다. 멀티 소스, 멀티 유즈로 시간에 쫓기고, 성과 없이 바쁘고, 번아웃 오기 딱 좋은 조건이다.

더불어 퍼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오디언스를 모으는 건 좋은데, 그 다음은...? 지속가능한 가치 사다리가 없다. 빵집 아르바이트, 인스타그램, 드로잉 등 목표 미달이거나 장기 비전이 그려지지 않는 실험들은 과감히 내려놓는다.



✦ TRY

콘텐츠 수익화


크리에이터의 생존 제1법칙 
콘텐츠로 오디언스를 모아라.
그리고 상품을 판매하라.


개인적으로 인사이트를 많이 받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강조하고 있는 포인트가 거의 동일하다. 벤치마킹할 크리에이터들의 사례를 참고하며 나의 하반기 TRY를 적어본다.


글쓰기 기반의 가치 사다리 구축 ex. 조쉬

작년부터 ‘조쉬의 프로덕트 레터’라는 뉴스레터를 통해 상당한 자극을 받고 있었던 분이다. 돈 받아도 될 정도의 고급 정보인 해외 자료를 번역하고 하나의 주제로 솔팅해서 전달해 주는 능력이 뛰어나다. 결국 크리에이터의 본질은 양질의 콘텐츠다. 

가치 사다리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해 준 분이기도 하다. ‘링크드인 글쓰기 (무료 콘텐츠) → 뉴스레터 글쓰기 → 코호트 → 월멤버십’이라는 가치사다리를 구현하고 있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프리워커의 삶을 위해 시스템, 레버리지 밑줄 쫙! 하, 머리로는 알겠는데 새로 배워야 할 게 너무 많고 막막해서 엄두가 잘 안 난다.



디자인 실무 팁과 인사이트 콘텐츠 ex. MERL멜

인스타그램 팔로워 6만의 디자이너이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디자인 실무 팁과 인사이트가 담긴 릴스를 만든다. 주어진 환경이나 역량이 제일 비슷한 사람이라서 벤치마킹하기 용이하다. 

AI가 로고디자인도 다 해주는 세상이 되었지만, 사람이 등장해서 디자인 의도와 과정을 설명해 주는 콘텐츠가 인간적이라서 (그리고 예쁘셔서) 강력한 후킹 포인트로 작용하는 것 같다. 예쁜 건 둘째 치고, 릴스 편집이 심플하지만 기승전결이 있고, 밸런스가 좋다. 중요한 부분 강조, 긴 설명은 빨리 감기, 줌인 줌아웃 등. 

유학 생활에 대한 일상을 간간이 보여주면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팔로워들이 역으로 디자인을 요청하기도 하더라.








1분기, 상반기, 3분기, 그리고 한 해 마무리. 이렇게 1년에 총 4번씩 회고를 해보자. 성과와 부족한 점을 점검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내 삶을 이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존버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칭찬을 잊지 않는다. 프랑스에 올 때 초심은 '중꺾마'였는데, 살면서 자연스레 바뀌었다. 중꺾그마!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야! 다들 그렇지? 



작가의 이전글 삶의 발명 : 가슴에 별처럼 박힌 이야기를 따라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