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합계 출산율 0.7명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는 뉴스 기사가 무색하게도, 요즈음 내 주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아가들이 새로 태어난다. 생각해 보면 몇 해 전 시도 때도 없이 결혼식에 불려 다녔으니, 몇 해가 지나 아이 소식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우습게도 4-5년 전쯤에는 쏟아지는 주변의 죽음들 앞에서 삶이라는 건 꽤나 하릴없구나하고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와 반대로 삶이라는 건 이렇게 별일 아닌 듯 시작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내 존재도 그들의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과 노력의 결과로 생겨난 거겠지.
삶이라는 게 하릴없고 별 게 아니라고 해서 하루하루의 삶에 대해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지독한 냄새에도 금세 무뎌지는 코처럼, 삶은 이미 그렇게 주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났고 그 사실을 잘 알게 된 지도 수어 년은 되었기에 삶의 별거 없음은 더 이상 내게 큰 고민거리가 아니다. 죽을 게 아니라면 어찌 됐든 한주 한주를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의 주인으로서 내 책무이므로 이왕이면 그 한주 한주를 어떻게 알차게 채워갈지 고민하는 시간이 지속된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을 기억하지 못하듯, 죽음 이후 또한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종교나 사후 세계와 같은 POST-LIFE에는 큰 관심이 사라져 버렸고, 월급쟁이로서의 사회적 성공이 생각보다는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회사 생활에도 야심 찬 계획 따위는 사라졌다. 결국 죽음 이후의 원미래에도 사회인으로서의 근미래에도 관심이 사라졌으니, 먼저 보이는 건 지금 당장 보이는 찰나의 기쁨뿐이다. 순간의 기쁨을 택한다고 말은 했지만, 내가 어디 가서 약을 할 것도 아니니 결국 길고 긴 소거법 후에 남는 것들은 사람을 만나는 소셜라이프, 운동, 콘텐츠, 게임, 여행 정도 일 듯하다.
이런저런 계산을 해가며 계획적으로 하루하루의 일정을 잡아나가는 건 아닌데, 결국 지금의 내 일상은 그렇게 소거되고 남은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한 주에 두어 번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틈을 내 러닝을 하며, 유튜브를 보다 게임 한판하고 잠드는 일상. 그러다가 몇 달에 한 번쯤은 짬을 내어 해외 찍고 오고. 근 몇 년간의 일상이 큰 틀에서 한 줄로 요약되는 순간이다. 사실 큰 문제의식을 느끼진 않는다. 미래를 소진할 만큼 무모한 일상도 아닐뿐더러 지금 이대로의 삶에서 꽤 많은 행복을 느낀걸.
다만 요즈음은 이 일상이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더 먹으면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일상이 자연스레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수많은 친구들은 유부의 세계로 떠나 모임이 점점 뜸해지는 상황이고, 여행은 더 풍족해졌지만, 여행이 주는 감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더더욱 나이가 들면 운동도 게임도 지금처럼 즐기기 힘든 상황이 다가올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내 시대에는 또 다른 모습의 중년의 삶이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기대일 듯 해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래서일까? 또 다른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아마도 가장 유력한 답안지는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만들고 아이와 함께 그 안에서 늙어가는 일일듯하다. 수많은 사람이 긴 소거 과정 끝에 그 답에 다다랐듯 나도 결국은 돌고 돌아 같은 답에 도달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뻔하지 않게 사는 게 삶의 큰 목표였었는데, 우습게도 나도 뻔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내심 분한 마음도 있다. 그렇지만 뻔하면 어떠한가. 어차피 우리는 저어기 우주 한구석 덩어리에 붙어있는 뻔한 먼지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