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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Feb 18. 2024

미결과 영원 사이

연휴 마지막 날, 졸린 눈 비비며 일어나 스마트폰을 집어 든 나는 팔로우 해두었던 인스타 채널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비보를 건네받았다. 현시점 가장 촉망 받는 육상 선수 켈빈 킵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 이야기의 진위를 의심하게 할 만큼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인 뉴스였지만, 차분히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인스타 포스팅의 담담한 어조는 그 소식이 거짓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국내 언론 매체의 보도는 나오지 않았지만, IOC의 공식 홈페이지에 그의 사망에 대한 기사가 올라온 이상 이 충격적인 소식은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허망한 일이었다. 1999년생이니 여느 누구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이른 것은 당연하겠지만, 마라톤에 한 톨이라도 관심을 두었던 사람이라면 그 허망함의 정도는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일 년 전쯤 갑작스레 이 씬에 등장해 딱 세 번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세 번 모두 우승하면서, 세계 신기록까지 갈아치운 말도 안 되는 선수였으니까. 더군다나 마라토너들의 전성기가 주로 30대 초반에 찾아온다는 걸 생각하면, 24살의 그에겐 그간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서브 2, 2시간 이내 마라톤 완주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아주 사소한 사고 하나로 이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기이할 만큼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덕에 그는 영영 사라지지 못할 존재가 되어버렸다. 앞으로 수십 년간 사람들은 그가 살아있었을 만약의 미래를 가정하며 각자의 바람들을 그의 이름 위에 올려두겠지. 시간이 흘러 더 대단한 누군가가 나타나 24세 킵툼이 세운 기록을 깨어버리는 날도 오겠지만, 사람들은 더 완벽해지고 단단해졌을 34세, 만약의 킵툼을 상상하며 영원히 그를 기억할 수밖에는 없게 돼버렸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우리는 종종 사라짐으로써 영원함을 얻기도 한다. 내 시야 밖으로 흐려져 간 누군가는 마지막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내 뇌리에 남게 되고, 먼저 세상을 뜬 누군가는 내가 칠십 세 노인이 되더라도 영원히 20대의 그 모습으로 기억된다. 유재하의 음악이 우리의 가슴 더 가까이에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부재로 다시는 그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은 아닐까.


"살아있다면 두 살이구나" 좋아하는 드라마, 연애시대 첫 화에는 두 사람이 사랑했던 아이, 동이의 생일 겸 기일을 함께 추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떠났지만, 그렇게 그들은 앞으로도 매해 죽은 아이의 나이를 더해가며 살아가겠지. 기억할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게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기어코 하루하루 누군가를 추억하며 살아가다 보면 나 또한 언젠가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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