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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생노트

메마른 어른보단, 축축한 아이로 남자.

by 오롯하게

나는 서른셋인데도 아직 한참 어리더라. 스물셋 그때처럼. 여전히 갓 피어난 꽃잎처럼 여리고 물에 옅게 번지는 한방울 물감같았어. 다만 달라진게 있다면 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을 꽤 잘 참아내고 슬프거나 화가 나도 모른채 하는게 퍽 자연스러워졌어. 그렇게 모른척하던 감정들이 나도 모르는 곳에서 쌓이고 쌓이고, 툭 건드리면 무너질 것 처럼 쌓아올려지고나면 이유도 없이 무작정 울고싶은 날이 오거든. 근데 한참 나를 외면하다가 끝내 말라버린 눈물이 기어코 나오질 않더라. 웃긴건 눈물을 흘릴만한 영화같은걸 한참 찾다가 포기하는 순간, 별것도 아닌걸 보고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지체없이 뚝, 떨어진다는거야. 곧이어 줄줄, 그것도 출근길 지하철이나 주말, 이른아침 커피를 사서 돌아오는 길 한복판 같은 곳에서.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한참이나 어린 것 같아. 나이를 먹으면서 는거라곤 고작 올라오는 감정들을 외면하면서 꽤 그럴듯한 어른으로 보이려는 개수작 뿐인거지. 결국은 우스꽝스럽게 울어버리고 말거면서. 그래도 가끔은 그렇게라도 울 수 있는게 감사하기도 해. 그래서 염원했지. 나이가 들어서도 슬프면 엉엉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비록 감정들을 외면하는 삐에로같은 어른이 되어도, 가면을 벗으면 언제라도 엉엉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메마른 어른보단, 축축한 아이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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