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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Jan 27. 2021

어느 소대장의 사격훈련

(군인도 잘  모르는 군대 이야기, 2020.9.1출간, 저자의 다른 이

(군인도 잘 모르는 군대 이야기, 2020.9.1출간, 저자의 또 다른 이야기)


어느 소대장의 사격훈련


그땐 다들 이렇게 사격하나 보다 생각했다. 소대장이 끝나고 1차, 2차 중대장이 끝날 때까지 전혀 해볼 수 없었던 값진 경험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실거리 사격장은 막사로부터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중간에는 2~300 고지 정도의 산이 하나 가로막고 있는 곳이었다. 훈련을 하기에는 조금 쉬운(?) 난이도의 지형이었다.

나중에는 훈련을 하도 많이 해서 눈 감고도 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때 나는 소위였다. 특수전 기본 교육도 받고 체육학과를 졸업한 피 끓는 5만 촉광의 소위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레저 스포츠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버스로 잘 모셔와서 안전교육 후 사격을 하는 것이 보통의 일반적인 모습인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완전군장을 결속한 후 저울로 무게를 재었다. 사격장까지는 소대별로 살기 위한 기동을 했다. 대대 참모의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 또한 사격 시간에 맞추기 위한 제한시간도 있었다.

버스는 아니더라도 포장된 도로를 이용할 수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소대원을 이끌고 익숙하지 않은 지형을 대대 참모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로 도착하는 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도로를 따라가는 건 죽음이다. 정확히는 화생방 오염지역으로 설정되어 MOPP 4단계를 적용해야 했다. 그리고 눈에 너무 잘 띄었다.


어쩔 수없이 숲 속을 이용해야 했다. 오솔길, 우마차 길 등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은 통제관들이 매복하고 있다. 북한군 전술에 나오는 것처럼 7~8부 능선을 타야 한다. 직선거리로 2km 남짓밖에 안 되는 거리를 돌고 돌아 벌목 도로 길을 만들어야 했다.

전쟁터라면 쉽고 편한 길은 적이 곳곳에 숨어 눈을 부라리며 총구를 들이밀고 있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전투 현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위해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사치이다. 투덜거릴 여유가 없다. 가다가 걸리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히 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소대장 보직이 끝나갈 때쯤에는 이러한 훈련장 이동 형태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하면 이제야 오늘의 목적인 실거리 사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여기저기서 사격 준비로 바쁘게들 움직인다. 우리를 기다리는 그들은 사격에 관한 일가견 있는 사람들이다. 장교가 되었건 부사관이 되었건 병사가 되었건 언제라도 90% 이상의 명중률을 가진 전문가들이다.

숨을 헉헉거리며 있노라면 어디선가 무전기에서 오고 가는 대화도 간간히 들린다. 대항군 역할을 하는 참모에게 발각된 동기 소대장 전원이 막사로 완전군장 구보로 되돌아 갔다는 소리를 들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얼마나 힘들까? 나도 그랬지. 다행이다. 이제 사격만 잘하면 되는데...  주변의 부러움을 즐기며 차를 타고 복귀해서 푹 쉴 수 있는데...  간절함이 샘솟는다.'

사격은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우리 소대는 안 걸리고 잘 도착했다는 안도의 순간도 잠시,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전쟁터가 그려진다.

공격 개시선까지 적들에게 발견되지 않고 왔다. 이제부터는 전투이다. 진정한 서바이벌의 시작이다.
그렇게 죽자살자 정신없이 힘들게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선으로 올라간다.


걸음걸음마다 간절함이 묻어난다. 합격하면 지휘관 차량으로 막사까지 복귀시켜 주지만 한 발이라도 부족하면 그 완전군장을 메고 고개 너머까지 뛰어가서 출발 보고를 하고 뛰어서 사격장으로 와야 했다. 온몸이 놓친 한 발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 또한 본부중대장 선배가 멀리서 쌍안경으로 감시한다. 사격훈련에는 장교, 부사관, 용사의 구분이 없었다. 다행히 나는 전입 초반에 있었던 초임장교 집체교육간 체력, 사격, 정신전력을 특급으로 통과해서 바로 사로 통제관으로 임무수행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소대장은 결과로 실력을 증명해야만 통제관에 오를 수 있었다.

동기 중에 한 명은 1차에서 불합격하여 따가운 시선으로 온몸의 열기를 식히며 2차 사격을 올라왔다. 그런데 하필 내가 통제하는 사로에 편성이 되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동기에게 힘내라고 수통의 물 한잔을 몰래 주고 2차 사격을 실시했는데 또 불합격하고 말았다.

혼잣말로 뭐라고 이야기하며 내려가는 모습을 참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평소 운동이나, 훈련 등 중대, 소대별 대항을 많이 실시했기 때문에 다른 중대 전우에게 늘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사격장에서 만큼은 하나가 되었던 것 같다. 사격훈련에는 계급별로 만점 기준이 차등되어 있지만 우리 대대는 이등병 ~ 중령까지 18발을 맞춰야만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통제하는 용사가 17발씩 맞추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제발 좀 합격해라!' 기도했다.

오후 14시쯤 지나면 거의 합격을 하고 복귀했기 때문에 조금 전 통제하던 용사가 또 오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그렇게 모두 합격을 하면 사격훈련이 종료되었다.
막사에 복귀하면 정말 무슨 큰 훈련을 하나 끝낸 것처럼 긴장이 풀어지곤 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중앙 통제하는 중대장, 사로 통제를 하는 소대장, 사로를 편성을 하는 부소대장,  탄약을 불출하는 탄약관, 이런 훈련을 계획하는 참모들과 전체를 통제하는 지휘관까지 정말 위험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지휘관은 이런 순간만큼은 불합격자들에게는 적보다도 무섭다. 사실은 투덜거리거나 욕할 겨를이 없다. 일단은 합격해야 한다는 간절함 만이 온몸과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합격하면 긴장이 풀린다.

한발 한 발의 명중 여부에 따라 다음 사격까지 삶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합격하고 돌아오면 다들 총부터 닦는다. 혹 기능 고장이라도 나면 한 치의 이해나 배려,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적이 앞에 있는데 총이 고장 나면... 끔찍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떻게 그런 훈련을 했는지 믿기지 않는다.

요즘도 사격장에 가면 가끔 떠 오르는 모습이 있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자신의 총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던 전우들이...

'제발 합격해서 푹 쉬자!'


이런 간절함과 더불어 그 지휘관에 대한 원망이 컸다고 한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사실은 긴장되는 사격훈련, 부대원 모두가 잘 맞춰서 빨리 끝나길 누구보다 더 간절히 바랬던 사람이 어깨에 견장을 단 나였다'


(군인들만 모르는 군대 이야기, 2020.9.1출판, 저자의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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