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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미 Oct 10. 2019

나무 옷을 왜 벗겨요?

과학이 구겨놓기 전의 세상

가을이다. 때때로 불쾌한 여름의 무더운 날들이 가고 가을바람의 선선한 촉감 기분 좋고 현실감 떨어지게 맑은 하늘괜히 설레는 가을이 왔다.  계절은 풍요로우면서도 쓸쓸. 마트 식재료 코너를 채운 맛있는 가을 빛깔의 과일과  인스타그램에 앞 다투어 올라오는 나들이 길에  비주얼 예술인 음식들 하늘 사진이 눈을 호강하게 하는 반면, 우리 집 거실 한편에 모여 있는 내 반려식물의 잎사귀 노랗게 빨갛게 변하 잎을 떨굴 준비를 하는 바람에 마음이 적지 않게 시린 그런 계절이다. 


알록달록 나무의 새 옷

나는 식물들의 싱그러운 초록함이 참 좋다. 지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식물을 안 죽이고 오래 키우냐고 하지만 비결별다를 게 없다. 을 다한 식물 빈자리는  식물을 들여 냉큼 채고, 색이 변한 잎은 발견하는 즉시 제거해 늘 함을 유지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좀 애정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모든 게 가능하기 위해 매일 눈길을 주는 것. 그것이 비결이다.


2017년 가을도 나는 거실 창가에 있는 화분들 사이에 파 묻혀 마르고 색이 변한 나뭇잎들을 가위잘라내 있었다. 그런 나를 수도 없이 봐왔던 아이였지만, 그날은 이상한 듯 물었다.


"엄마... 나무 옷 벗기는 거예요?"

"응?"

"가을이 되면 나무들이 알록달록 새 옷을 입는데요"

"유치원에서 가을 배웠구나~"

"네. 근데 왜 나무 옷을 벗기고 있어요?"

"..."


5세. 유치원 담임선생님이 어떤 문장으로 아이들에게 가을을 소개했는지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왠지 알 거 같았다. 나도 처음 가을을 배울 때는 가을의 화려한 변신에 대 문학적인 접근으로 '알록달록 물이 든다'라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초등 고학년 때였나... 본격적으로 과학을 배우면서 그 나무의 화려한 변신의 실상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나무가 나뭇과 겨울을 함께 보낼 자신이 없어서 나뭇잎을 떨구 영양공급을 중단한 탓에 엽록소가 파괴되어 색이 변한 거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속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응? 이게 뭐야!' 나무의 아름다운 변신봄에 꽃놀이가듯 가을에 단풍놀이를 갈 수 있게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을 준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현상이 '중단''파괴'라는 과격한 단어로 설명되는, 함께한 누군가를 포기하고 버리는 이야기 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과학이 하는 일이 나에게는 주로 이런 식이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려줌과 동시에 예쁜 시각으로 저장해 둔 나만의 사진 하나를 구겨놓는 그런 일. 쓸데없이 정직하고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의 얄궂은 과학 녀석. 비록 아이가 '엽록소 파괴'라는 실상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5세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혼란스러운 광경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엄마는 나무가 예쁘게 입은 새 옷을 벗기고 있는 것일까?


"해님이! 뜨겁게 해서 사람들을 죽인데요!"


사실 그 날의 나무 옷 사건이 있기 몇 달 전 유사 흡사한 일이 있었다.  여름의 어느 날, 퇴근한 나를 맞이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님에 대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듯이 다급하게 말했다. "해님이 뜨겁게 해서 사람들을 죽인데요" 늘 그렇듯 사랑스러움에 미소가 먼저 반응하지만, 내 앞에 선 이 작은 존재의 진지함에 웃을 수는 없는 일. 아이의 톤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진지함으로 되 물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배운 거야?

"네... 해님이 뜨겁게 해서 사람들이 죽는데요"

"해님의 따뜻한 열은 우리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는 고마운 거야. 근데 지금이 한 여름이기 때문에 해님이 좋다고 너무 밖에 오래 나가 있으면 우리 몸이 너무 힘들어질 수 있으니 물도 많이 마시고 모자도 쓰고 다녀야 한다는 걸 알려주신 거야. 그걸 모르고 해님 아래 너무 오래 있던 사람 중에 죽은 사람도 있어서 꼭 잊지 말라고 알려준 거야. 근데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하루 종일 해님 아래 나가 있지 않잖아"


때는 한 여름이었고 아무래도 유치원에서 방학을 앞두고 여름철 건강 교육 차원으로 일사병에 대해 알려 준 모양이다. 영유아 동화에 해님은 단골 캐릭터다. 동화 속 해님은 늘 우리를 도와주고 지켜주는 존재이고, 늘 방긋방긋 웃는 캐릭터로 동요에 등장한다. 가끔 달님이 심술꾸러기 캐릭터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밝은 낮을 담당하는 해님은 어떤 동화에서도 늘 긍정적인 역할을  유지해왔다. 그런 해님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니! 아이 입장에서는 과학의 역습이 아닐 수 없다. 해님이 사람을 죽인데요 라고 말하던 표정과 말투에서는 믿었던 해님에 대한 배신감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껴졌었다. 방긋방긋 고마운 해님이라더니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하고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었다더니 마른 잎이라며 떼어 내 버리는, 어른들이 알려주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대면한 5세 아이의 불안한 눈 빛이 무척 귀여워 미안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아이의 눈에는 내가 동화로 따지면 나무의 새 옷이 질투 나서 마구 망치고 있는 심술꾸러기 정도 되는 듯한 모양이었다. 나를 석연치 않게 바라보는 아이 앞에서 나쁜 일 하다 걸린 것 마냥 쑥스럽게 웃으며 주섬주섬 정리를 했다. 내가 떼어낸 잎사귀들을 내려다보니 내 눈에도 꽤 예뻐서 '엄마가 떼어낸 것들은 완전히 마른 것들이라서 단풍 물든 것과는 다른 거야'라고 둘러댈 수도 없었기에 그냥 슬쩍 넘어가기로 했다. 과학의 습격을 당할 날이 머지않았는데 굳이 내가 먼저 엽록소 파괴라는 실상에 대해 알려주고 싶지 않았고, 나는 아이가 조금 더 오래오래 가을이 되면 나무들이 알록달록 예쁜 새 옷을 입는다고 각하면 좋겠다.

2017년 9월 24일 그날, 엄마가 벗긴 나무들의 새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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