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몰랐지만, 연기를 하는 직장인이 정말 많았다. 이런저런 어플이나, 인스타에서 지역 + 직장인 뮤지컬 뭐 이렇게 검색을 하면 정말 많은 극단 혹은 크루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또 생각보다 나이가 있는 사람도 많았다. 사십줄이 아니라 50줄 어르신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별로 없다고 들었다. 의외였다.
그런데 직장인이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생각보다 쉽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주말에 3시간 이상 빼야 하고, 대본이라도 외우려면 저녁에 활동을 하는 사람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는 다행히 이제 아이가 많이 커서 주말 육아에서 좀 해방 되었고, 원래 와이프가 내가 이런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난 정말 초보였으므로, 일단 배울 수 있는 극단을 찾았고,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전문 연출가와 실제 배우가 트레이닝을 함께 해주고 6개월 간 트레이닝 후에 실제 연극 무대에 오르는 코스였다. 처음에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러 가는데 오디션이라도 볼 줄 알고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생각보다 면접은 싱거웠다. 다행히 뭔가 시키진 않으셨고 그냥 왜 지원을 했는지,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지 정도를 물어보고 위에 말한 것처럼 연습에 참여 가능한지 여부 등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뽑혀서 지금 이렇게 함께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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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원래 상황극 같은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옛날에 노래도 잠깐 했어서 호흡이나 억양은 자신이 있었기에.. 솔직히 난 처음에 하면 물론 나이를 감안하고 잘하는 축에 속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내 생각과 완전히 동 떨어졌다. 크크...
억양을 살리면서 발음을 하면 대사 전달이 되지 않고 대사 전달을 위해 또박또박 읽으면 국어책이 되었다. 옛날에 장수원의
갠차나요?마니 놀래쬬?미아내요
저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 나에게 왔었다. 나름 어디에서도 '뭔가를' 읽는 데 있어서 꿀린 적이 한 번도 없을뿐더러 PT나 발표를 잘한다는 소리를 수십 번은 더 들었던 내가! 내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버벅거리다니.. 뭔가 굉장한 충격이었다. 마치 PT할 때 시간을 의식하면 말을 괜시리 빨리하는 것처럼, 대사를 생각하며 소리 내어 말하면 정말.... 나 스스로를 많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랬다. 난 그냥 쪼랩이었다.
이렇게 나이 사십 줄에 이런 것을 새롭게 하고 초심자의 마음을 다져보게 되니 문득 아이와 놀아줄 때도 예전과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머릿속에는 아이가 처음이라 미숙하구나 싶어도 한 두 번 해보고서도 잘 못하면 왜 못할까? 멍청한가? 싶었는데 다시 초심자로 돌아가 뭔가를 해보니 한 두 번으로는 택도 없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슬픈 연기, 미친 연기 혹은 기쁜 연기를 할 때 난 아직 익숙하지 않다. 아직 나라는 껍데기를 벋지 못하고 이미지와 자존심에 무게만 잡는 내 모습을 보며 어쩌면 아이 앞에서도 나는 이렇게 나를 들어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무리의 사람들과 친해지고, 이야기하는 게 나이를 먹을수록 힘들어지는데 그걸 집 근처 놀이터에서 항상 해내며 익숙하게 친해지고 같이 노래 부르는 아이를 보며 나보다 껍데기가 없는, 순수한 모습을 보며 나보다 훌륭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이제는 내가 우리 아들을 보며 껍데기를 벋어내는 것을 연습해 보고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