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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20. 2017

파괴, 그리고 인정

영화 <데몰리션>

파괴. 무언가를 부셔본적이 있는가. 닳고 닳은 물건을 부서트리는 것 말고, 집안 저 구석에 처박혀있던 몇번 쓰지 않은 물건을 꺼내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또는 격정적으로 해체시켜본적이 있는가 .혹은 자신을 향해 있는 힘껏 애를쓰며 마음을 퍼부어주는 누군가에게 매몰찬 말들과 가시같은 영혼을 담은 눈빛을 보내어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본 적이 있는가.

데이빗은 줄리아를 사랑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사고가 났다. 순식간이었고 줄리아는 목숨을 잃었다. 데이빗은 머리칼 하나도 다치지 않을만큼 멀쩡했다. 병원 스낵자판기가 데이빗의 돈을 낼름 먹었다. 그는 화가났고 자판기회사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아내를 잃은 사람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고있는 그를 그의 주변사람들은 이상하다 생각한다. 사실 그는 이상하리만치 너무나도 이상했다. 스낵자판기 회사에 보낸 컴플레인 편지에 그는 자신과 아내의 첫 만남부터 지루했던 결혼생활까지 의미없는 글씨들로 그 추억들을 옮겨낸다. 과연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까. 순식간에 죽어버린 아내가 그립고 사무치게 슬프고 불안하고 괴롭진 않았을까.

그에게 아내 줄리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 무엇으로도 풀어낼 수 없는 고통과 불치병이었다. 무겁고 버거운 그 사건이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듯, 풀풀 날아다니는 먼지처럼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스스로에게 재주입하고 그렇게 풀어낸 것같이 보였다. 고장난 것 같은 물건을 고칠때에는 하나하나 해체해야한다는 장인의 말으르 떠올리며, 그는 익숙히 않은 연장들을 손에 쥐고 집안 이것 저것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죽기 전 아내가 마지막으로 부탁했던 물이 새는 냉장고, 그와 아내의 공간이었던 집마저 사정없이 부신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게.

사실 고장난건 데이빗 그 자신이라는 것을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자신에게 그다지 큰 존재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 안에 있던 ‘아내’라는 큰 주춧돌을 각인시켜준 계기였고, 뒤늦게 그 빈 자리를 알아챈 데이빗이 그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주변의 많은 것을을 부숨으로써 상실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착각과는 다르다. 데이빗의 이상행동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남자친구와 다투고 친구나 엄마에게 분풀이를 하듯, 뒤돌아보면 한 없이 후회스러운 행동들의 근원은 항상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닌, 보다 깊은 곳에서 나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데이빗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들이 영화 ‘러덜리스’의 아들을 잃고 삶을 포기한채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데몰리션의 데이빗도, 러덜리스의 샘도 그들의 옆에 있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때 각자 그들이 가지고 있던 스스로의 모습을을 내버려둔채 다른 삶을 살아가는 척 한다. 데이빗과 샘이 각각 지니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이러한 영화가 보여주는 요점은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을을 인정하고있는가, 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자신에게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데이빗 뿐만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고있는 많은 이들에게 남겨진 숙제라 생각한다. 지금 옆에 있는 가장 소중한 누군가가 사라진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고있는 누군가가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떠나가버린다면. 당신은 그 빈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그저 인정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지는 않을까.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데몰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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