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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13. 2017

파도같은배우, 톰 하디

톰 하디를 아는가. 아니 그렇다면 영화 ‘레전드’에 ‘론’과 ‘레지’를 아는가. 아…그렇다면 영화 ‘매드맥스’의 피주머니 ‘맥스’는? 그것도 모른다면 2012년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은? 그렇다면 아마 이번엔 떠오를 것이다. 영화 ‘레버넌트’의 ‘존 피츠 제럴드’는 알지 않는가? 아직도 그가 누군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여러’인물들이 모두 그이다. 모두 그였다.

이토록 상반되는 단어들을 함께 안을 수 있는 배우는 ‘나에게’ 처음이다. ‘톰 하디’는 나에게 그런 배우이다. 감히 그를 연도순으로 나열해보려 한다.


<영화 인셉션> 톰 하디 2010
<영화 워리어> 톰하디 2011

사실 2010년 톰하디가 ‘임스’역으로 출연했던 ‘인셉션(Inception, 2010)’에서는 그의 역할이 그리 도드라지지 못한다. 오히려 마지막 꿈속 저글링 에서 모두에게 ‘킥’을 선사한 ‘조셉 고든 레빗’이 훨씬 더 강한 눈도장을 찍어냈고, 자그마한 몸으로 어마어마한 설계능력을 가진 ‘엘런 페이지’가 우리들의 머릿속에 보다 선명하게 그려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2011년 ‘토미 리어든’ 역을 연기했던 영화 ‘워리어(WARRIOR, 2011)’속 톰 하디는 어땠을까. 그는 강했다. 울룩불룩 근육에서 뿜어 나오는 ‘파워’가 아니라 그의 눈빛과 머리칼과 손짓이 망치를 든 토르 보다도 강력했다.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슬펐던 눈망울과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탓하며 형에게 원망을 보내던 그의 가시 돋힌 바다 앞 절규마저도 무섭게도 여린 ‘토미’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영화 디스민즈워> 톰 하디 2012

그렇다면 사랑스러움의 대명사로 활약했던 2012년 ‘디스 민즈 워(This Meas War, 2012)’의 터크를 기억하는가. 터질듯한 셔츠에, 남자다움을 한껏 살려준 헤어스타일과 강력한 액션들은 여주인공의 사랑을 애타게 바라는 사랑스러운 눈웃음 하나로 잠잠해지고 만다. 마치 작은 츄팝츄스를 얻어내려 차가운 병원에 처음으로 예방접종을 맞으러 간 순수한 아이 같은 그의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그는 그렇듯 언제나 너무나 다른 두 가지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함께 보여준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 톰하디 2012

그를 변신의 귀재라 부를 수 있도록 마침표를 찍어줬던 영화는 2012년 ‘다크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2012)’었다. 보기만해도 뒷걸음쳐지는 그야말로 두려움을 뿜어내고 다니던 악당 ‘베인’이 ‘톰 하디’였다는 사실을 나 또한 믿을 수 없었다. 손 끝으로 톡 하고 건들기만 해도 터져버릴 것 같았던 그의 몸과 녹아버릴 것 같았던 태양 아래 피부를 익힐 것 같던, 그 답답하고 무거워 보였던 쇳덩이를 쓴 그 ‘베인’이 ‘톰’이었다. 타 히어로물들과는 다르게 다크나이트는 언제나 영웅과 악당 중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다. 그건 바로 ‘다크나이트’ 속에 조커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다크나이트 라이즈’ 속에는 ‘베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크나이트 라이즈’속에 ‘베인’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톰 하디’라는 배우가 안고 있는 그 수 많았던 분노와 좌절과 혐오와 순수함과 여림과 희망덕분이라고 생각되더라.


<영화 더드롭> 톰하디 2014

내가 ‘다크나이트 라이즈’속 ‘베인’이 ‘톰 하디’ 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영화 ‘더 드롭(The Drop, 2014)’을 본 후에 그 사실을 접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 ‘더 드롭’ 속 ‘밥’역을 맡았던 톰 하디는 절대.절대로 ‘베인’이라고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조용하고 잠잠했다. 침착하고 부드러웠으며 바보같이 여렸다. 무섭도록 고요했고, 그 고요함 속 은근한 무게는 땅 속 깊은 곳까지 추락할 것 같은 묵직함이기도 했다. 안고 있던 강아지를 향한 눈빛과 갑작스럽게 휘말리게 된 사건을 받아들이는 그 침착함 마저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강한 외침이 느껴졌다. ‘더 드롭’속 톰 하디는 그런 인물이었다. 이렇기에 나에게 ‘다크나이트 라이즈’ 속 ‘베인’이 ‘밥’과 같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이야기를 잠시 돌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베인’의 이야기를 더 하고자 한다.




‘다크나이트’시리즈는 헐리우드의 여느 히어로영화들과는 극명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쉴드에서 ‘잠시’ 일하고 있는 아이언맨은 세계평화를 위해 불꽃을 쏘며 하늘을 날고, 헐크는 순식간에 거대해진 채로 무지막지한 초록색 힘을 발휘하며 건물을 타고 다닌다. 비브라늄 강철합금으로 만들어져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방패를 지니고 다니는 캡틴아메리카는 무려 70년 동안이나 냉동인간이었으며 해동된 후 세계평화를 위해 쉴드 속 히어로들의 리더로써 발 빠르게 뛰어다닌다. 선과 악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히어로영화들과는 다르게 ‘다크나이트1’의 베트맨과 조커는 관객들로 하여금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들었고, ‘다크나이트 라이즈’ 속 베트맨과 베인 또한 마찬가지었다. 고담시의 심판과 사회를 위한 선과 악을 나누려 처절하게 다투는 두 인물(베트맨과 조커 혹은 베인)중 누군가에 편에 서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었다. 지난번 ‘공상 속의 창조주_히스레저’ 칼럼에서 언급했던 문장이 지금 이 공간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한번 더 뱉어보려한다. 


“관객들에게 조커는 감당하거나 인정하기 힘든 공포였다. 심지어는 영화가 끝나갈 때쯤 베트맨과 조커의 대립장면에서 ‘정신병원에나 가라’라고 하는 베트맨의 대사가, 웃는 얼굴로 아찔한 높이의 빌딩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조커에 앞에서 베트맨은 아직도 산타가 있다고 믿고 있는 어린 아이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 베트맨은 말한다. ‘고담시에는 아직도 선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베트맨의 그 말보다 ‘그 믿음은 얼마가지 못한다’라고 자신하며 말하는 조커의 말에 더 많은 관객들이 이상하게도 공감했으리라 생각한다. 조커는 혼란스럽게도 악했지만 반박할 수없는 논리가 심어져 있었다.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나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악’이라는존재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단지 어느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그 악이 표출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보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조커는 그저 그러한 모든 사람들 속에 자리잡은 ‘악’의 존재를 공평하게 세상의 수평선위에 올려놓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공상 속의 창조주_히스레저 中-


이렇듯 다크나이트 속에 등장하는 주된 두 인물은 결코 선과 악으로 혹은 영웅과 악당으로 감히 나눠버릴 수 없었다. 이에 기여를 한 배우 ‘톰 하디’에게 다시 집중해보자.



<영화 매드맥스> 톰하디 2015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 영화 ‘매드맥스(Mad Max: Fury Road, 2015)’ 속 피주머니를 기억하는가. 매드맥스 시리즈의 전 편들을 접하지 않았던 나에게 영화 ‘매드맥스’ 그리고 그 속 피주머니로 ‘사용’되는 톰하디는 너무나 신선하며 충격적이었다. 매드맥스 속 톰이 연기한 ‘맥스’는 ‘강함’으로 무장한 초강력 피주머니였다. 거대한 모래폭풍 속에 짐작할 수 없는 속도로 질주하는 차의 앞에 매달려 목 뒤에 꽂힌 호스로 누군가에게 피를 준다니. 상상만 해도 기절할 노릇이다. 그 어마어마한 모래폭풍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매달려있는 ‘맥스’역은 단연 ‘톰 하디’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지막지한 강함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는 헐리우드에서 조차 사실 그리 많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작은 대사 하나로 혹은 미묘한 몸짓 한번으로도 보는 사람들에게 소심한 실소를 선물할 수도 있고, 어이없는 코웃음을 풍기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대사나 몸짓 혹은 그의 눈빛에 작은 미동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또 한번 그대로의 ‘맥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톰 하디’였기 때문에 ‘맥스’일 수 있었다. 이런 점에 더하여 그는 강하기만 하지 않았다.




<영화 레전드> 톰하디 2015

영화 ‘레전드(Legend, 2015)’에서 2명의 역을 연기했는데 그는 분명하게 두 개의 역할이라 할 수 없었다. 사랑에 빠져 정직하게 살고 싶어하는 갱스터 ‘론 크레이’와 약간의 정신문제로 무지막지한 잔인함을 품은 그의 동생 ‘레지 크레이’ 그리고 화를 억누를 수 없어 결국 사랑을 죽인 안타까운 남자 ‘론 크레이’. 그는 결코 한가지 역에 대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낸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 톰 하디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풍부할 수 밖에.




<영화 레버넌트> 톰하디 2015

마지막으로 그의 최신작 ‘레버넌트(The Revenant, 2015)’에서는 ‘존 피츠 제럴드’를 연기했었는데 그는 결코 악인이면서 악인이 아닐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인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면들을 그만의 풍부함으로 표출해주었고, 그래서 레버넌트의 존이 악인이라 말할 수만은 없었다. 레버넌트의 ‘존’이 행했던 ‘것’들은 그저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했던 선택들이었으며, 그에 맞춰 결정하고 움직였던 존의 행동들에는 인정하기 힘들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악의’같은 것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물론 그가 했던 행동들과 결정들이 옳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당연하다. 악의를 품고 하지 않았다고 해서 옳지 않은 행동이 옳게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황과 이야기를 포함해 작은 꽃 한 송이나 여린 빗줄기까지도 연출로 이루어진 영화에서는 관객들에게 그 악의에 대해서 정당성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일 수 있다. 아니 엄청난 힘이다. 이는 연출의 방법이나 그 상태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칼자루를 쥔 이는 아마도 배우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배우 ‘톰 하디’는 그 칼자루를 강하지만, 또 부드럽게 휘두를 수 있는 바다 위 파도 같은 존재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온다.



쇠 마스크를 덮어 쓴 채 알 수 없는 거친 목소리로 악을 노래하는 ‘베인’을 보고 있다가도, 한 없이 사랑스러운 그의 미소를 마주한다면 그의 잘생긴 외모가 아닌 그의 무궁무진한 다양한 표현에 한껏 들뜬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연기는 언제나 기다려지고 설레게 한다. 얼마나 부드러운 강함이 나올지, 얼마나 강력한 우아함이 보여질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수 많은 배우들 속에서도 그가 한없이 강해 보이고 부드럽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왜 일까.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다음’이 계속해서 기다려진다. 기다려지는 순간까지도 설레게 한달까. 그는 나에게 항상 조금 과한 설렘과 벅참을 가져다 주는 배우다. 


단순히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와는 다른 느낌이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그의 강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기다려진다.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부드럽고 강력하다. 톰 하디는 나에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바다 위 파도 같은 배우다.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및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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