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드스타 Nov 11. 2022

환장하는 환자의 삶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오희승



        "그런 걸로 응급실에 갔었다고?"


친구가 믿기 힘들다며 입을 삐죽거린다. 응급실에 와달라고 했던 것도 아니건만 나는 엄살쟁이 반푼이 취급을 받는다. 몇 해 전 여름, 새벽에 혼자 응급실에 달려가서 중증 진통제를 맞고 몇 달간 하루에 반 이상을 누워만 지냈었다. 병명은 '일자목'. 나의 이야기를 듣는 친구의 눈빛이 혼탁해진다. 너무 흔한 질병이라 이 정도로 아프다는 것에 다들 눈빛에 불신이 가득했다. 회사 동료들은 분위기만 풍기고 말을 아꼈지만 가까운 친구가 대놓고 이럴 정도라니. 에휴, 됐다. 됐어.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연보랏빛 표지 귀퉁이에는 조심스러운 질문이 있었다.

아프다고, 말해도 될까요?


작가는 관절염과 CMT환자이다. CMT는 말초신경계 질병으로 근육이 위축된다고 한다.(독자의 눈빛이 혼탁해지고 있는 게 보인다.) 유전병이지만 작가는 유전이 아닌 유전적 돌연변이로 발생했다고 한다. 처음엔 발에 근육이 없으니 길에서 구두가 멋대로 벗겨져 창피한 정도였지만 결혼 후 점점 손, 발, 무릎의 통증이 심해졌고 그녀는 결국 수술을 받는다.

불연속적인 시공간을 도약해서 넘어간 것처럼 훅 하고 내 몸이 다른 몸과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통은 크레센도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갑자기 칼에 찔린 듯 불에 덴 듯 견딜 수 없는 통증은 찾아온다. 나도 관절이 약한 편이라 그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일상은 완전히 붕괴되고, 오로지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만 찾게 된다.


돌아보면 입원 기간은 인생의 휴가 같은 날들이었다.


20대 대졸자이자 무직이었던 내가 고시원에서 맞는 어느 아침, 뱃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태어나 처음 만난 아픔이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어 봤지만 아무 일이 없었고 배가 수건 짜듯 아팠다. 고심 끝에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다시 대학병원에 갔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다시 입원실로... 수술실 침대에서 나는 오줌을 눠야 했고 응급실에서 옷을 벗긴 남자 의료진은 검사가 끝나고도 내 옷을 다시 여며주지 않았었다. 나의 존엄성이 도축되는 기분이었다. 입원실에는 신경 예민한 중증환자 여섯 명이 있었다. 지방에서 급히 달려온 엄마 아빠가 나를 들여다봤고 가까운 친척들, 친구들이 병실에 다녀갔다. 엄마는 입원실을 못 견뎌하며 짜증을 냈고 나도 그 침대가 관처럼 답답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좋은 것도 있었다. 다 큰 어른이 되어 사람들에게 관심과 돌봄을 받았던 순간이 얼마나 될까. 작가도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부담을 수술 후 잠시나마 덜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프다는 사실 때문에 더 아파했다. 스스로를 향한 연민이 너무 커서 고통의 크기를 뛰어넘는 좌절감에 함몰되었다.
고통의 토너먼트를 하다 보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어야만 고통을 털어놓을 자격이 주어지는가.


작가는 평생을 고통과 함께 했다. 장애판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일상은 한계가 가득했다. 그녀는 건강한 사람들의 틈에서 살아내야 했다. 그녀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내밀하게 관찰했다. 같은 아픔을 가진 환자들과, 다른 병이지만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환자들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녀는 다양한 입장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의 아픔은 그녀를 좀 더 섬세하고 사색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픈 사람이 안 아픈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기도, 또 같은 환자끼리 서로 아픔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고통의 크기는 상관없다. 

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고통을 표현할 언어의 발견이었다.
글은 불행한 사건과 고통을 겪는 나를 분리한다. 글을 쓰고 나누면서 누구나 다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비로소 고통도 견딜 만해진다.


가끔 TV에 희귀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큐 거나, 모금 방송인 경우가 많다. 그들의 잔뜩 찌푸린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얼굴과 머리칼은 푸석푸석하고, 비틀린 입에서는 비명만 터져 나온다. 환부를 화면 전체에 채운다. 환자가 어린아이일 경우에는 더욱 견디기 힘들다. 작은 몸에 바늘을 꽂고, 몇 차례나 되는 수술을 견딘 처연한 눈빛을 보면 심장이 싸르르하게 아파온다. 나는 얼른 채널을 돌려버린다. 우리는 고통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여 공감을 하도록 길들여졌다. 그래서일까. 가족 중 누구 하나가 아프면, 그게 특히 성인이라면 환자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성인이 아픈 건 성인으로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픈 건 소문을 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픔을 내밀하게 표현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상하게도 성인이 아픔을 남에게 내어놓는 순간 민폐덩어리가 된 기분이 든다. 심지어 의사 앞에서도 길게 말하는 순간 칼같이 잘린다. 평생을 여기저기 아파온 사람들은, 인생을 함께 해 온 이 고통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쓰기는 아픔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치유의 동아줄이 될 수 있다.


그녀는 인구 2,500명 중 한 명이 겪는 병에 걸렸지만 대한민국에서 1등으로 아픈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프다고 말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 대신 택한 글은 또 다른 진통제가 되었다.

모두가 아프지 않길 바라지만, 삶은 고통이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 모두 크고 작은 아픔을 갖고 있다. 그녀가 겪은 신체의 고통은 여러 번의 수술을 통해 조금씩 나아졌지만, 마음에 입은 상처들은 글쓰기로 치유되었으리라. 그럼에도 고통은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매일 샘솟을 것이다. 그럼 다시 살아내면 된다. 병원에 가고, 글을 쓰다 보면 이 터널의 끝이 보인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나는 책을 덮고, 작가를 만나 긴 얘기를 나눈 듯했다. 우리는 어느새 손을 포개고 있다. 체온이 느껴진다. 많이 아팠던 당신, 오늘은 편히 잠들길. 굿나잇.

작가의 이전글 페트병, 세상의 끝에 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