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드스타 Jan 03. 2024

경계를 뛰어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어슐러 르 귄


다음 소희


글쓰기 수업 선생님의 추천으로 접하게 된 영화 '다음 소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다뤘다. 영화 내에서도, 고등학생 소희는 죽음을 택한다. 자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유진은 외친다.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이 없어.” 다음 소희 안에는 네모난 사무실 안에 아직 스무 살도 되지 못한 현장 실습생들과 그들의 친절한 목소리가 빈틈없이 가득하다. 아침부터 저녁이 늦도록 온갖 욕을 들으며 매일 야근을 하고 실적에 쫓기며, 이에 맞는 급여는 받지 못하는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2021년 한 의대생이 한강에서 사망한 일은 유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도움으로 2023년에도 '억울한 죽음'의 대명사가 되어 재수사의 길이 열리고 있다. 


https://youtu.be/dBuyzdbZ5q8?si=MGoKdYFCy0Cy7Pjd

평생 선크림만 겨우 바르던 내가 서른 즈음 처음으로 제대로 화장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다 유튜브 덕분이었다. 그중 내가 해보지 못할 체험을 대신해주던 뷰티유튜버 '회사원'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두바이 7성급 호텔을 구석구석 훑어보는 에피소드에 동행한 친구가 있었는데 너무나 지적이고 유쾌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아, 이런 멋진 여자는 뭐 하는 사람일까? 궁금해 찾아간 그녀의 개인 채널에는 의외의 모습들이 있었다. 18년간 시설에 살았던 발달장애인 동생을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매라지만 같이 살지도 않았던, 게다가 장애인인 동생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 마음에 가끔 영상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동생과 있을 때도 두바이의 고급 호텔에서 보였던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 그대로였다. 동생은 (편견과 달리) 생각보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보였고 두 사람은 여느 자매처럼, 아니 보다 더 살갑고 평화로웠다. 그녀가 동생을 데리고 나와야 하는 이유는 타인의, 생명체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그녀는 본인의 이름 '장혜영'을 달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 소가 피로할 대로 피로한데 또 채찍으로 얻어맞고 멍에에 목이 졸린 채 고삐로 코를 꿰여 피가 흘러내리고 가죽과 살이 터지는 것을 보았다. 또 농부도 몸이 수척해 뼈만 남아 있었으며 햇볕에 등이 타서 …그리고 보습에 흙이 파여 뒤집히자 벌레들이 나왔으며 … 뭇 새들이 날아와 서로 다투며 그 벌레들을 쪼아 먹는 것을 보았다. … 『본생경』

싯다르타는 2천6백여 년 전 인도에 있는 한 작은 나라에서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우리나라 왕자 교육이 그렇듯 어릴 때부터 제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싯다르타는 열두 살이 되던 해, 아버지인 왕을 따라 농경제에 참석하게 된다. 풍요를 기원하는 기쁨과 희망이 넘쳐나야 할 시기에 태자인 싯다르타는 농부, 소, 심지어 구물거리는 벌레에게까지 안타까움을 느낀다.

태자는 이것을 보고 나서 크게 걱정하고 근심하기를 마치 사람들이 자기의 친족이 얽매임을 당했을 때에 큰 걱정과 근심을 내듯이 태자가 그것들을 불쌍히 여김도 이와 같았다. 『본생경』

태자는 많은 생명이 겪어야 하는 괴로움을 목격한 뒤 끊이지 않는 고민에 출가를 결심하지만 부모의 간곡한 부탁에 십여 년을 태자의 자리를 지키다가 유성출가(踰城出家)를 하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안락한 성과 예비된 왕이라는 지위를 '뛰어넘어' 간 것이다. 그 뒤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깨달은 자', 즉 부처가 된다. 

현재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돌, BTS가 2017년 발표한 '봄날'이라는 곡에 한 작품이 차용되었다고 한다.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단편소설이다. 작가는 오멜라스(Omelas)를 미국의 오리건(Oregon) 주에 있는 Salem을 거꾸로 읽은 것이라고 했다. 


명사 [성서] 살렘 ((Canaan의 고대 도시, 현재의 Jerusalem이라고 함, 창세기 14:18)) 
『동아출판 프라임 영한사전』


 미국 오리건 주의 주도. 지명은 히브리 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세계지명유래사전』


예루살렘, 평화. 가보지 못했지만, 너무나 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도시를 그려본다. 작가는 거기서 무엇을 이끌어 냈을까.

요란한 종소리에 제비들이 높이 날아오르면서, 바닷가에 눈부시게 우뚝 선 도시 오멜라스의 여름 축제는 시작되었다. … 즐거운 종소리가 도시를 휘감고 지나며 달콤한 음악이 되어 들려왔다. … 오멜라스가 여러분에게는 아주 오랜 옛날, 어쩌면 머나먼 곳에 있었던 동화 속 도시처럼 느껴질 게 분명하리라. … 내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은 오멜라스 사람들 가운데 죄인은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살렘을 닮은 듯한 오멜라스는 천국 바로 아래에 있는 도시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여름 축제가 열리는 그곳에는 웃음과 풍요, 행복이 넘쳐난다.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공공건물들 중 하나는 지하실 방이 있다. …그 방에 어린아이 한 명이 앉아있다. …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지독하리만치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들이 비현실적으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비참한 아이 하나를 가둔 덕분이다. 아이는 정신박약아이다. 범죄자도 아니고 역병에 걸린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로부터 철저한 거리두기를 통해 분리된다. 아이를 돌보는 자는 아무도 없으며 죽지 못해 생존해 있을 뿐이다. 오멜라스의 어떤 세금도 아이를 위해 낭비되지 않는다. 아이는 죽지 않고도 지옥에 가 있고, 오멜라스인들은 산 채로 '천국'에 당도했다.

 …한 사람이 행복해질 기회를 얻기 위해 수천 명의 행복을 내던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하실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을 방기 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한 아이의 희생 혹은 유폐 덕택에 이어지는 오멜라스의 풍요. 점점 이 천국 같은 도시가 친숙하게 느껴지고 데자뷔를 본 것 같은 오싹함에 몸서리칠 때, 어떤 사람들이 나타난다.

아이를 본 청소년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에 차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경우는 좀 더 나이가 든 남자나 여자들도 하루나 이틀 정도 침묵에 잠겨 있다가 집을 떠난다. … 이들은 한참을 걸어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관문을 통과해 도시 밖으로 곧장 빠져나간다. … 들판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그러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왕궁을 떠났던 부처님처럼 몇몇 사람들은 오멜라스를 떠났다. 


부처님은 자신을 찾아와 훌륭한 왕이 되는 방법을 묻는 코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에게 이렇게 답했다. 그가 성을 떠나올 때와 같이.


"외아들을 사랑하듯 백성을 사랑하십시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앞뒤로 빼곡하게 들어앉은 콜센터는 오멜라스의 지하실과 뭐가 다른가. 

작가의 이전글 Give directl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