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고 있다.
2018년 말 갑작스레 온 가족에게 생소한 곳, 성남으로 이사 온 뒤 어느새 5년이 흘렀다. 본격적으로 사회인으로서 보낸 5년이었기에 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짧게 지나갔지만, 그래도 생소한 이 집 방구석 군데군데 시간의 흔적이 남았다. 막 이사했을 땐 침대 머리맡을 어느 쪽에 두어야 하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모든 가구가 원래 그곳이 자기들의 자리이었던 것 마냥 차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가구들에게는 야속하게도 나는, 우리 가족은 몇 달이 지나면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또다시 이동할 계획이다. 이사 갈 집의 크기는 지금과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왜인지 모르게 새집은 지금의 짐들이 가득 들어차기에 부족한 느낌이 든다. 5년간 헌 집 여기저기를 빼곡히 새로 산 물건들로 채워 놓은 덕이겠지. 시간이 남긴 흔적들.
이사를 위해 짐을 줄여야 한다. 물건이든 옷가지든 내 삶에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기에 이사만큼 좋은 계기는 없다. 인터넷에 짐을 줄이는 여러 노하우를 찾아본다. 좋은 옷이라도 2~3년 내 한 번도 입지 않았다면 버려야 하며, 지금은 쓰지 않지만 언젠가는 꼬옥 쓸 거라며 쟁여두었던 운동 기구 또한 과감히 처분해야 한다. 당장 쓸 기회는 없지만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꼭 필요가 있을 거로 생각했던 아이디어 제품들도 미련을 버리고 처분하는 것이 좋겠다. 그저 시세보다 많이 싸게 살 기회가 생겨 이건 무조건 사야해라고 생각하며 구매했던 비싼 의자, 콘솔 게임기도 이참에 정리해 보자. 하나하나 물건들을 살펴보며 버릴 것과 판매할 것으로 나누어 추려내어 본다.
버리는 것도 판매하는 것도 꽤 많은 진통이 따르는 일이다. 한 번도 입고 나가지 못한 옷을 버리는 행위는 과거의 선택을 정면으로 부정해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그저 유행이 바뀌어 언젠가는 그 옷을 입을 날이 오지 않겠냐 막연히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옷장 속에 그 옷을 간직해 두기엔 내 방도 내 삶도 충분히 비좁다. 판매 또한 어려움이 생기긴 마찬가지이다. 우습게도 물건과도 정이 들곤 하는 게 사람이기에, 필요가 없어진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손을 떼지 못할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이왕 팔 거라면 제값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잘 팔리지 않을 가격임을 알면서도 높은 가격에 매물을 등록해 두기도 한다. 결국 물건에도 시간이 묻혀지기에 애석한 마음에 이리저리 이 물건을 버려서도 팔아서도 안 될 이유를 궁리해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국 이삿날은 다가오고 있고 그에 맞추어 나는 짐을 줄여내어야만 한다. 방은 점차 좁아질 것이며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새로 채울 수 없으니까. 하루하루 방을 둘러보며 비워낼 것들을 찾아본다. 물건이 가득 찬 이 방을 하나둘씩 게워 내고 나면 언젠가는 좁디좁은 내 방에도 공백이 생겨날 것이고, 그 공백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자리하게 될 터이니. 새집, 새집에서의 삶을 그렇게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5년 전 이삿날 그랬듯 또다시 침대 머리맡의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만. 또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자연스러워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