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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이 아빠 Feb 29. 2016

육아와 희생은 동의어가 아니다.

남자 그리고 육아의 시작 #4

가끔 와이프랑 결혼 생활을 영유하다 보면 내가 여자고 와이프가 남자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 때가 있다. 예컨대 집안 일을 안 도와준다고 뭐라 하는 것도 내 쪽이 먼저고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클리셰 중 하나인 주말에 청소기 돌리면서 "당신은 어쩜 이렇게 집안일을 안 해?" 라고 말 하는 게 나다. 여보, 반론이 있으면 말해 ㅋ


애를 아무 곳에나 두지 말라고, 아무 것이나 먹이지 말라고 하는 것도 내 쪽이 먼저다. 온라인 활동에서도 차이가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네이트 판을 좋아한다. 다음 미즈넷은 너무 극단적인 경우를 많아서 선호하지 않고 네이트 판에서 특히 결시친 쪽을 많이 보는 편이다. 혹시 몰라 설명을 드리자면 흔히 '된장녀', '김치녀' 같은 여자가 많이 글을 쓴다 해서 네이트는 '판녀'라 칭하면서 하대하는 경우가 왕왕있기 때문에 남자가 오히려 여자가 네이트 판을 하면 뭐라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우리 집은 내가 네이트 판을 보고 와이프가 나를 나무란다. 


하지만 이런 집에서도 완벽하게 남녀 역할이 남아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바깥 일을 누가 하고 육아를 누가 하는가 부분이다. 우리집도 내가 바깥 일을 하고 와이프가 육아를 한다. 내 와이프도 나름대로 석사 졸업생이고 누구보다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아이가 아직 너무 어리고 어린이 집에 보낸다 한들 어린이 집에서 아기를 데리러 올 때 서로 자기 엄마인 줄 알고 옹기종기 나와있는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오래 보내기 싫다고 쉽게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결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들이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 생각하고 그것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장기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먼저 엄마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어린이 집에 아기를 맡기러 갈 때 아이가 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데리러 갈 때 날 너무 반가워하는 것이 보이면 가끔은 울컥 할 정도로 마음도 아프고 차라리 와이프를 일 시키고 내가 육아를 하고 싶을 정도로 아이에 대한 애착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와이프가 직장을 포기하거나, 생활을 포기하는 등 아이에게 '희생'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결국 아이에 대한 보상 심리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긴급 출동 SOS'를 보다 보면 문제는 모두 부모의 문제다. 그 중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유형이 자존감이 약한 부모의 모습과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는 부모의 유형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행위에 대해 보상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자기 만족이건 타인의 인정이건 혹은 그 무엇이건 보상을 꿈꾸는데 아이에게 희생을 하고 맞추다 보면 아이의 학업이나 성격, 생활 등에 희망하는 것들이 "내가 이 만큼 했는데" 라는 전재가 붙기 시작하고 그것이 곧 보상 심리로써 당연하다 여기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널 위해 내가 이 만큼 했는데


나는 아이에게 저런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다. 날 위해 커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도 절대 바라지 않는다. 내가 가장 바라는 아이의 삶은 "내 아이가 그 스스로로서 결정하고 책임지며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일원으로써 성장하는 것"이지 나에게 속한 누군가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조력가이자 한 명의 보호자로써의 임무에 충실하고 아이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사랑하면서 사랑이 뭔지 알게 해주고 사회에 대해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부모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 부부도 부부 나름대로의 삶에 충실해야 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보채고 울지만 익숙해 질 것이고 또한 퇴근 후와 법정 공휴일이나 주말엔 언제나 우리와 있으니 그 시간만큼은 적어도 최선을 다해 보듬어 주고 사랑해준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개인의 선택인 것이고 다만 사람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 다양한데 개인적으로 그 중의 하나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부로서도 자존감이 높고 아이에게 끝없는 희생만 하지 않는다면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을 해야 자존감이 높아지는 사람이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말로 계속해서 주부로의 삶만 살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는 것과 끝없는 희생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고 나는 나다. 희생을 하면서도 나중에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면 상관없겠지만 부처나 정말 해탈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나의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 나중에 자식이 독립하고 혼자 살아갈 수는 있을까? 경력 단절이나 재 취업의 현실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독립했을 때의 허탈함은 어떻게 할까? 그렇다고 관심도를 0세부터 10세까지는 많이 10세부터 20세까지 적절히 20세부터 독립 이런 식으로 딱 구분 짓는 것도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 하기 애매할 뿐더러 사랑이라는 것은 꾸준한 것이지 절대 단계 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낳은 자식으로써 책임을 지고 아이가 올바른 성년으로 키울 의무는 나에게 있는 것이지만 나의 자식으로써 내가 무언가를 바라는 것을 들어줄 의무는 나의 아이에게 없다. 항상 이 부분을 상기하면서 내가 어느 정도의 희생을 했을 때 보상을 바라지 않을지, 내가 독립할 수 있는지 고려하고 딱 그 만큼만 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애 앞머리를 저렇게 해놓다니... 애 엄마가 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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